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CSI 라스베가스'를 보는데, 재미난 부분이 있었다. 범인을 다 검거하고 나서, 브래스 경감과 스톡스 요원이 대화를 나눈다. 범인들이 저지른 일들이 'Jumping the shark' 같아, 라고 말을 주고 받자, 스톡스 요원도 수긍한다. 그러나 그걸 들은 그리섬 반장은 무슨 뜻인지 몰라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아니, jumping the shark, 이 말뜻을 정말 모르는 거야?"


  그리섬 반장이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묻지만, 브래스 경감과 스톡스 요원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가버린다. 어쩌면 이제 쓰고자 하는 글은 그 'Jumping the shark' 같은 것이 될지도 모르겠다.


  오래전, 학교 다닐 때의 일이다. 다른 과의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가 입학하기 전에 학교 강당에서 열렸다는 굿 공연에 대해 들었다. 굿을 주관한 만신(오랜 경력의 큰 무당을 일컫는 말)이 굿을 끝내고 그 학과 관계자들에게 했다는 말을 들려주었다.


  "아, 굿하는데 귀신들이 너무 많이 나와서 놀랐지 뭐요. 구석 구석 자리 잡고 앉아서 보는데, 그것도 다 무복()입은 옛날 귀신들이야. 이렇게 귀신많은 학교에서 학생들이 어찌 공부하나 싶고, 걱정이 됩디다. 이런 데서 공부하면 애들이 많이 아프고 힘들어요. 보통 기가 센 애들 아니면 견디질 못해."


  어느 수업 시간에 예전에 학교에서 살풀이 굿 공연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그런 뒷이야기를 듣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러면서 만신이 덧붙인 이야기도 전했다.


  "학생들 가운데는 귀신 보는 애들도 있을 거요. 그러면 놀라지 말고 기도를 하라 그래요. 귀신한테 여기 있지 말고 좋은 데 가라고, 기도해주겠다고 그러면 괜찮아요."


  나는 흥미진진한 그 이야기를 듣고 그냥 웃어넘겼다. 학교 옆에 무덤이 있으니 그럴 법도 하네, 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다니던 학교의 아이들 생각하면 만신의 말도 맞겠다 싶었다. 보통의, 평균적인 삶의 행로를 가길 원하던 아이들은 대개 그 학교를 견디지 못하고 그만 두었다. 통계의 정규분포 곡선에서 가운데가 아닌 양쪽 끝에 자리한 아이들의 집합체 같았다고나 할까, 학교 밖에서라면 만나고 싶지 않은 유형의 사람들을 모아놓은 것 같았다. 아마 다른 아이들이 보기에는 나도 그러했을 것이다. 


  몸이 아픈 아이들이 많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모두들 마음속 고민들은 많고 나름의 괴로움을 떠안고 살았을 것이다. 예술이라는 것은 '빛 좋은 개살구' 같다. 그걸 배워도 무슨 자격증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취업이 보장되는 건 더더욱 아니다. 그 세계에서 빛나는 사람은 빙산의 맨 위쪽 아주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고, 나머지는 차가운 얼음물 밑에 잠겨서 보이지도 않는 삶을 살아간다. 그러니 들어온지 1년을 채우지 못하고 나가는 애들도 많았고, 더러는 점집 찾아가서 이 공부 계속 해야하냐며 물었다는 우스갯소리도 했다.


  어쨌든 만신의 그 말은 귀신 많은 학교에서 어떻게든 잘 다녀야겠네,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기는 했다. 한편으로는 성질 나쁜 아이들과 부딪히더라도, 그래, 너나 되니까 이 학교에서 견디는 거겠지, 하면서 마음을 다스리곤 했다.


  내가 학교에서 가장 많이 머무르고, 그나마 편하게 여겼던 곳은 지하 시사실이었다. 공강 시간이나 일찍 강의가 끝난 날은 자료실에서 영화 대출해서 그곳에서 보는 때가 많았다. 방학 때는 학교에 아침 10시쯤 나와서 오후 6시까지 영화를 보다 갔다. 방학 때조차 마치 출퇴근 하는 직장인처럼 살았던 것 같다. 하는 일이 돈을 버는 일이 아닌 영화 보는 일이었지만.


  아마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그 즈음이었을 것 같다. 자료실에서 영화 대출해서 지하 시사실 모퉁이를 돌아서 가는데, 내 앞으로 뭔가 확 지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건 형상이라고 할 수도 없었고, 뭔가가 느껴지기는 했는데 아주 서늘한 기운이었다. 물론 그 지하의 공간 자체가 늘 서늘하고 추운 곳이기는 했지만, 내가 느낀 기운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약간의 오싹함을 느끼게 하는 그런 것이라고 해두자.


  그 짧은 순간, 나를 보고 휙 스쳐갔던 그 뭔가는 푸르스름한 빛을 띄었다. 나는 귀신이란 것은 믿지도 않았고, 본 적도 없었다. 그러나 이건 뭔가 다른 것이구나, 싶은 직감이 들었다. 어떤 에너지나 파장으로 느껴졌다는 것이 맞을 것도 같다. 그런데 그건 무서운 느낌이 아니라 슬픔과 외로움의 감정으로 느껴졌다.


  "여긴 네가 있을 곳이 아니야. 좋은 곳으로 가렴. 내가 기도해줄게."


  나도 모르게 혼자 속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만신의 말이 순간적으로 떠올랐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말하고나니 조금은 놀란 마음이 한결 차분해진 느낌이었다. 그 일 이후로 지하 시사실을 찾는 것이 꺼려지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시사실에서 영화 볼 때, 항상 전등을 켜두었다.


  'Jumping the shark'는 1970년대에 미국에서 인기를 끌었던 TV시리즈 'Happy Days'에서 유래된 말이다. 처음에는 무척 인기를 끌었던 이 시트콤은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소재고갈과 떨어지는 시청률에 고전했다. 급기야 해변에서 상어를 뛰어넘는 수상스키 장면을 넣는 무리수도 나왔다. 그 이후로 이 숙어는 '무리한 설정, 뜬금없는 이야기로 관심을 끄는' 이라는 관용어가 되었다.


  느닷없이 '귀신 이야기'라니, 나름 좋은 글을 기대한 블로그 방문자들에게는 다소 실망스러운 글이 될까 싶기도 하다.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쓰는 귀신 글, 'Jumping the shark'가 되겠지만, 언젠가는 꼭 써보고 싶었던 글이었다. 푸른 이마의 그 귀신을 본 이후로는 그와 비슷한 어떤 것도 본 적이 없다. 지하 시사실이 있었던 본관의 건물은 학교가 신축 건물로 이전하면서 철거되었다. 그래도 나는 영화와 많은 시간을 보냈던 그 본관 건물에 더 많은 추억을 가지고 있다. 귀신이 있었을지는 몰라도, 정겨운 공간으로 아직까지도 내 기억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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