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 뉴스를 보다가 20대 택배 노동자 사망 소식을 들었다. 내용을 더 들을 수가 없어서 TV를 그냥 껐다. 그런 소식은 여러번 듣게 되어도 익숙해지지 않으며, 마음이 아픈 것도 무뎌지지 않는다.


  오래전, MBC 무한 도전의 어느 회차에서 박명수가 새벽 버스에 탑승했던 장면이 있었다. 마침 버스에는 고등학생이 타고 있었는데, 박명수에게 응원의 말을 부탁했었다. 


  "지금 공부 열심히 안하면, 더울 때 더운 데서 일하고 추울 때 추운 데서 일한다."


  박명수는 나름의 통찰력 있는 말솜씨 덕분에 따로 '박명수 어록'까지 만들어져서 인터넷에서 떠돌아 다닌다. 나는 아직도 그 말을 기억하고 있다. 더울 때 더운 데서 일하고, 추울 때 추운 데서 일하는 직업이라... 택배 기사들을 볼 때마다 그 말이 떠올랐다.


  택배 기사들은 직영의 경우를 제외한 대다수가 자신이 소유한 배송 차량을 가지고 택배 회사와 계약한 '개인 사업자'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들을 자영업자로 인식하기 보다는 '택배 노동자'로 본다. 엄청난 노동 강도에 비해서 그들의 실질 수입이 크다고 보기도 어렵다는 점도 있을 것이다.


  해마다 반복되는 택배 노동자 과로사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자, 지난 7월에는 노동계와 시민 단체가 '택배 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를 꾸렸다. 대책위원회의 발표에 따르면, 8월까지 올해 들어서만 공식적으로 확인된 과로로 인한 사망자 수는 5명이다. 택배 노동자들의 과중한 업무의 핵심은 '분류 작업'이라고 하는 과정이다.


  '분류 작업'이 이루어지는 열악한 작업 환경과 과중한 업무 강도는 과로로 이어진다. 그래서 대책위원회는 그 과정의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대략적으로 2가지로 나눌 수 있다. 1)분류 작업의 자동화 시스템 도입, 2) 대체 인력의 채용. 2가지 모두 돈이 든다. 자금 여력이 있는 기업은 1번을 택했다. 택배사 가운데 오직 한곳만이 이 방법을 택했고, 나머지 중소 택배회사들은 원가 상승을 이유로 난색을 표시한다. 임시방편으로 분류 작업 과정에 대체 인력을 더 투입하고 있다고 들었다.


  어제 뉴스에 나온 20대 노동자 사망 사건의 경우, 유가족과 대책위원회 측이 '과로사'라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사측은 과로사는 사실과 다르다며 반박하고 있다. 사측의 주장은 이렇다. 사망한 노동자 A씨는 '택배 노동자'가 아닌 '택배 지원업무 일용직'이며, 그 업무는 과도한 업무와 거리가 먼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택배 지원업무'란 택배 포장에 필요한 노끈과 박스 등을 나르는 일을 의미한다.


  유가족과 대책위원회 측은 A씨가 물류 센터에서 1년 반을 일해왔으며, 그 기간 동안 75kg의 체중이 60kg이 되었으며, 야간 작업시 5만보를 찍을 정도로 과중한 업무에 시달렸다고 말한다. 2년의 근무 기간을 채우면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견뎠다는 유가족의 증언도 있었다.


  당진 용광로 추락 사고로 사망한 청년의 10주기가 지난 9월이었다. 이십대 청년이 작업장의 허술한 난간에서 떨어져 비극적으로 사망한 그 사건 이후로 우리 사회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그 기사 댓글에 달린 '그 쇳물 쓰지 마라'는 제목의 추모시는 노래로도 나왔다. 청년의 뼈 일부만 수습하고 남은 '그 쇳물'은 구형의 상징물이 되어 철강회사 뒷편 녹지에 보관되어 있다. 


  우리는 그러한 죽음을 기억할 유형, 무형의 상징물을 얼마나 더 보아야 할까? 자본주의는 그 탄생부터 이윤을 위해 달리는 폭주기관차와도 같았다. 자본주의가 인간의 얼굴을 가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괴물이 되어가는 것을 막을 수는 있어야 한다. 법과 제도, 상식과 합의가 제대로 작동하기만 한다면 노동 현장의 가슴 아픈 죽음은 막을 수 있다. 누군가의 생명과 안전의 희생으로 굴러가는 사회는 결코 건강한 사회가 아니며, 오히려 그 사회는 소수자, 약자, 하층민에 대한 야만성과 폭력이 내재된 사회일 것이다. 


  어제, 그 뉴스를 듣고 내가 할 수 있었던 일은 잠들기 전 기도에서 청년의 명복을 비는 것 뿐이었다. 그리고 오늘 이 글을 쓴다. 일상과 영화 같은 소소한 글을 쓰는, 방문자 수도 얼마 되지 않는 블로그이지만, 이 곳에 오는 누군가는 이 글을 읽고 그 청년의 죽음을 기억해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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