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에는 영화 '기생충'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K는 좀처럼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겉으로는 허허실실 웃으면서 속없는 사람처럼 굴었지만, 나중에 알게 된 그는 굉장히 치밀하고 냉정한 사람이었다. 꽤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도 나는 K를 떠올려보면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오래전, 다니던 학교에서 청소하는 아주머니들은 변변한 휴게 공간이 없어서, 화장실 한 칸을 자신들의 휴식공간으로 쓰고 있었다. 나는 그 아주머니들을 볼 때마다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K에게 그런 내 생각을 말했더니 K는 이렇게 말했다.
"너는 그 사람들이 불쌍하고 안돼 보이겠지. 하지만 말야, 그 사람들은 그렇게 일하고 지내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아. 화장실에서 짬짬이 쉬는 것도 즐겁고 괜찮게 여길 걸.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 사람들이 비참하고 불행한 사람들이 아니라구. 내가 일하면서 본 많은 인부들이 그랬어."
내 온정주의적 시선에 찬물을 끼얹던 K의 건조한 말투가 생각난다. K는 확실히 나보다 세상과 낮은 곳에서 사는, 잘 보이지 않는 계층의 사람들을 잘 알았다. 영화 '기생충(2019)'을 보면서 나는 문득 K의 말이 떠올랐다.
송강호가 분한 기택네 가족은 전형적인 하층민의 삶을 살고 있다. 반지하 방에 거주하는 그들은 집안에 출몰하는 곱등이를 없앤다고 거리의 소독차 연기를 그대로 들이마시며, 거실 창문으로 보이는 시시때때로 노상방뇨하는 남자를 어쩌지도 못하고 참아낸다. 기택이 하는 일마다 안풀려서 온가족이 피자박스 접기로 소일하는데, 그것도 제대로 해내질 못해서 새파란 피자가게 여사장한테 받을 돈을 까이고 하대까지 받는다. 누가 봐도 이 가족은 참 불쌍해 보인다.
그러던 어느날 기택의 아들 기우의 친구 민혁이 '수석'을 들고 찾아오면서, 이 가족의 모험의 여정이 시작된다. 산수의 경치가 새겨져 있어서 '산수경석'이라고 불리우는 이 돌을 민혁은 재운의 상징이라며 건네는데, 이 돌은 실은 이 가족에게 불행을 가져오는 신물(神物)과도 같다. 영화는 어쩌면 이 돌과 함께 하는 기택 가족의 모험담 같기도 하다. 나중에 폭우가 내려서 기택의 집이 물에 잠기는데, 이 돌은 가라앉지 않고 떠오른다. 기우는 이재민 대피소에서도 이 돌을 내려놓지 못한다. 왜 돌을 가지고 왔냐는 기택의 질문에 돌이 자꾸만 자신에게 '들러붙는다'고 말하며, 자신의 가족에게 걸림돌이 될 이들을 제거하려고 할 때 흉기로 쓰려고 가져가기도 한다. 그러나 도리어 그 돌은 기우에게 치명상을 입힌다. 신화의 영웅의 모험담에서 영웅에게는 어려운 상황에서 쓸 수 있는 비장의 무기가 여정의 초반에 주어지는데, 기택의 가족에게 주어진 저 산수경석은 온갖 불행과 저주가 들러붙은 무기일 뿐이다.
벌레의 삶. 이 가족이 모험의 여정을 택한 이유는 그 더럽고도 비참한 삶에서 벗어나 '인간답게' 살아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온갖 협잡질과 능글거리는 거짓 연기로 박사장네 집을 잠식해 들어간다. 아들 기우는 영어 과외 선생, 딸 기정은 미술 선생, 기택은 운전기사, 부인 충숙은 가정부로 혼연일체가 되어 박사장네를 거리낌없이 농락한다. 이쯤되면 이 가난한 사람들, 아니 벌레 일가의 그 교활함과 사악함에 치를 떨지 않을 수 없다. 봉준호는 세상 사람들이 가난한 이들에 대해 갖고 있는 흔한 온정주의적 시각을 사정없이 부숴버리고, 기택 가족으로 대변되는 하층민의 민낯을 까발린다. 캠핑을 떠난 박사장 가족의 집 거실을 점령하고 양주 파티를 벌이는 기택 가족의 행태는 그들의 몸에 밴 사고의 천박함과 추악한 이기주의를 드러낸다.
