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전두환 정권 시절 쯤 거슬러 올라가면,
오래전 <엠마누엘 부인>이란 영화가 있었고, 그 영화에서 완전 나체로 등장해
세계적 이목을 끈 여주인공 실비아크리스텔 이란 배우가 방한한 적이 있었다.
방한 하기 전 부터 그녀는 IQ가 145 수준이라 하여 이목을 끌더니,
방한 해서는 노브래지어 차림으로 걸을 때 마다 보이는 육감적인 모습에 사람들
화제의 시선을 받기도 하였다.
엠마누엘 부인이 개봉되었을 때 프랑스에선 에로티시즘이냐, 포르노냐 하며
예술계에서 논란이 많았었는데, 여기에 비하면 <즐거운 사라> 라는 소설을 쓴
마광수 교수의 소설은 우리나라에선 외설, 음란 의미로 처벌을 받았고,
이는 소설과 현실, 영화와 실제를 분별하는 지혜 내지 이중성을 인정하는 세련된
시각이 우리에겐 필요했던건 아닐까 비판을 받기도 했었다.
시간이 발전을 거듭하여
마교수는 왜 자살을 택했을까를 생각하면 아마도 한권의 책도 팔리지 않은데서
오는 절망감은 혹시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까지 해보지만. 엄연한 추리일 뿐이고.....
거의 대부분 책을 갖고 있는 -하필 즐거운 사라만 빼고- 필자 입장에서는 매번
그게 그 표현 같다는, 엇 비슷한 독자층의 성에 대한 관심의 지루함에서 비롯된
전제를 먼저 깔고 볼 때 하는 말이며, 비극적 매듭으로 단락된 것이 안타까울 뿐
어째든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적 존재는 남아있으니 .......
베이비복스의 ‘우연’이라는 노래가 있다.
이 노래를 듣다보면 저절로 가사 내용에 집중하게 되어, 마치 한편의 줄거리를
연상케 하는 장면들이 떠오른다.
서로 사귀던 남녀가 헤어진 후 서로 다른 연인 사이로 우연하게 길에서 마주쳤을
때의 느낌을 가사로 표현한 곡인데, 그 미묘한 감정선을 당시의 신세대적 감성으로
솔직하게 표현한 것 같아 애잔한 감정이 스며들게 하는 곡이다.
그들보다 훨씬 구세대 입장에선, 그런 상황이라면 처음부터 멀찌감치 길을 돌아가거나,
애초 그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연인과 조심하며 걸어 갔을텐데, 회피하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대놓고 아는 척 할 수도 없을 그 심경이 잔잔히 다가오기 때문이다.
아마도 듣는 사람들은 나 같으면? 하고 어떤 감정이 들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으리라!
그런 감성에 잡혀있을 때 치고 나오는 ‘시간은 벌써 지나 2년이 지나갔고~~’
이 부분에 들면 감정이입적 감성이 상승곡선을 그리게 한다.
기억해내는 시간의 공간이 거스르는 멜로디를 타고 말이다.
요즘 레깅스를 아무렇지도 않게 입고 다니는,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지고지순한
순정을 믿지 않는 그런 세대의 처자들의 대범성에 비하면 엔틱스런 연륜이 된
걸그룹이지만 더 나이든 구세대 시각에선 아직도 선선히 생동감 넘치는
신세대 그룹으로 보인다.
이 노래를 만약 리메이크 형식으로 재편곡 한다면 중간에 랩을 넣어
–마치 그 옛 상대 남성의 심경을 뱉어내는 느낌으로- 재 발매를 한다면 어떨까?
속사포처럼 쏟아내며 –어느 동영상엔 가수 배기성도 힘차게 잘 부르던데– 스쳐
지나가는 옛 연인을 보는 남자의 감성을 콸콸 쏟아내면 제대로 된 리메이크 곡이
될 것 같다.
처음 이 노래를 들었을 땐 외국 번안 곡인줄 알았다.
대개의 번안곡이 그렇듯 가사가 많고 해석적 감성을 싣느라 그런건지 언뜻
읽는듯한 느낌마저 드는데 이곡은 긴 가사를 5명이 돌려가며 힘들이지 않고
부르는 모양새에 율동까지 곁들였으니 보는 재미가 더한 순수 국산 창작곡인 셈이다.
요즘 국회에서 동의 없는 성관계를 처벌한다는 법안이 통과되었다고
처자들이 반가워 한다던데, 숙박업소에 같이 들어간 것 만으로는 성폭행 여부가
성립되기 힘들텐데, 저돌적이고 공격적 성향이 강한 숫 남자들 입장에서 동의까지
얻어내며 행위를 진척 시키는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이런 법으로 은근한 젠더 갈등에 기여(?)한다면 확대 해석이라 할테고....
에로티시즘 입장에서 성행위란 서로 사랑하는 남녀의 진전된 행위인데,
포로노에서 바라보면 그 사랑이란 감정은 빼고, 쾌락만을 추구하는 탐욕적 욕망의 성을
즐기기 위한 법안 아닌가 생각하니 세월의 변모와 가치관도 느끼게 한다.
그런 철학적 면에서까지 동원해 보면
저 곡은 더더욱 순수한 시대적 감성을 모아서 발표 당시의 연인적 감성을
읽게 해주는 것 같아 노래를 듣다 보니 그 장면이 소설의 수필적 장면처럼 떠오르게 하니
그들 세대의 대표적 수작이라고 여기고 싶다.
리메이크라도 되어 LCD 화면에서 자주 보고 싶다.
80년대 미국에서 로큰롤 복고풍이 불었듯, 지금의 트롯 복고풍처럼 X-세대가 가졌을
창작의 문화도 다시 복고되어 곁다리라도 끼어보는 그런 차원에서라도 말이다.
에로틱과 포르노에 대한 구분으로 시끄러웠던 지난 시절의 프랑스적 에스프리까지
생각게 하는 지난 시절의 곡 하나를 종종 들으면서 그들 중고틱한 신세대의
세계를 같이 느껴보며 회고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