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저녁으로는 선선한 바람이 불지만, 아직 한낮의 햇빛은 열기를 머금고 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감나무의 감 색깔은 푸른색이었다. 그런데 오늘 본 양지바른 곳의 감나무에는 주황색의 감들이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그래, 가을이지.


  자주 나가는 산책길은 작은 공원을 경유하는데, 이 공원에는 목련, 산수유 나무를 비롯해 다양한 나무들이 심어져 있다. 그 나무들 가운데 가을만 되면 가장 수난을 당하는 나무가 참나무다. 해마다 가을이면 나이든 아줌마들이 배낭까지 메고 와서 도토리를 따간다.


  긴 막대기를 가져와서 가지를 후려치고, 발로 나무를 쾅쾅 쳐대면서 도토리를 따가느라 여념이 없다. 이렇게 말하면 그 공원에 참나무가 꽤나 많은 것 같지만, 내가 헤아려보니 열 두어서너 그루나 될까, 게다가 수령이 오래된 것도 아니어서 열매라도 해봐야 얼마 되지도 않을 터였다. 그런 도토리를 서로 따가겠다고 그러고 있는 모양새를 볼 때마다 눈살이 찌푸려졌다. 내가 알기로는 도토리로 묵을 만들어서 해먹으려면 꽤 많은 양이 필요할 텐데, 아마 이 공원 말고도 다른 곳까지 다니면서 따는지도 모르겠다. 오늘만 해도 돌아오는 길에 보니, 참나무 잎들과 도토리 껍질이 여기저기 흩어져서 나뒹굴고 있었다.


  가로수로 흔하게 심어진 은행 나무의 열매도 몇년 전까지만 해도 꽤 인기가 있었다. 커다란 포대 자루를 끌고 다니며 은행 나무를 쳐대면서 열매를 주워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열매를 따간 것으로도 모자라 그 냄새나는 껍데기를 까서 나무 밑에 한무더기로 버려놓고 가는 그 한심한 행태에 개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것이 도시의 가로수 열매에는 매연같은 중금속 물질이 많다는 보도들이 여러번 나가고 나서는, 발에 밟힐 정도로 은행 열매가 많이 떨어져도 이제는 줍는 사람이 별로 없다. 


  은행 열매가 전통적으로 동양권에서는 식재료로 쓰였기 때문에 그것을 먹는 것이 안전하다고 여겨지지만, 사실 은행 열매에 있는 4-MPN이라는 물질은 사람에 따라서는 신경 마비를 유발할 수 있는 신경독으로 작용한다. 이 물질은 열에도 안정적이라서 익히거나 열을 가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미국 병원 응급실에 은행 열매를 먹고 발작이나 마비 같은 증상으로 실려온 환자들의 인종을 살펴본 결과, 대다수가 아시아계라는 논문도 있을 정도다. 은행 열매의 독성을 간과하고 아이들에게 간식으로 먹이다가 응급실에 실려오는 경우도 있다고 소아과 의사들이 경고하기까지 한다.


  대추 나무도 수난을 당하는 대표적인 나무다. 나는 아파트나 공원에 심어진 대추 나무가 빨갛게 잘 익은 것을 본 적이 거의 없다. 대개가 익기도 전에 푸른 열매 채로 죄다 다 따가버리기 때문이다. 감나무의 경우에도 그 열매를 노리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가을 정취를 느낄만큼 보기 좋게 익은 감들이 한 며칠 보기도 전에 어디론가 다 사라져버린다. 아파트의 나무들은 정기적인 수목 소독을 하는데, 도대체 그런 나무 열매들을 기를 쓰고 따가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몇년 전 가을의 일이다. 밖에서 무슨 큰소리가 나길래 내다 보았다. 중년의 남자와 늙은 여자가 서로 핏대를 세우며 싸우고 있었다. 그 가운데에서 경비가 어쩔 줄 모르고 서있었다.


  "당신이 동대표 마누라면 마누라지, 어디서 경비를 종처럼 부려먹어. 이 아파트 경비가 당신이 감따라고 하면 감따는 사람이야? 내가 관리사무소에 항의를 하려고 전화를 몇통이나 걸었는지 알아? 그리고 경비 아저씨, 이딴 일 하지 마쇼. 진짜 열 받네, 어휴."


  쩌렁쩌렁 울리는 중년 남자의 말을 듣고나서 무슨 일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커다란 바구니에는 아파트 감나무에서 딴 감들이 그득했다. 나이든 경비의 얼굴에는 난감함과 곤혹스러움이 가득한 것처럼 보였다. 그날은 마침 휴일이었다. 그래서 관리사무소 사람들은 중년 남자의 의기에 넘치는 분노를 피할 수 있었다.


  학부 시절, 미학 개론을 들었을 때가 생각난다. 첫 강의 시간에 강사 선생님이 미학이란 학문이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지를 설명해주었다. 사과 나무에 열린 사과를 보는 두 가지의 관점이 존재하는데, 하나는 따 먹는 것으로, 또 다른 하나는 그냥 바라보는 것이라고 했다. 미학은 후자의 관점에서부터 출발한다고 했다.


  과수 농사를 짓는 농부가 아닌 도시의 사람들이 열매가 달린 가을의 나무들을 그러한 미학적 관점으로 바라보는 일은 정녕 도달하기 힘든 이상일까? 며칠 전에 이미 따가버린 대추 나무 아래 떨어진 퍼런 대추들과, 나뒹굴어 다니는 참나무 잎가지들을 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