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EBS 방송에서 눈길을 끄는 프로그램이 하나 있다. '가만히 10분 멍 TV'라는 이 프로그램은 10분 동안 고정된 카메라로 어떤 한 대상을 '가만히' 보여준다. 예를 들면, 아궁이에서 장작 타는 장면이라든지, 한옥거리를 오가는 사람들, 63빌딩 표면에 비친 풍경과 하늘을 그냥, 무작정 보여주는 식이다. 저런 것이 영상 ASMR인가 싶은 생각도 든다. 엊그제는 수족관의 줄무늬 정원장어를 보여주었는데, 처음에는 모래 속에서 꿈틀거리며 나오는 장어 모습에 기겁했다가 그 징그러운 귀여움(!)에 10분을 웃으면서 보았다.


  무언가 생각과 감정을 요구하지 않는 그 10분은 마치 명상의 시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때론 그 가만히 있는 짧은 시간을 참지 못하고 채널을 돌릴 때도 있다. 어떤 대상을 그저 가만히 응시하는 그 자체가 참으로 쉽지만은 않은 일이구나 새삼 느끼게 된다. 그걸 보다 보니, 오래전 보았던 영화 한 편이 떠올랐다.


  어느날, 수업 대신에 틀어준 영화가 있었다. 그 영화는 시작부터가 범상치가 않았다. 낯선 선율과 대사로 시작되는 그 영화는 초반부까지는 어느정도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 갈수록 이야기는 흩어지고, 알 수 없는 목소리들이 화면에 겹쳐서 계속 흘러갔다. 중반부에 이르러서는 그냥 영화를 이해하는 것을 포기했다. 아무 생각없이 스크린을 응시하고는 있었지만, 견딜 수 없이 지루했고 도대체 언제 끝날까를 계속 생각했다. 영화는 마치 나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대가 생각하고 있는 영화의 개념, 그 자체를 무너뜨리려 합니다. 이야기 따위는 나한테 중요하지 않답니다. 무언가를 이해하려고 억지로 꿰어 맞추려는 시도는 하지 말아요. 나는 그대의 영화에 대한 그 모든 기대와 고정관념을 배신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니까요."


  그 영화의 모든 것들은 스크린 밖으로 탈주하고 있었고, 내 인내심도 바닥날 대로 바닥이 난 상태였다. 영화가 끝날 무렵이었던가, 여자가 부르는 노래가 들렸는데, 유일하게 그 노래만 좋았다. 영화가 끝나자 오랜 구금 상태에서 풀려난 것 같았다. 상영시간도 알지 못하고 보았던 그 영화는 나중에 보니 고작 2시간 짜리였는데도, 4시간을 본 듯한 피로감이 몰려왔다.

     

  영화의 제목은 '인디아 송(India Song, 1975)',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영화였다. 그 영화를 떠올릴 때마다 그 때의 기억이 나서 뭔가 진저리가 쳐졌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싫은 감정이 그리움의 감정으로 변모했다는 점이다. 다시 보라고 하면 절대 다시 볼 수 없는 영화인데, 그 영화의 무언가가 마치 기억의 연금술을 거치며 매혹의 성질을 획득한 것이다. 도대체 그렇게 만든 본질적 요소가 무엇인지 세월이 지난 지금도 알 수가 없다.


  가끔, 잔느 모로가 부른 그 노래 'India Song'이 라디오의 음악 프로에서 흘러나올 때가 있다. 그 노래를 들으면, 어떤 의미로는 그 엄청난 영화를 내가 견디면서 본 것이 대단하기도 하고, 혼자서는 도저히 못보았을 영화를 수업 시간에 보았던 것이 행운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무려 120분 동안 '멍을 때리며' 보아야 했던 영화를 아련한 그리움으로 추억할 수 있을 거라고는 그때는 알지 못했다.


  이 영화와 관련된 자료를 찾다보니 'mesmerizing'이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다. 진짜 그러하다. 끊임없이 관객의 인내심을 시험하며, 결국에는 영화적 최면을 걸어버리는 영화였다. 그래서 내 기억 속 그 영화는 그때의 지루함을 그리움의 감정으로 윤색시켜 버렸다. 마치 '가만히 10분 멍 TV'의 수족관 편 Splendid Garden Eel 들의 기이한 군무를 내가 다시 보고 싶어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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