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때쯤으로 기억한다. 뉴스 부고란에서 성우 이완호 씨 별세 소식을 읽었다. 그는 한시대를 풍미한 뛰어난 성우였다. 무엇보다 그는 KBS '동물의 왕국' 성우로 가장 잘 알려져 있는데, 나는 오랫동안 '동물의 왕국'의 열렬한 시청자였다. 지금이야 케이블 TV에서 해외의 유명한 동물 다큐 프로그램을 쉽게 볼 수 있지만, 1980년대만 하더라도 그런 동물 다큐를 볼 수 있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았다. 나에게 오후 5시 30분은 '동물의 왕국'을 보아야하는, 놓칠 수 없는 매일의 일과였다.


  이완호 씨의 내레이션은 명료한 발성과 함께 때론 유머러스하면서도 정감이 있었다. 사실 전달이라는 다큐멘터리의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마치 하나의 드라마를 보는 듯한 몰입감을 끌어내곤 했다. 그는 외화 더빙에서도 성격파 배우 역할을 많이 맡은 성우이기도 했다. 나에게 가장 기억이 나는 그의 출연작은 재난 영화의 걸작인 '포세이돈 어드벤처(1972)'였다. 진 해크만이 분한 주인공 목사 역 더빙을 그가 맡았는데, 나중에 자막 버전으로 보고나서 느낀 것이 하나 있다. 진 해크만이 우리말로 연기했다면 저렇게 했겠구나 싶은 그런 대단한 목소리 연기였다.

    

  어렸을 적에 본 '동물의 왕국'에서 야생동물들이 있는 케냐의 마사이 마라 국립공원, 탄자니아의 세렝게티는 늘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곳에 살고 있는 동물들을 언젠가는 진짜로 꼭 볼 수 있게 되기를 소망했었다. 그리고 그런 꿈을 꾸게 만든 목소리의 주인공은 성우 이완호 씨였다. 그의 별세 소식을 듣고 나는 '동물의 왕국'과 함께 했던 내 인생의 작은 페이지가 접히는 느낌이 들었다.


  지난 주말에 오랜만에 '동물의 왕국'을 보았다. 이제는 동물 관련 다큐를 보게 되면 신기하고 재밌는 것이 아니라 저 동물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남을까 하는 걱정이 든다. 인간이 만들어낸 기후 변화와 무차별적인 개발은 동물들의 서식지 파괴로 이어지고 있고, 이미 많은 생물종들이 멸종했거나 멸종으로 향해 가는 중이다. 지구의 허파라는 아마존은 벌목과 금채취로 인해 매일같이 불타서 쪼그라들대로 쪼그라들고 있다. 오늘날 내가 보고 있는 동물과 자연 다큐멘터리는 언젠가 멸종될 동식물들의 공식적인 기록영화로 남게 될지도 모른다.


  지구와 멸종해가는 다른 생물종들을 위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페트병의 라벨을 잘 뜯어내어 분리수거하고, 1회용품을 가급적 쓰지 않으며, 불필요한 소비를 하지 않고 에너지를 절약하는 것과 같은 이런 아주 작은 행동들을 꾸준히 하기. 이것이 '동물의 왕국'의 오랜 시청자인 내가 현실에서 찾은 나름의 대안들이다.


  '동물의 왕국'이 앞으로도 생명의 소중함과 자연의 위대함을 일깨워주는 프로그램으로 우리곁에 함께 해주길 바란다. 오랫동안 그 프로그램과 함께 했던 성우 이완호 씨(1938-2019)를 기억하며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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