일본 서부 와카야마 현에 위치한 산단베키(三段壁)는 총길이 2km, 높이 60m에 달하는 주상절리 암벽으로 유명한 관광지다. 이곳은 다른 의미로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데, 생을 끝마치려는 이들의 최종 목적지로도 잘 알려진 곳이다. 그 절벽에는 한 대의 전화가 있고, 그 전화를 통해 이생의 마지막 전화가 되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목사가 있다. 후지야부 목사는 그렇게 자신과 연결된 이들을 다시 삶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하는 일은 오랫동안 해왔고, 그가 구한 사람들의 숫자만 해도 900명에 이른다고 한다. EIDF 2019 출품작인 카세자와 아츠시의 '생의 마지막 한걸음(A Step Forward, 2018)'은 후지야부 목사와 그가 운영하는 자활공동체의 사람들을 담은 다큐 영화다.
감독 카세자와 아츠시에게 이 영화를 만드는 계기를 만들어 준 것은 그에게 영화를 가르친 스승 사토 마코토(1957-2007) 감독의 죽음 때문이었다. 일본 다큐멘터리의 거장 오가와 신스케의 뒤를 잇는 세대의 감독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던 그의 갑작스런 죽음, 특히 그가 택한 그 죽음의 방식은 무척 충격적이었다. 가족과 함께 택시를 타고 가던 그는 신호대기가 걸린 교차로에서 내려서, 근처 건물에 올라가 투신자살을 했다고 한다. 제자 카세자와 아츠시는 스승의 장례식장에서 우연히 만난 기자에게 후지야부 목사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이 다큐를 만들게 되었다.
'생의 마지막 한걸음'은 그 시작부터 예사롭지가 않다. 한밤중에 산단베키로 급하게 차를 몰고 가는 후지야부 목사는 자살을 시도하기 전에 마지막 전화 통화를 시도한 여성을 태우고 돌아온다. 그는 자살 시도자들의 재활을 돕는 자활 공동체를 운영하는데, 일본에서는 무척 보기 드문 개신교 목사로 그의 이런 활동은 굳건한 종교적 신념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목사이지만 전직 배구선수인 그는 대부분 편한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지낸다. 공동체 사람들에게도 무척 격의없이 대할 뿐만 아니라 친구, 동료, 아버지 같은 느낌을 준다.
그가 운영하는 자활 공동체는 비영리 단체로, 포장 도시락을 배달해서 그 수익으로 공동체 구성원들이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돕는다. 적게는 몇달, 몇년을 머무는 공동체 사람들은 여러가지 문제들을 복합적으로 가지고 있는 이들이다. 대인관계의 어려움부터 돈관리의 문제도 그들을 힘들게 만든다. 이 다큐에서 특히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모리'라는 사람은 전직 요리사인데, 그는 목사에게 식당에서 일할 때의 자기중심적인 자세며, 헤픈 돈 씀씀이에 대해 질책을 듣는다. 후지야부 목사는 그 장면에서 마치 훈육을 하는 사감처럼 보인다.
목사의 이런 적극적인 개입, 심지어 가족도 대놓고 말하지 못하는 것을 지적하는 방식은 보는 이를 약간은 낯설고, 놀랍게 만든다. 그 공동체의 구성원은 평범한 이들이 아니라, 자살을 시도한 이들로 정서적으로 안정적이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일본 내에서도 후지야부 목사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감독은 그런 논란과는 별개로, 가족 공동체를 지향하는 목사의 그러한 신념과 열정이 많은 사람들을 구하고, 다시 사회로 돌려보낼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EIDF2019 관객과의 대화현장 인터뷰 참조).
다큐에서 등장하는 이십대 후반의 전직 요리사 모리는 카메라를 친구처럼 편하게 대했기에 감독이 많은 부분을 할애해서 그의 이야기를 담았다. 모리는 서툰 대인관계의 문제도 있었고, 또 그를 안쓰럽게 여긴 어머니가 보내준 큰 돈을 마구 써버려서 목사에게 한소리를 듣기도 한다. 후지야부 목사는 모리가 사회로 나가서 다시 자립하려면 그런 일상의 생활방식에 개선이 있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에 나름의 엄격함을 가지고 대한다. 모리가 그걸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모리는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결국 고향으로 돌아가서 요리사로 살아갈 수 있게 된다.
후지야부 목사의 지치지 않는 열정, 그 노력은 그를 도와서 공동체를 꾸려나가는 여러 조력자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그렇게 그는 어떻게든 한 생명이라도 구하려고 애를 쓴다. 다큐 초반부에 목사가 차에 태워서 돌아온 여성은 바로 그 다음날 떠나버린다. 자살을 시도한 이들이 저렇게 바로 가버리면 다시 시도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마음을 돌려서 며칠 더 머물게 하려고 하지만 여자는 떠난다. 여자가 택하게 될 그 '끝'이 보이기 때문에 그의 마음은 더 무겁다.
감독은 자살을 시도하는 이들이 우울증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기는 하나, 그것만이 유일한 이유는 아니라고 본다. 단절된 인간 관계, 삶에서의 여러 좌절의 경험과도 같은 복합적인 요인이 있고, 그런 면에서 후지야부 목사가 공동체를 가족의 형태로 이끌어 가는 것은 치유를 위한 대안적 방식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목사가 그들을 '아픈 사람들'이 아닌, 사회로 내보내기 위한 훈련생으로 생각하는 그 시각은 때론 불편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다큐는 후지야부 목사가 자신이 공동체 구성원과 소통하는 방식, 즉 지시적인 말투라던가 질책하는 것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도 가감없이 보여준다.
이 다큐는 끝부분에서 관객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는 소식을 들려준다. 목사는 모리의 어머니에게 온 전화에 대해 말한다. 모리의 죽음을 알려주는 목사의 목소리는 마치 고통으로 떨리는 것처럼 보인다. 모리가 공동체를 떠난 지 3년이란 시간이 흐른 뒤였다. 결국 그는 자신이 막아낼 수 없었던 그 죽음에 대해서 괴로워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이 일을 그만 둘 수 없다고 말하며 살아있는 동안 해야할 사명으로 받아들인다.
'생의 마지막 한걸음'은 우리가 잘 모르는 벼랑 끝에 선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벼랑 끝에서 한걸음을 더 걸어가면 그들의 삶은 끝나고, 거기에서 발을 돌려 이생으로 향하는 그 한걸음을 걸으면 다시 살아갈 계기를 만들기도 한다. 그렇게 발을 돌이킨 이들에게 손을 잡아주는 것, 그것은 사명감을 가진 목사만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손을 잡아달라고 말하는 모두를 도울 수는 없겠지만, 도와주겠다는 마음가짐은 늘 가져달라는 것이 이 다큐를 만든 감독의 부탁이었다.
어제, 스폰지밥 만화와 H.O.T.를 무척 좋아하던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 무겁고 칙칙한 사람들의 얼굴에 웃음을 주고 싶어서 코미디언이 되었다던 그가 떠나간 그곳에서 편히 쉬길 바란다. 박지선 씨의 명복을 빌며 이 글을 쓴다.
*'생의 마지막 한걸음' 스틸 컷: 사진 출처 EIDF 홈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