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유명한 원로 여배우가 바다에는 해삼, 육지에는 산삼, 집에는 고3 이라는 말을 해
실소를 자아내던 시절이 있었다.
시간을 거슬러 2002 월드컵 시절!
생각지 못했던 엄청난 월드컵 열기는 고3 교실에도 불어 왔었다.
월드컵이 끝나고 2학기 쯤 되었을 때 학생들 평균 성적이 10점 가량 하락 되었다는
소문이 있기도 했었다.
우수한 두뇌의 엘리트가 리더가 되어 나라를 이끄는 방식은, 창의성을 최대한 발휘해
자기 능력을 극대화 시키는 자유주의 경제의 장점 중 하나이고, 좋은 대학을 가는건
이런 시대성에서 부모의 의무감과 겹쳐져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좋은 대학이라 불리는 수재적 노력을 발휘하게 하는데 필요한 부모의 역할 중에는
다분히 공통적인 면모가 하나 있는 듯 하다.
이는 부모와 자녀가 같이 노력하는 모습! 힘든 역정에 회의감이 들기 쉬운
사춘기 자녀에게 모종의 의무감 같은 걸로 활력이라는 노력을 부여하는 에너지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아이가 공부하는 동안에 부모도 같이 동거동락 하듯 고락을 같이 하는
집중력 정도에서 성패 정도가 갈린다는 것이다.
예상치를 훨씬 넘어 4강 이라는 신화에 온 나라가 휩싸여 대회가 끝난 후 하루 간
임시 공휴일이 지정되던 그 시절이었으니 고3 인들 오죽하랴!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생각나는 학생이 있다.
당시에 담임을 맡은 반 구성원들의 학부모들은 사회적으로 제법 성공한 계층들이 다분했고, 지역도 비평준화 지역으로 우수 학생들만 별도로 모이는 시절이었으니 서울 근교 신도시의
교육열이 높은 지역의 일이었다.
이런 나름 쟁쟁한 환경 속에 구도시에서 신도시로 진학한 계층은 여러 면에서 상대적으로
부족한 입지를 보이는 성향을 갖고 있었다.
그런 환경에서 소위 일류 대학을 진학한 케이스가 있어 올려 보고자 한다.
어머니는 학력이 국졸, 아버지는 중졸에 택시회사 운전사 정도의 가정 환경
상대적으로 부족했을 지원 환경 속에서 아이는 최 상위권 학생이었다.
월드컵 열기는 가라앉고 학생의 성적은 10점 가량 낮아져 있어, 학생의 부모를 불러 면담을
실시할 수 밖에 없었는데, 그 사연은 이랬다.
집이 넉넉지 못하여 마땅한 정보력도 없고, 지원 능력도 없는데, 그나마 부모로써 해줄 수
있는건 아이가 공부 하는 동안에는 같이 잠도 자지 않고 거실에서 조용히 TV 를 경청하거나 신문 등을 펼쳐 읽으며 아이가 잠들 때 까지 성의를 표하는 모종의 고행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거실에서 조용히 신문을 펼치고, 소일하며 지내는데 문득 아이 방에서 쿵쿵
하는 소리가 들리더라는 것이다.
간헐적으로 며칠 간격을 두고 그런 소리가 들려 문 틈새로 조용히 들여다 보니, 아이가 책상에 대고 머리를 내리찧다가 심지어는 벽에다 머리를 쿵쿵 찧는다는 것이었다.
머리가 아파서 공부를 할 수 없어 벽에다 머리를 일부러 부딪히는 것이었다.
아마도 고도의 집중을 하다 보니 머리가 아파 왔던 모양이었다.

* 그때 그 학생의 모의고사 자료
놀란 부모가 병원을 다니며 MRI, CT 촬영을 했지만 아무 이상도 없었다.
여러 정황과 환경을 추정해 보고 원인으로 생각해 낸 것은 학년 초 아이에게 먹인
<총명탕> 이라 불리는 한약 처방이었다.
부모로써 수험생 자식에게 성의껏 해줄 수 있는, 가정이 넉넉치 못해 한의원이 아닌
집 앞의 개소주, 흑염소등 각종 탕을 다려주는 약탕점에서 지어 온<총명탕>이라는
약재가 원인이었다.
한약재는 효과가 몇 주 내지 몇 달 후에 약효가 발효되는 특징이 있는 듯
학년 초 이 학생에 먹여준 <총명탕>의 기운이 머리 위로 올라온 시기가 대략 월드컵 열기에 휩싸인 시기와 비슷한 것 이었다.
