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KBS '다큐멘터리 3일' 공무원 기숙학원 편을 본 적이 있다. 다양한 사연을 지닌 수험생들이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계속 떨어지니까 결국은 그만 두고 다른 길을 찾는 사람도 있었고, 마침내 시험에 합격해서 공무원이 된 이도 있었다. 그 사람에게 공무원 합격하고나서 가장 좋은 점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삶의 안정감이 느껴진다고나 할까요. 그 점이 제일 좋은 것 같아요."


  '삶의 안정감'이라니, 나는 이제까지 살면서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어서 조금은 놀랍기도 했다. 어떻게 하면 삶의 안정감을 느낄 수 있을까?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서 공무원이 되면 저런 감정을 느낄 수가 있는 걸까?

 

  학교를 휴학하고 잠시 공공 기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적이 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뭐랄까 '공무원의 세계'를 가까운 거리에서 관찰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이른바 '칼퇴근'이 보장되고, 이런저런 수당도 괜찮게 주어지며, 자기 업무만 잘 해내면 그렇게 싫은 소리 들을 일도 없는 나름대로 좋은 직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조직사회의 특성상 나로서는 좀 견디기 어렵겠구나 하는 점도 있었다. 그 세계는 철저한 상명하복의 사회, 개인의 창의성 같은 것은 전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는 막힌 사회로 보였다.


  아직도 내 기억에 남아있는 인상적인 장면이 있다. 어느날 아침에 출근을 하는 길이었다. 마침 그곳 기관장의 관용차가 정문 앞에 도착했다. 그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직원들이 양쪽으로 도열해서 기관장에게 인사를 하는데, 그 장면이 마치 영화 같았다. '출근하셨습니까?'하고 외치자, 기관장은 차에서 내리며 손을 흔들며 웃어 보였다. 그 '구역'의 왕은 그 기관장이었다. 속으로 '대체 뭐하는 거야'하는 말이 절로 나왔다. 내게는 무척이나 생경스러운 풍경이었다. 날더러 저렇게 하라고 하면 나는 할 수 있을까 스스로 물어보기도 했다. 못할 것 같았다. 어쩌면 그래서 공무원이 되지 못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영화 공부를 그만 두고 무얼 할까 생각하다가 공무원 시험이 떠올랐다. 그런데 알아보니 나는 시험을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었다. 당시에는 공무원 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연령에 제한이 있었다. 나이가 좀 들었다고 해서 시험도 치루지 못하게 하는 것은 너무 부당한 것이 아닌가? 그 말도 안 되는 법령이 폐지되려면 그로부터 몇년이나 더 있어야 했다. 마침내 공무원 응시 연령 상한제가 폐지되고 나자, 40대부터 50대에 이르는 합격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뉴스에서 '늦깎이' 합격자들을 인터뷰하기도 했다. 그 즈음에 나는 공무원으로 살아가기에는 이제는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나는 며칠 전, 동생과의 전화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차라리 일찍 공무원이나 될걸 그랬어." 


  "공무원도 5급 이상은 월화수목금금금, 이렇게 산다고 하더라. 일이 그렇게 많고 힘들대. 그래도 공무원 연금 보면서 그냥 견디는 거지 뭐."


  동생은 그렇게 대답했다. 동생에게는 정부 부처의 5급 공무원 친구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그 삶도 녹록하지 않은 모양이다.


  내가 만난 영화 쪽 사람들의 삶은 대개 안정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런저런 일을 하며 살아가고는 있지만, 무슨 고정적인 수입이 있는 경우는 드물었고, 말못할 밥벌이의 괴로움을 다들 떠안고 살아가고 있었다. 아마 가장 안정적인 자리라면 대학의 교수직이 될 것이다. 그러나 어려운 시절에는 열정만으로도 자신의 작품을 만들던 이가 교수 자리에 안착하고서는 아무런 작품을 만들지 못하기도 한다. 나는 그런 것을 보면서 '삶의 안정성'이라는 것이 창작하는 사람에게는 '양날의 검' 같은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흔들리면서도 쓰러지지 않고 버티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 어쩌면 내가 살아가는 동안 안정적인 삶이란 도달하기 힘든 이상인지도 모르겠다. 흔들리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어설프게 무언가에 의지하려 한다거나, 한 자리에서 멈추지만 않으면 된다. '흔들리다'라는 동사를 내 인생의 동사로 생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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