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초봄의 일이다. 어쩌다 보니 밤늦게까지 깨어 있던 날들이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날, 새벽에 찻물을 끓이려고 가스레인지를 켜고 부엌 창문을 열었다. 밖에서 무언가 큰 기계 소음이 계속 들렸다. 마치 이삿짐 센터 사다리차가 내는 굉음 같았다. 시계를 보니 새벽 1시 반이 좀 넘었다. 앞동의 아파트에서 나는 소리는 아니었다. 아파트 옆에는 바로 스포츠 센터가 있는데, 그쪽에서 나는 소리였다. 왜 새벽에 그런 소리가 나는 것일까 싶었다. 그 기계 소음은 약 10분이 넘게 계속 이어지다가 마침내 그쳤다.


  그 며칠 후 새벽, 이번에는 새벽 2시쯤이었다. 그 소음이 다시 똑같이 들렸다. 아직 겨울 추위가 남아있던 때라 두터운 외투를 걸치고 한번 나가서 확인해 보았다. 굉음의 정체는 바로 쓰레기 수거차였다. 청소 수거 업체의 차량이 스포츠 센터 주차장까지 들어와서 쓰레기를 수거해가고 있었다.


  나는 보름 정도 청소 수거 차량이 오는 요일과 시각들을 기록해 보았다. 주거지역에서 새벽 2시에 그런 소음이 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청의 환경과에 문의해서 담당 공무원과 통화할 수 있었다. 담당 공무원은 일단 자세한 상황을 알아보겠다고 하고서 나중에 전화를 주기로 했다. 일주일 후에 전화를 받았다.


  "그 청소차가 시에서 하청을 준 업체에서 나가는 차량인데, 자기들도 배정된 시간표에 따라서 하다보니 그렇대요. 구청 직속이면 어떻게 시간을 조정할 수 있을 텐데, 하청 업체도 워낙 일정이 빡빡하다 보니 나름 사정이 있나 보더라구요."


  수거 시간을 좀 앞시간으로 옮길 방법이 없냐고 물으니, 일단 이야기는 해보겠다고 했다. 그러고서는 끝이었다. 그 이후로도 청소 차량의 작업 시간은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나는 그 일을 계기로 쓰레기 수거 업무의 상당량이 외부 하청의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쓰레기 수거 관련 외주 업체 선정 공고가 여러개였다. 이제는 종영된 EBS의 다큐 '시선'에서 도시의 청소 노동자 문제를 다룬 적이 있었다. 거기에는 더 자세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청소라는 게,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하는 좋은 일이잖아요. 그런데 왜 그렇게 좋은 일을 이렇게 한밤중에, 남들 눈에 띄지 않게 해야하느냐는 거에요. 이렇게 밤에 일하면 잘 안보이기도 하고, 또 그래서 사고나 다칠 위험도 크단 말이에요."


  어느 외부 하청업체 청소 노동자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들은 또한 해마다 나아지지 않는 업무 환경과 임금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지자체에서 이루어지는 이러한 청소 업무의 외주화는 명목상으로 볼 때는 시의 예산을 보다 더 절감하는 효과를 보여준다. 외주를 주는 것이 인건비와 여러 부대비용의 측면에서 보면 더 나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절감된 비용이 얼마나 시민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정작 새벽 2시에 이루어지는 쓰레기 수거 차량의 소음 때문에 잠을 깨는 시민이 있어도, 그 시간 조정도 하지 못한다면 비용 절감이 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밤늦게까지 들리는 것은 새벽 청소 수거 소음 뿐이 아니었다. 그 스포츠 센터에 재작년에 새로 들어온 볼링장 소음도 문제였다. 방음 시설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서 그 소음이 인근 아파트 몇개 동에 걸쳐서 들리고 있다. 주간 시간에만 그런다면 견딜만 한데, 그 볼링장은 무려 새벽 3시까지 영업한다. 그런데 그 소음을 현실적으로 시정할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다. 생활 소음 관련 법률을 찾아보니, 그 기준이 실제로 적용되려면 진짜 공사장 소음 정도나 되어야 어떻게 현실적 수단을 강구해볼 수 있다. 담당 공무원에게 민원을 넣어보았자,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현장 실사 나가서 업주에게 소음 안나게 보강 공사라도 해보라고 말을 좀 해보는 것이 전부다.


  그 스포츠 센터에 입주한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은 오랫동안 해온 24시간 영업을 작년에 포기했다. 경비 절감이 이유였을 것이다. 한밤중에 커피를 마시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그 커피 전문점의 결정을 아쉬워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동네에는 24시간 편의점과 24시간 해장국집은 아직 여전히 영업 중이어서 대신 갈 곳이 남아있다.


  며칠 전에도 청소 수거차의 소음을 들었는데, 그 소리에 깨어나서 시계를 보니 새벽 3시였다. 이전보다 더 늦어진 모양이다. 새벽의 볼링장 소음도 여전히 들린다. 도대체 새벽 3시까지 볼링장이 영업을 해야하는 무슨 절박한 이유라도 있는지 진심으로 궁금해진다. 이제는 새벽에 청소차 수거 소리에 가끔 잠을 깨더라도 화가 치밀어 오르지는 않는다. 그 늦은 시간에 일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은 더 힘들겠거니 싶은 생각으로 마음을 다스린다. 이래저래 도시라는 곳은 쉽게 잠들 수 있는 곳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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