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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언덕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8
에밀리 브론테 지음, 김종길 옮김 / 민음사 / 2005년 3월
평점 :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은 셰익스피어의 <리어왕>, 허먼 멜빌의 <모비딕>과 더불어 영문학 3대 비극으로 꼽힙니다. 전 이 소설이 비극이라는데 동의하지 않습니다. 소설의 결말은 의외로 해피엔딩입니다. 히스클리프와 캐서린과 린튼의 엇갈린 사랑이 안타까운 건 사실이지만 소설 전체로 보면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소설이 반도 진행되지 않은 시점에서 죽어 퇴장하는 캐서린이 여주인공이라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오히려 소설은 히스클리프란 인물을 둘러 싼 유장한 인간사를 그린 대하소설에 가깝습니다.
이 소설이 최고의 로맨스 소설이라는데도 동의하지 않습니다.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사랑이 애절하지 않냐고요? 애절합니다. 그렇다고 최고라곤 할 수 없습니다. 이 정도 애절한 사랑이야기는 많습니다. 사실 캐서린의 태도도 애매합니다. 히스클리프에 대한 감정이 과연 진정한 사랑인지 의문입니다. 더구나 에밀리 브론테는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 않습니다. 분량상으로도 그렇고 대충 넘어가는 묘사도 그렇습니다.
이 소설이 비극도 최고의 로맨스도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최고의 인간드라마라는덴 이견이 없습니다. 이 소설은 인생의 의미를 돌아보게 만듭니다. 사람이 선의로 한 일이 반드시 선의의 결과를 가져오지 않듯, 악의로 한 일도 반드시 나쁜 결과만을 가져오지 않는다는 인생의 아이러니. 이 책은 아이러니로 가득 찬 인간세상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워더링 하이츠'의 주인 언쇼가 선의로 히스클리프란 고아소년을 데려 와 자식처럼 키우지만 비극적인 결과를 만듭니다. 히스클리프는 복수의 일념으로 언쇼가를 몰락시키고 린튼가 마저 집어삼키려 하지만 결말은 언쇼가와 린튼가의 결합과 부활이라는 뜻밖의 결과를 가져옵니다. 전 에밀리 브론테가 이 막장드라마 같은 소설을 쓴 이유가 여기 있다고 생각합니다. 삶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요? 끊어질 듯 이어지는 유장한 강줄기를 닮은 인생 말입니다.
이 소설을 자세히 읽어 보면 히스클리프를 제외한 언쇼, 린튼,캐서린에 대한 묘사는 그다지 입체적이지 않습니다. 허탈하다 싶을 정도로 허무하게 죽는 점도 그렇고 운명에 맞서지 못하는 나약한 캐릭터들도 그렇습니다. 하나 같이 밋밋한 사람들이죠. 이 소설의 진정한 주인공은 어쩌면 이 소설의 화자, 딘 아줌마가 아닐까 싶을 정도입니다. 에밀리 브론테가 로맨스 소설을 쓰려고 하지 않았다는 결정적 증거입니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에도 나타나듯 당시 영국의 귀족들은 혼인을 통한 재산권 행사에 목을 매답니다. 당연합니다. 생산적인 일에 종사하지 않고 조상이 남겨준 재산을 쓰며 사는 귀족들에겐 유산이 유일한 생존수단이었으니까요. 동시대 조선의 양반가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히스클리프의 복수가 가능한 이유도 바로 유산상속법 때문입니다. 장남을 위주로 한 유산상속과 여성들은 남편을 따라 운명이 결정되는 풍습이 어찌나 조선후기와 닮았는지 놀라울 따름입니다.
지성을 가진 여성이 자신의 자아를 온전히 지키며 살기 힘들었던 시대에 나온 두 여성작가의 걸작은 전혀 다른 분위기지만 그래서 꼭 닮았습니다. 두 작가 모두 결국 결혼하지 않았고 당시의 시대상을 고발하는 소설을 남겼습니다. 우린 그 소설들을 로맨스 소설로 잘못 읽고 있습니다. <폭풍의 언덕>은 최고의 인간드라마이자 사회고발소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