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의 일이다. 자려고 하는데, 뭔가 창가 쪽에서 파르르 떨리는 소리가 들렸다. 외풍이 심한 집이라 창문마다 방풍비닐을 붙여놓아서, 바람부는 소리에 비닐이 움직이며 내는 소리인 줄 알았다. 아무튼 바람소리이겠거니 했는데, 아침에 일어나서도 그 소리가 계속 들렸다. 퍼드드득, 같이 들리기도 하고, 그 소리는 묘하게 귀에 거슬렸다. 아무래도 이상하다 싶어서 창가 커튼을 이리 저리 살펴보면서 소리의 근원을 찾았다. 갑자기 뭔가가 날아올랐다. 엄지손톱 보다 조금 큰 '나방'이었다.


  기겁한 나는 급한대로 책상의 잡지를 휘두르며 나방을 겨우 잡았다. 한겨울에 나방이 어떻게 방으로 들어온 것일까? 가만히 생각해 보니, 환기를 위해서 열어놓은 창문을 통해 따뜻한 기운을 따라 나방이 들어온 것 같았다. 나방도 이 추운 겨울에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들어왔는데, 내가 살려주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이 약간(?) 들었다. 그 일 이후로는 창가에서 약간의 무슨 소리만 들리면 혹시 벌레는 아닌가 잘 살펴보는 습관이 생겼다.


  그래도 나방은 좀 덜 무섭다. 혐오스럽기로 치면 바퀴벌레만한 것이 있을까 싶다. 몇년 전, 한밤중에 찬장을 열었다가 뭔가 휙 지나가는 것을 봤는데 바퀴벌레였다. 바퀴벌레 박멸에 진리라는 살충제를 사서 도포한 뒤로는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해마다 봄만 되면 베란다에서 손가락만큼 큰 바퀴벌레가 끈끈이에 죽어있곤 있다. 집바퀴와는 좀 다른 모습에 검색을 해보니 산바퀴라는 하는 야생 서식 바퀴가 날아다니다가 그렇게 들어오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다행히 봄철 번식기에만 그렇게 좀 날아다니다 마는 모양이었다.


  어렸을 적 살았던 아파트에는 애집개미라고 하는 불개미가 있었다. 과자 부스러기 하나만 떨어지면 엄청나게 몰려들었던 그 개미떼의 기세는 정말 대단했다. 그때만 하더라도 밀폐용기는 있지도 않던 때라 과자와 같은 먹을 것들은 보관도 제대로 하기도 어려웠고, 그래서 더 개미들이 극성이었을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불개미에 많이 물리고 고생했던 기억은 바퀴와 더불어 정말 끔찍한 해충이라는 인식을 남겼다.


  집게 벌레도 빼놓을 수 없다. 주로 습한 화장실에서 출몰하는데, 그 흉측스러운 모습이 불러일으키는 공포감은 이루말할 수 없다. 반짝거리는 검은 외피에 그 집게 꼬리는 너무 무섭다. 그나마 바퀴벌레 보다는 느리게 움직여서 잡기가 좀 수월하기는 하다. 도대체 어디서 이 벌레들이 들어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거미들은 물거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끊임없이 거미줄을 치면서 창틀이나 방충망에 귀찮은 청소거리를 만들기 때문에 혐오의 대상이 된다. 특히 집에 주로 서식하는 유령거미들은 주로 작은 먼지덩이 같은 집을 짓는데, 그 자체로 보기가 좋지 않다. 그래서 대부분의 거미들이 집안의 해충을 없애주는 익충임에도 없애버려야할 해충 취급을 받는 것도 사실이다.


  언젠가 해녀들을 다룬 다큐를 본 적이 있다. 물질을 나가려고 준비하던 나이든 해녀가 거미 한마리를 방에서 발견하고는 밖에다 놓아주는 장면이 있었다. 감독이 왜 거미를 죽이지 않고 놓아주냐고 궁금해서 물었다.


  "뭐 딱히 이유는 없는데, 그냥 우리가 물질 나가기 전에는 거미는 살려서 내보내요. 절대 안죽여. 오랫동안 그리 해놔서."


  해녀들에게 거미가 뭔가 상서로운 징조로 여겨지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그때의 기억이 남아서일까? 나도 거미는 정말 놀랐을 때는 제외하고는 선뜻 죽이거나 하지는 않는다. 방충망에 매달려 있을 때는 손으로 쳐서 털어버리고, 대개는 밖으로 내어보낸다. 그러고보니, 거미를 연구하는 곤충학자의 인터뷰 기사가 떠오른다.


  "거미를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이 기사를 읽는 독자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어요. 집에서 발견되는 거미는 주로 유령거미라고 하는 것인데, 사람에게 아무런 해도 안끼치고 오히려 해충을 없애줍니다. 그러니 집에서 거미를 보더라도 막 죽이지는 말아주세요. 물론 이 기사를 보고나서도 거미를 보면 죽이지 않기는 힘들 겁니다. 때론 죽일 수 있겠지만, 그래도 가급적 살려주면 좋겠어요."


  거미를 향한 곤충학자의 애정어린 부탁을 듣고나니, 창가와 구석진 곳을 지저분하게 만드는 유령거미를 보더라도 그렇게 밉거나 짜증스럽지 않았다. 그래도 어쨌든 벌레의 형상을 한 모든 것들은 크던 작던 그 자체가 알 수 없는 무서움과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 최근에 나를 놀라게 한 벌레는 책벌레라고 불리우는 '먼지다듬이'였다. 책들 사이에서 자잘한 것들이 자유롭게 활보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저걸 어쩌나 싶은 한숨부터 나왔다. 먼지다듬이는 그 작은 크기 때문에 방제가 어렵기로 소문난 벌레다.


  "그래, 너희들도 먹고 살아야겠지."


  그냥 그렇게 말하고 모르는 척하면서, 나는 많은 책들과 책벌레와 집에서 함께 살아갈 방도를 찾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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