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첼(pretzel)'이라는 과자가 있다. 원래는 독일에서 유래한 패스추리 빵의 한 종류인데, 미국으로 건너가서 과자로 재탄생했다. 매듭 모양의 과자로 표면에 뿌리는 굵은 소금이 특징이다. 아들 부시 대통령이 이 과자 먹다가 목에 걸려서 크게 고생했다는 일화도 있다. 아무튼 이 과자의 특징은 나름 중독성이 있다는 것인데, 그 짠맛과 단단한 식감에 매료되면 프레첼을 끊을 수가 없게 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프레첼 과자 브랜드는 미국 S사의 프레첼이었다. 주로 소포장 용량으로 나오는 제품을 구입해서 먹곤 했다. 그 독특한 식감과 짠맛은 잊을 만하면 생각이 났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 단단한 과자가 치아에 좋지 않을 것 같아서 그냥 먹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 얼마전, 마트에 갔다가 미국 과자를 하나 사왔는데 땅콩 버터가 든 프레첼이었다. 땅콩 버터가 소로 들어서 뭔가 특이한 맛이겠거니 생각은 했는데, 문제는 그게 아니라 과자에 뿌려진 소금이었다. 짜도 너무 너무 짰다. 조그만 칩 같이 생긴 과자 서너개를 먹고 나면 더 먹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과자는 마치 장식품처럼 큰 유리병에 담겨져 식탁에 보름째 놓여 있다. 종종 새로운 과자의 맛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일이다.


  어린시절부터 나는 과자를 무척 좋아했다. 명절이나 제사 때에 친척 어른들이 집에 꼭 사들고 오는 알록달록한 포장지의 종합선물세트는 가장 좋아하는 선물이었다. 상자를 열면 각양각색의 과자들이 있었는데, 그것을 가지고 어떻게 나눌 것인지가 문제였다. 극성맞은 나와 둘째 사이에서 막내는 자신이 그다지 원하지 않는 것들을 받았는데도 불평 한마디 없었다. 그 착한 막내 동생은 아직도 과자를 끊지 못하는 나를 위해 맛있거나 새로 나온 과자가 있으면 사서 보내준다. 


  'B-29'라는 이름의 과자는 1980년대 초를 풍미했던 과자였다. 그 독특한 카레 맛은 나름 인기가 있었다. 1991년에 단종되었다가 그 맛을 잊지 못한 사람들의 재발매 요구로 2009년에 나왔으나, 3년만에 단종되었다. 다시 나온 그 과자를 먹어 보았더니, 그 맛은 내가 예전에 먹었던 '그 맛'이 아니었다. 뭐랄까, 가루 날리는 약간 싸구려 카레 맛이 그 과자 맛의 본질이었다. 그러나 새로 나온 과자는 세련된, 순한 카레 맛이었다. 88올림픽 때 선수촌 식당에서 있었던 일화가 떠올랐다. 인도 선수들이 카레 음식을 먹어 보고 이게 무슨 음식이냐고 물었다는 웃지못할 에피소드가 신문에 실렸다. 재발매된 B-29는 예전의 그 맛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본질을 잃은 맛'이었을 것이다.


  '아폴로' 과자도 기억이 난다. 작은 빨대 안에는 단맛의 카라멜 같은 것이 들어있었는데, 나는 포도맛을 좋아했다. 아마도 그 단맛은 내 치아의 크라운과 금 인레이 보철물에 작게나마 일조했을 것이다. 당시에도 먹으면서 '아, 이건 무서운 단맛이다' 싶어서 그렇게 많이 먹지는 못했다. 그런가 하면, 학창 시절에는 '치토스'의 열렬한 팬이었다. 옥수수분을 재료로 한 그런 계열의 과자로는 '썬칩'도 있었다. 생각해보니, 나는 정말로 과자없이 못사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내 기억 속에서 그 어떤 과자 보다도 잊을 수 없는, 최고의 맛으로 남아있는 과자는 '딱따구리'라는 과자다. 1980년대 초반 가격이 50원이었는데, 나는 피아노 학원 가는 길에 꼭 이 과자 두 봉지를 사서 먹으면서 가곤 했다. 내가 살았던 3단지 아파트에서 피아노 학원이 있는 4단지 상가로 가려면, 작은 언덕길을 넘어야 했다. 과자를 다 먹을 무렵에는 피아노 학원에 다다랐다. 나는 그 과자를 먹으며 걷는 그 길이 무척이나 행복했었다.


  백원 크기의, 윤곽선에는 작은 홈들이 파여있는 그 과자의 맛을 표현하라면 쉽지가 않다. 그것은 '중용의 맛'이었다. 짜지도, 달지도 않았고, 느끼한 맛도 아니었다. 질리지 않는 은근한 맛이었는데, 나는 이제까지 먹어본 그 어떤 과자에서도 그 맛을 다시 느낄 수는 없었다. '쌀로별'이라는 과자가 아마도 그 형태나 맛에서 좀 근접했다는 느낌을 받기는 했다. 그 맛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과자가 80년대 중반에 단종되어서 다시 나오지 않는 것이 아쉬울 법하다. 내가 추측하기로는 딱따구리 만화와 관련된 저작권 문제가 걸려있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딱따구리'와 함께 했던 그 아파트에서 2년을 보낸 후 우리 가족은 다른 곳으로 이사했다. 내 유년의 삶은 유랑극단 같았다. 국민학교 시절에만 무려 5번의 이사를 다녔다. 어느 도시에서는 6개월을 머물기도 했다. 주로 아버지의 직장 발령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런저런 집안 사정도 있었다. 정주(定住)하지 못하는 삶. 이사를 할 수 밖에 없었던 부모님을 이해했지만, 나에게는 그 시절의 기억이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나에게 그 아파트는 마치 고향 같은 곳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곳을 떠난 후, 다시 그곳을 찾은 적이 없다. 언제나 항상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았던 그 아파트는 몇년 전, 재건축을 위해 철거되었다. 나는 댐 건설로 고향이 수몰된 사람들의 심정을 알 것 같았다. '딱따구리'를 먹으며 행복을 느끼며 걸었던 그 작은 언덕길은 그 과자를 나에게 '고향의 맛'으로 각인시켰다. 


  '모든 견고한 것은 공기 속에서 사라지고...'. 아주 오래전 읽었던 칼 맑스의 '공산당 선언' 가운데 내가 기억하고 있는,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다. 이제는 그 작은 책자의 내용의 무엇이었는지도 가물가물하다. 그 글귀에는 인생의 자명한 진리가 담겨져 있었고, 또 그 표현도 문학적이라 좋아했던 것 같다. 영문본에는 '녹아버리고(melt)'라는 단어로 되어있지만, 나는 '사라지고'를 쓰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풍화'의 의미를 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번에 녹아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에 따라 결국은 삭아져 가루가 되고 그 형체를 알 수 없게 되는 것. 나의 고향도, 그 고향의 맛도 이제는 사라졌다.


  대형 마트의 과자 코너를 돌아다니다 보면, 나는 아직도 그 '딱따구리'를 찾아다니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 어떤 과자도 그 맛을 대체할 수는 없었다. 기껏해야 조미료가 적당히 든, 유탕처리 식품에 불과한 50원짜리 그 과자는 그렇게 지나간 그 모든 것, 다시 되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 좋은 추억의 집합체로 내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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