쉬는 시간에도 잠시 잠시 지나가다 엿 본 교실에서 다른 학생들은 떠들고 장난해도 그는
오로지 묵묵히 고개 숙인 채 뭔가를 열심히 풀고 쓰는 모습만 보일 뿐, 옆에서 공 놀이를
해도 전혀 신경이 쓰이지 않는 집중력을 가진 학생이었다.
학원 수강도 2학기 들어 부족한 과탐 1시간을 듣기 위해 오후 9시 주 1회 나간게 전부였던
학생이었으니 두통으로 인해 미진했던 부분 보강이 아니었을까
부모는 부랴부랴 기운을 내려준다는 처방을 지어 먹였고, 아이는 간신히 종전의 성적을
유지 할 수 있게 되었다.
계속 상승세를 탈 수 있던 성적이 정체가 되어 원하는 대학에 진학은 어렵고 그보다 살짝
점수 낮은 K 대학은 입학 가능한 상황이었고, 추천서를 작성하던 시기에 자신이 원하는
S대 생명공학과가 아닌 농생명 공학과는 등록금이 면제되는 장학생도 가능한 수준에 놓이게 된 것이다.
다시 담임과 상담을 하고 ‘네가 꼭 원하는 학과를 가고 싶다면 반수라도 해봐라’ 권장을 하고 그 학생은 반년 간 대학을 다니며 다시 수능 시험 공부를 하였고, 이듬해 대학 지원 시기에
담임을 다시 찾아왔다.
지원 대학 희망 서류는 세군데 포항공대, 카이스트, 그리고 서울대 생명공학과!
한마디로 어딜 선택할까 망설이며 조언을 구하려고 찾아온 것이었다.
공부를 열심히 해 성적도 잘 나오는지
“선생님 이 세군데 다 붙으면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입니다“
이 글을 보는 모든 학부모들은 속으로 경탄 할 어이 없을 정도의 선택적 고민인 셈이다.
결론은 애초부터 마음 먹었던 곳으로 가라! 그리고 함께 써준 추천서!
나중에 전화를 해 본 결과 3군데 모두 합격이 되었다는 것이다.
쟁쟁한 대학 3군데를 합격을 놓고 행복한 고민을 했을 상상을 하면.......
지금은 아마 결혼을 해서 40대 초반의 아이 아빠가 되었을 K군.
많은 부모들이 자녀의 성적과 진학에 고민일 때 항상 떠오르는 일화이다.
넉넉지 못한 환경이거든 고행이라도 같이 하라!
당시엔 담임에 대한 학부모들 지원도 대단했기에 자율학습 지원비도 있었고, 그런 분위기
속에 담임으로서도 2학기 들어 매일 자율학습에 참여해
그 많은 시간을 독서에 소일하다 보니 자연스레 이런 블로그까지 오는
밑바탕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당시 담임 반 진학 상황이 S대 둘, K대 둘, 사관학교 셋, 치대 하나, 한의대 한명.....
이런 상황이었으니 담임으로써의 책임감도 컸으리라!
같이 기억에 남는 것은 먼저 수시로 합격한 학생이 남는 시간에 보던 <해킹 하는 방법> 책자, 그리고 육군 사관학교에 먼저 입학한 학생이 심판이고, 쉬는 시간에 배구를 하던 학생 둘!
스파이크를 한 학생은 공사, 리시브를 하던 학생은 해사를 합격했고, 공사를 갔던 학생은
입학 후 다시 퇴교해 K대를 진학 했으니, 그때 배구를 하던 학생들은, 그 뇌 속에 쌓인 지식의 스트레스 찌꺼기를 해소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보여진 것이 지금도 인상에 남는다.
마치 뇌 휴식을 위해 필요한 방학이라는 제도를 언급한 M, 그래드웰의 <아웃라이어>
내용이 생각난다.
공부란 꾸준히 어느 정도 쌓여진 지식이 밑바탕이 되어 우수한 성과를 내는것이지, 고3이
되어 나름 열심히 몰두하지만 결국 몇 달 후면 뇌가 꽉 차서포화 상태가 되어 더 이상
이해하며 들어갈(?) 공간이 부족해, 그걸 덜어낼 뇌 공간은 필요하게 되고 성적은 정체되게
되는 듯 하다.
요즘은 내신이란 제도로 성적 관리를 하고 고교 학점제라는 방식도 시도 하는 듯 하지만,
그들이 추구하는 목표 지점의 발전과 다양성도 함께 해줄 때 더 빛이 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하고자 하는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한 덕목이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