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마땅히 쓸 글도 없고, 그냥 쉬어 가기로 했다. 대신, 지난 9월부터 블로그에 다시 글을 올리면서 느꼈던 이런저런 소회들을 써보려고 한다.


  원래 내가 쓰려던 글은 영화나 매체에 관련된 비평글은 아니었다. 너무 오랫동안 글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일종의 습작, 글쓰기 훈련처럼 매일 무언가를 써보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소설을 쓰고 싶다고 해서 어느날 갑자기 소설이 짠, 하고 써지는 것은 아니므로 어쨌든 하나의 글쓰기 일과를 만들고 싶었다. 처음에는 일상의 이야기들 위주로 써나갔는데, 문제는 내가 일상이 화보인 연예인도 아니고 나올 수 있는 소재의 한계라는 벽에 부딪힐 수 밖에 없었다. 무슨 마른 행주 쥐어짜는 느낌이었다.


  영화에 대한 글은 그다지 쓰고 싶지 않았지만, 배운 가락이 있으니 그게 또 자연스럽게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영화에 대해 말하자면... 오손 웰스가 말년에 회고했듯, 나에게 '망할 놈의 마법 상자' 같은 애증의 대상이기도 했다. 너무너무 사랑했지만, 결국에는 밀쳐내는 그런 존재 같았다. 그럼에도 어떻게 쓰다보니 그것도 '미운 정'이 단단히 들었는지, 다시 영화 이야기를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영화에 대한 글을 쓰는 이들은 너무도 많기 때문에, 내가 쓰는 글 어디에 '차별점'을 둘 것이냐가 가장 큰 관건이었다. 이건 마치 유투버를 하기로 마음먹은 초보가 작은 촬영장비 하나 들고 찍을 때 드는 당혹감, 그런 느낌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이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팔기 위해 글을 쓴다는 것, 그 생업전선의 치열함과 엄중함을 나는 잘 알지 못한다. 그래도 글이란, 그것을 읽어주는 독자를 상정할 수 밖에 없으므로 나름의 고민이 없지는 않았다.


  그런 즈음에 EBS 클래스e에서 최장순의 '기획의 세계' 강의를 우연히 들었다. 비단, 물건을 파는 마케팅에만 기획이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에서도, 그러니까 내가 글을 쓰는 블로그에서도 기획의 필요성이 있다는 것을 깨우쳐준 강의였다. 내 글을 읽어줄 독자를 만나기 위해 내가 해야하는 것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블로그 글 가운데에서 반응이 괜찮았던 글들이 드라마와 영화와 관련된 글이었다. 그래서 나름의 고민 끝에 내가 쓰게 될 글들의 방향을 영화와 매체 비평으로 잡았다. 글은 가급적 평이하게 쓰려고 노력한다. 현학적인 글은 가장 피하고 싶은 글이다. 그래도 글 안에 생각의 깊이, 성찰의 자료들은 담아야 하기에 흔한 인상비평도 지양하려고 한다.


  사실, 유튜브와 같은 동영상 플랫폼이 대세인 이 시대에 글 위주로 채워진 텍스트로 블로그를 꾸려간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에 대한 생각도 해본다. '*런치' 같은 블로그 플랫폼 화면을 보면 어찌나 다들 화사하게도 채우던지, 그 쪽은 나와는 맞지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같은 볼거리 위주의 시대에, 나처럼 오직 '생짜' 문자로만 채워진 글을 올리는 이들도 드물 것이다. 사진이나 포스터 올리는 일이 드문 것은 첫째로는 내 귀차니즘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가 쓰는 글에 덕지덕지 뭔가 볼 것을 붙여서 가독성을 떨어뜨리고 싶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저작권 법에 명시된 공정이용 항목은 잘 숙지하고 있으므로, 출처 표기를 전제로 포스터 정도 올리는 일은 문제될 것이 없다. 다만, 글을 읽는 이들이 텍스트 자체에 집중해주었으면 하는 바램과 함께, 좋은 영화 리뷰라고 느낀다면 나중에 독자가 스스로 자료를 찾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음, 이렇게 써놓고 보니 참 불친절한 블로그 주인의 변명 같기도 하다.


  아마도 이 블로그를 우연히 들르게 된 이들은 그 생경함에 움찔, 하고 놀랄 수도 있다. 오직 글로만 채워진 텍스트에, 주인장과 방문자 사이에 그 어떤 댓글 교류도 없는데, 매일 글은 올라오고, 누군가는 그걸 읽는 희한한 시스템이라고나 할까. 뭐랄까, 블로그 주인장도 무진장 내성적인(introvert) 사람이고, 이곳을 오는 이들도 다들 수줍음이 많은 것인지도 모른다. 댓글이 올라오면 읽지만, 그걸 읽고나서 드는 생각은 '아, 어떻게 답글을 달아야 하지', 고민하면서 결국은 답글을 달지 못한다...


  좀 우스운 이야기 같지만, 블로그에 글 쓸 때는 '춥고 배고픈' 상태에서 글을 쓴다. 뭔가 '거지 모드', 그런 약간의 긴장 상태에서 글을 쓰는 것이 잘 써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글을 쓰게 되면서, 커피가 전보다 늘었고, 다시 애정을 가지고 영화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조회수가 신경쓰이지 않는다고 한다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그 보다는 '좋아요'에 신경이 더 쓰인다. 적어도 '좋아요'에 1이라도 찍히면, 어제도 '망글'은 쓰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그렇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칭찬에 인색하다는 것을 잘 알기에, 그렇게 표현해주는 독자들에게는 더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한편으로는 그것이 내가 계속 글을 쓸 수 있게 만드는 힘이 되기도 한다.


  모두가 유튜브로 몰려가는 시대에, 이런 구닥다리 블로그를 찾아서 글을 읽어주는 독자들이 '특별한' 이들일 거라는 짐작은 하고 있다. 무어라 표현은 할 수 없지만, 나름의 연대감을 느끼며 글을 쓰고 있다. 내가 언제까지 글을 올리게 될 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동안에는 나도 보람을 느끼고, 이 곳을 찾아주는 이들에게도 유익한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있다. 이 자리를 빌어, 이렇게 글을 읽어주는 독자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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