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먼저 쓴 글 '다시 그 때로 돌아간다면, 7인의 사무라이(https://blog.aladin.co.kr/sirius7/12058094)'와 연결되는 글이다. 이 글에는 뛰어난 영화 감독이자 배우였던 오손 웰스에 관한 이야기는 조금 나온다. 그렇다고 해서 그에 대해 궁금해하는 이에게 무슨 도움이 될 만한 글은 아니며, 그에 얽힌 개인의 후일담이다.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은 어쩌면 이 글을 읽지 않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읽고나면 약간은 슬퍼지고 우울해질 수도 있다. 그러니 뒤로 가기 버튼을 살짝 누르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다.


  학교를 다니면서 많은 강의를 들었지만, 아직도 기억에 남는 좋은 강의들이 있다. 러시아 영화사 수업도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강의였다. 나는 그때 수업시간에 받았던 프린트 자료들을 지금도 보관하고 있다. 세 시간 짜리였던 그 수업은 두 시간은 영화를 한편 보고, 나머지 한 시간은 짧은 강의와 영화를 본 소감을 말하는 것으로 진행되었다. 강의를 맡은 N선생은 러시아 유학파 출신으로,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러시아 영화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때 보았던 좋은 영화들이 가끔씩 떠오를 때가 있다. '학은 날아가고(1957)', '병사의 노래(1958)', '나는 쿠바다(1964)', 같은 영화들.


  나는 가장 좋았던 그 수업을 들으면서, 영화를 공부하던 첫해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마음 속으로는 영화와의 결별을 계속 생각했다. 러시아 영화사의 마지막 수업이 있던 12월의 어느 날 저녁, N선생에게 인사를 하면서 학교를 그만둘 생각이라고 이야기를 했다. 선생은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듣더니 이렇게 말했다.


  "글쎄, 내 생각은 그래. 하나의 과정을 시작했으면 그걸 끝마치는 게 좋아. 좀 힘들고 괴롭더라도 말이지. 일단 이 공부를 시작했으니 끝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영화에 대한 열정으로 치자면, N선생도 남다른 사람이었다. 젊은 시절에 가방 하나 싸들고 영화 공부하겠다고 러시아로 떠났던 그는, 힘들게 공부하면서도 재미있었다고 회고하던 양반이었다. 그러나 그의 조언대로 한 과정을 끝마치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어렵게 들어온 학교를 그만 두는 아이들도 많았다. 그리고 그렇게 떠나고서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K의 경우도 그러했다. 


  "이 학교 다니면서 매일 매일 울지 않은 날이 없었네요. 새벽마다 기도하면서 학교 계속 다녀야하나 물었어요."

 

  K와는 학과 동기이기는 해도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 나는 K가 그렇게 고민하면서 학교를 다니고 있는지는 잘 알지 못했다. K의 기도는 결국 응답을 받았고, 그 말을 끝으로 1년 동안 다닌 학교를 그만 두었다. 명문대 출신으로 중등 교사 자격증이 있었던 K가 중학교 교사가 되었다는 소식은 나중에 들었다. 경계선 밖에서 보는 것과 그 안에 들어가서 보는 것의 차이. 영화의 세계로 들어온 이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다시 경계선 밖으로 나갈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글 제목 낚시꾼이 되지 않기 위해, 오손 웰스 이야기를 시작해야한다. 러시아 영화사와 함께 내가 들은 좋은 강의 가운데에는 미국 영화사도 있었다. 나는 영화사 수업을 참 좋아했다. 영화의 역사를 만들어낸 사람들의 열정과 그 놀라운 순간들의 기록들을 복기하는 일은 즐거운 일이었다. 미국 영화사는 매 강의시간마다 과제로 주어지는 영화가 적게는 두세 편, 때로는 네다섯 편까지 되었다. 그 많은 영화들을 보면서도 지겹다는 생각은 결코 들지 않았다.


  아마도 내가 오손 웰스에 대해 무슨 발표 과제를 맡았던 것 같다. 강의를 맡은 평론가 선생이 과제 발표에 포함하라면서 비디오테이프를 하나 건넸다. 미국에서 만든 오손 웰스 다큐였는데, 자막은 없었다. 이 다큐는 오손 웰스가 직접 자신의 영화 인생을 회고하면서, 중요한 영화적 순간들을 설명한다는 점에서 남다른 데가 있었다. 무자막이기는 해도, 오손 웰스의 영화들은 거의 다 본 것들이어서 내용을 따라가는 것은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오손 웰스는 작은 영사기 앞에서 자신의 영화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노년에 접어든 그는 담담하고도 차분하게 이야기를 끌어갔는데, 다큐의 끝부분에 그가 자신의 감정을 강하게 드러내는 장면이 있었다. 영화가 자신의 인생에서 무엇이었나를 말하는 부분이었다. 


  "이 망할 놈의 마법 상자가 결국 내 인생을 망쳐놓은 거요."     


  주먹에 든 무언가를 부숴뜨릴 것처럼 꽉 힘을 주며 팔을 흔드는 그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고, 눈시울에는 눈물까지 맺힌 것 같았다. '망할 놈의 마법 상자'는 영화를 이르는 말이었다. F***ing magic box. 그 말을 여러번 반복하는 오손 웰스를 보는 것은 정말이지 마음이 무척 아팠다. 나는 다큐내내 드문드문 알아듣던 영어를 그 부분에 이르러서는 아주 명료하게 들을 수 있었다. 마치 동시통역이 이루어지 듯, 그가 토로하는 말의 토씨 하나 하나가 귀에 와서 박혔다.


  "이봐. 자네는 영화가 자네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것 같은가? 내가 말하는 것이 연기로 보이지는 않겠지. 결국 영화가 나한테 남긴 것은 회한과 고통 뿐이라네."


  오손 웰스는 마치 나에게 그렇게 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의 진심을 읽었고, 그것이 사실임을 알았다. 그러나 믿을 수는 없었다. 앎과 믿음은 다른 것이다. '믿음'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가 말하는 진실을 믿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나보다 훨씬 앞서 영화 세계로의 초대장을 받은 사람이었다. '시민 케인(1941)'으로 영화사에 위대한 감독으로 남았으며, 뛰어난 성우이기도 했고, 배우, 제작자로서 자신의 일생을 오롯이 영화에 바친 사람이었다. 그런 그는 결국 영화가 자신의 인생을 망쳤다고 회고했다. 그 다큐는 그의 말년에 제작된 것이었다.


  나는 1년의 시간이 흐른 후, 자퇴서 같은 휴학계를 냈다. 정해진 계획은 아무 것도 없었다. 다만 그 모든 것에 진절머리가 났으며, 다시는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 과정을 시작했으면 끝마치는 것이 좋다는 N선생의 조언은 마치 낚싯줄의 납추처럼 내 마음 한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그 납추는 눈에 잘 띄지 않은 곳에 있었고, 나는 가끔 그것을 보더라도 무시했다. 그것을 다시 건져 올릴 생각도 하지 않았다. 납추는 썩거나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언젠가 들어 올려질 날을 기다리며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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