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저 2만리 아셰트클래식 1
쥘 베른 지음, 쥘베르 모렐 그림, 김석희 옮김 / 작가정신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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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소설, 그 중에서도 엄정한 과학적 논리와 지식에 기초한 하드SF는 명확한 한계를 지닌다. 당대에 알려진 과학기술을 전제로 소설을 써야하는 만큼 상상력의 제약을 피할 수 없거니와 자칫 잘못하면 조만간 소설 속 모든 지식이 현실의 발전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진부한 이야기가 되어버리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앞서가면 하드SF 본연의 과학적 엄밀성이 떨어지고 조금 앞서려 하다간 순식간에 현실도 파악하지 못한 시대착오적인 작품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쓰는 사람은 딜레마에 빠지기 쉽다.

 

 그런 점에서 쥘 베른은 당대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렇고 미래에도 최고의 SF작가로 추앙받아 마땅한 작가다. 그의 작품들은 어느 작품이나 당대의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언제 읽어도 모던한 느낌을 줄 뿐만 아니라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미래를 상상하게 만든다. <해저2만리(Vingt mille lieues sous les mers,1869)>는 쥘 베른의 대표작으로, 왜 그가 위대한 작가인지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당대의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했음에도 지금 읽어도 전혀 손색없는 빼어난 상상력과 사실성을 보여준다. 더불어 신비의 인물 네모선장의 독특한 캐릭터는 소설적 재미까지 더해준다. 자칫 밋밋할 수도 있는 스토리를 등장인물들의 개성있는 캐릭터로 흥미진진하게 만들어가는 솜씨 또한 과학적 상상력 못지 않게 빼어나다. 바다에 대한 백과사전이라고 해도 좋을 상세한 묘사와 과학적 엄밀함 또한 놀랍다. 당시까지 알려진 지식에 기반해 오류가 없잖아 있지만 지금 봐도 놀라울 정도로 생생한 묘사는 마치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고 있는 듯 사실적이다. 쥘 베른이 얼마나 해박한 과학지식의 소유자였으며 뛰어난 상상력을 가진 사람이었는지 감탄스러울 따름이다.

 

 실제로 이 소설을 모티브로 "노틸러스(Nautilus)"호라는 잠수함이 여러 척 만들어진 것을 보면 이 책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줬는지 알 수 있다. 1954년 세계 최초의 원자력 추진 잠수함이 만들어졌을 때도 사람들은 주저 없이 같은 이름을 붙인 것만 보아도 이 소설이 얼마나 가치있는 작품인지 잘 알 수 있다. 우리 인류에겐 이런 소설이 필요하다. 최근엔 이런 소설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아마도 과학발전 속도를 작가들이 따라잡기 어려워 그렇지 싶다. 물론 이런 소설이 지니는 예술적 한계도 기피의 한 요인이다. SF작가라면 당대를 풍자하고 고발하는 것 못지 않게 미래를 제시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런 소설 한 권 쓰고 죽으면 여한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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