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저녁으로 선선한 가을 바람과 함께 불청객인 모기도 찾아온 듯하다. 올해는 유독 길었던 장마에 더위 보다는 비와 습기 때문에 힘들었다. 모기에게는 한여름 보다는 선선하고 쾌적한 지금이 최적의 활동 시기인지도 모르겠다. 매트형 전자 모기향을 피워놓기는 하지만 효과를 그다지 체감하지는 못한다. 엊그제도 모기에게 물렸다. 대개는 칼라민이나 항히스타민제가 들어있는 약을 바르면 가려움증이 가라앉는다. 그럼에도 부종과 가려움증이 며칠이고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내게는 떠오르는 어느 독한 모기가 있다. 그 모기에게 물린 가려움증이 무려 한달 가까이 이어졌다.


  7년 전인가, 8년 전인가, 계절이 이제 겨울로 들어서던 11월 말쯤이었다. 꽤 추웠던 겨울이었다. 컴퓨터가 있는 서재는 외풍이 심했고, 난방도 시원찮아서 방은 늘 냉골이었다. 그래도 컴퓨터를 켜놓으면 본체와 모니터의 열기 때문에 약간 훈훈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오리털 파카를 입고, 털 슬리퍼를 신고서야 컴퓨터 앞에 앉을 수가 있었다. 어느날 발목이 몹시 가려워서 보니 모기에 물렸다는 것을 알았다.


  약을 발라도 가려움증은 쉽게 가라앉질 않았다. 가려움증에다 부종까지 있어서 마치 작은 혹이 붙어있는 모양새였다. 모기의 공격은 그 한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일주일쯤 지났을까, 발목에는 또 모기에 물린 자국이 생겼다. 양말을 세겹으로 겹쳐 신었는데도, 어떻게 귀신같이 물어대는 건지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그쯤되니 어떻게든 모기를 잡아야한다는 절박함에 컴퓨터 주변에 살충제도 뿌려보고, 전자 모기향과 전기 모기채까지 다시 꺼냈다. 모두 다 소용이 없었다. 모기는 배가 고플 때가 되면 어김없이 흡혈을 해서 목숨을 이어갔다. 생각해보니, 컴퓨터 주변의 적당한 온기와 창문의 커튼이 모기의 은신과 생존을 보장해주는 듯 했다.


  이런저런 방법을 써도 모기를 잡을 수 없게 되자 나중에는 그냥 포기하는 심정이 되었다. 한편으로는 모기가 언제까지 살아남을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발목은 한달 내내 부어있었다. 그러다가 어느날부터인가 더이상 모기가 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가 성탄절 즈음이었다. 한달 가까이 모기에 시달리던 나에게는 그것이야말로 성탄 전야에 일어난 기적(!)이었다. 그때부터 나의 머릿속에 모기의 생존 한계선은 성탄절 즈음이라고 각인되었다.


  모기의 놀랍도록 뛰어난 흡혈 능력은 아직도 과학자들에게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최근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모기는 사람의 혈관 속 혈류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한다. 피가 흘러가는 그 미세한 소리를 듣고 정확히 자신의 침을 혈관에 찔러서 흡혈을 하는 모기의 능력은 한갖 미물이라도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진화해왔음을 보여준다.


  정말로 잊을 수 없는 모기였다. 그 일이 있은 후로는 적어도 12월까지 서재에 전자 모기향을 피워두곤 했다. 그런 독한 모기를 만나는 일은 한번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모기에 물려서 고생할 때마다 어느해 성탄 전야의 기적을 선사해준 독한 모기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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