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존 증후군(Crouzon's disease)이라는 병이 있다. 안면기형을 유발하는 희귀한 유전병이다. 이 병을 가진 아이는 성장과정에서 여러번의 두개골 수술을 받아야 한다. 머리뼈의 성장에 문제가 있어서 얼굴이 커가는 과정에서 여러가지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전, 부친께서 병환으로 큰 대학병원에 입원하셨을 때였다. 병간호에 지친 어머니를 모시고 늘 가던 곳은 병동의 휴게실이었다. 그곳에서 크루존 증후군을 가진 여자 아이를 처음으로 보았다. 그 아이를 돌보는 부부의 표정은 너무나도 편안해 보였고,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아픈 아이를 두었으니 참 힘들고 괴로울 때도 많을 텐데, 그런 표정을 항상 지을 수 있다는 것이 남다르게 보이기는 했다. 한편으로는 그 아이를 오래 돌보려면 저렇게라도 마음을 내어서 긍정적으로 살아가지 않으면 안되는가 보다, 하는 생각을 했었다.


  "저 여자는 아마도 아이의 엄마가 아닌 것 같구나."


  어머니가 그런 말씀을 하셔서 나는 왜 그렇게 생각하시느냐고 했다.


  "정말로 그 아이가 자신의 아이라면, 너무나 마음이 아파서 그렇게 항상 웃는 얼굴로 있기는 어려울 게다."


  나중에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이를 돌보는 그 부부는 아이의 임시 보호자인 목사 부부였다. 나는 어머니의 통찰력에 새삼 놀랐다.


  누군가의 고통을 보고 들을 때마다 나는 그때의 일을 떠올리곤 한다. 타인의 고통은 잠시 내 곁에 머물다 지나갈 뿐이다. 마치 물수제비 자국처럼 순식간에 왔다가 사라지는 것 같다. 물론 가까운 이들의 고통은 오래 머물기는 한다. 그래도 한 인간에게 있어 고통은 전적으로 자신의 몫이고, 설령 그것이 조금은 다른 이들과 나눌 수 있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 스스로 견뎌야할 절대치의 양이 있음을 나이가 들수록 인정하게 된다.


  최근에 EBS 클래스e에서 이집트 학자 곽민수의 강의를 아주 즐겁게 들었다.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고대 이집트의 이모저모를 재미있게 풀어낸 좋은 강의였다. 그는 강의 마지막을 고대 이집트인의 인사로 끝맺었다. "당신을 위해 신께 기도하겠소." 그 말은 고대 이집트인들이 서로의 안부를 나눌 때 하는 '안녕하세요'에 해당하는 인사라고 했다.


  전염병으로 전례없이 힘든 시절이다. 가족을 포함해 주변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된다. 비록 잠시 내 곁에 머물다 지나가는 타인의 고통이지만, 그들을 위해 고대 이집트인들이 주고받았던 그 따뜻한 인사를 건네고 싶다.


  "당신을 위해 신께 기도하겠습니다."


  혼자 견뎌야하는 고통의 시간이 덜 외롭고, 춥지 않게 느껴지길, 그렇게 이 힘든 시기가 지나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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