'기생충'에는 기택 일가와 비슷한 벌레의 삶을 사는 또 다른 이들이 등장한다. 바로 박사장 집 가정부 문광과 근세 부부다. 문광은 가정부로서 자신의 본분에 충실하며 박사장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선'을 넘지 않는다. 마치 박사장네가 살고 있는 그 집 자체로 보일 정도로 충실한 일꾼으로 살던 문광에게 기택 가족의 등장은 날벼락 같다. 일자리를 잃었을 뿐만 아니라, 박사장 집 지하에 기거하던 남편 근세의 생존마저 위협을 받는다. 이들 부부가 기택 일가의 비밀을 알게 되면서, 그 두 가족의 혈투는 피할 수 없는 것이 된다. 그들 모두가 박사장네를 계속 속여가면서 살 수 있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들은 서로를 적으로 간주하며 엄청난 적의와 살의를 표출한다. 결국 근세는 기택의 딸 기정의 목숨을 앗아가고, 자신은 충숙에 의해 최후를 맞는다. 벌레들에게 공존과 연대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인 박사장은 그런 벌레들에게 '냄새'가 난다며 혐오감을 표출한다. 그는 기택에게 나는 냄새가 지하철에서 맡을 수 있는 '무말랭이 냄새'라고 표현한다. 그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자신은 그들과는 다른 종족임을 표명하는 동시에, 그가 벌레라고 생각하는 존재들에 대해 얼마나 역겨움을 느끼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박사장은 그 벌레들이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을 '선을 넘는다'고 표현하는데, 박사장이 보여주는 우월감에서 나온 그 지독한 멸시와 극악의 냉소를 기택은 참아내질 못한다. 비록 벌레의 삶을 살고 있지만, 기택이 보기에 박사장의 위선은 자신과 그다지 다를 것이 없다. 기택이 자신의 자존감을 냄새 난다며 짓밟는 박사장에게 최후를 선사하면서, 인간답게 살아보고자 선택했던 기택 일가의 여정은 비극으로 마무리된다.
그 모든 여정을 함께 했던 산수경석은 비극 속에서 살아남은 기우가 강물에 돌을 넣자 비로소 '가라앉는다'. 그 저주의 부적과도 같은 신물(神物)은 자신이 해야할 바를 다했다. 벌레들에게는 벌레의 삶이 어울린다는 것을 깨우쳐주는 것이다. 벌레가 인간이 되기를 소망할 때, 그것은 세상의 순리를 어지럽히는 일이 되며 파국을 자초하게 될 뿐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그 돌을 가져온 기우의 친구 민혁은 인간 세계에서 온 '재앙의 전령사'처럼 보인다.
영화 도입부에 기정과 기우는 와이파이를 잡기 위해 화장실 천장에까지 휴대폰을 들이댄다. 마치 두 남매가 인간들이 사는 지상에서 내려오는 신탁을 기다리는 모습처럼 보인다. 곰팡이와 곱등이, 꿉꿉한 냄새가 밴 반지하 벌레의 삶이 아닌, 지상에 사는 인간의 삶을 살고 싶었던 남매의 소망은 '전령사' 민혁에 의해 응답받는다. 그러나 실패가 예견된 이 비극의 여정을 통해 영화 '기생충'은 벌레들에게 결코 '선'을 넘지 말라고 말한다. 영화 속에서 기택 일가의 집을 삼킨 엄청난 폭우는 벌레들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 지하와 지상을 명백하게 가른다. 결국 기우와 충숙은 원래의 반지하 집으로, 기택은 박사장 집 지하로 돌아간다. 그곳이 그들이 원래 있어야할 자리였다.
영화관에서 '기생충'을 본 어떤 이는 영화가 끝나고 나서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고 말했다. 자신이 박사장이 말한 '냄새'를 풍기며 사는 존재임을, 그리고 영화관에서 나와 지하철을 타고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고 했다. 어젯밤, 케이블 채널에서 이 영화를 보고나서 나도 한참을 멍하게 앉아 있었다. 나는 이 영화가 그 어떤 공포 영화 보다 무서운 영화라고 느꼈다. '벌레들'에게 어두컴컴한 지하의 세계에서 조용히 지낼 것을, 인간들이 사는 지상의 세계를 넘볼 생각 따위는 하지 말라고 하는 이 영화에 대해 반박할 그 어떤 말도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결코 인간이 되지 못하는 모든 것들의 비극이 영화 '기생충'에 그렇게 담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