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표류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박연정 옮김 / 예문 / 2005년 3월
평점 :
품절


"내게 청춘이라는게 존재했었는가, 또는 존재 하는가?"
맨처음 "청춘표류"라는 제목을 보고선, 가장 먼저 떠오른 질문이었다.
삶이란 것을 항상 데면데면 살아오고 있는 나로서는 "청춘"이라는 단어는 먼 나라 이야기인것처럼만 느껴진다. 아마도 내심 나는 "청춘"이라는 단어에서 열정이라던지, 무모함, 도전따위를 연상하고 있었나 보다. 가끔씩은 애늙은이 같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내 인생에서 그런것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당연히 "청춘"이란 단어를 나와 멀리 했었을 터이다. 여하튼, "청춘"이란 단어는 내게 있어서는 그런것들을 연상시키고 아마 다른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인듯하다. 그리고 "청춘표류"안에서의 "청춘" 역시도.

일본의 "지의 거장"이라고 알려진 다치바나 다카시가 인터뷰 했다는, 책 속에 등장하는 11명의 일본 젊은이들의 면면은 무척이나 다양하다. 그들은 대부분 어린시절 그리 뛰어나지도 않았고, 정규 교육과정에 있어서는 저능아란 얘기를 들을만큼 흥미와 재능을 보이지 못했으며, 11명 중 몇몇은 고등교육을 받지 못하기조차 했다. 그 덕분(?)인지 그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받는 정상적인 코스를 밟지 않고 그들만의 새로운 길을 찾아 개척한다. 게다가 정규적인 교육과정에 있어서는 저능아 취급마저 받던 그들이 자신만의 길을 찾게 되자
대단한 열정가로 돌변하게 된다. (사족 : 이런데서 바로 적성이란 말이 나오는것 아니겠는가?)

학창시절 운동과 여자에 푹 빠져 지냈던 후루카와 시로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 바로 공장에 취업을 했지만, 우연챦게 나이프 제작 과정을 접하게 되고, 현재 전 세계에 몇 안되는 커스텀 나이프 제작자로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심지어는 세계 최고의 나이프 수집가로 유명한 "미국 모던 나이프의 대부"라고 불리는 보 랜돌도 후루카와 시로의 작품을 열점 이상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속된 말로 "날라리"라 불려지던 부류에 속하던 후루카와 시로가 이런 유명한 사람이 되리라고 과연 누가 예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물론 후루카와는 나이프 제작자가 그냥 된 것은 아니다. 어느 누구도 혀를 내두를 만큼 나이프 제작방법을 알아내기 여기저기 알아보기도 했고, 공장에서의 기계 작동법을 익힌것 또한 그에게 플러스 요인이 되었으며, 또  나이프 제작에 있어서는 본고장인 미국으로 그야말로 열정 하나만 가지고 공부를 하러 떠나기도 한다. 물론 낯선 고장에서의 언어문제와 각종 여러가지의 문제점에 부딪혔을 것이고, 후루카와는 나이프제작자가 되겠다는 열정하나만으로 그 모든것을 이겨냈을 것이다.

무라사키 타로는 고등학교 2학년 여름에 순전히 아버지의 권유로 "원숭이 기예"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었다. 오래전에는 번성하기도 했었던 원숭이 기예는 무라사키 타로가 원숭이 기예를 배우려고 했던 당시만 해도, 이제는 맥이 끊긴 전통일 뿐이었다고 한다.
"학교 선생님과 원숭이 선생님, 어느게 더 나을까? 원숭이 선생님은 없쟎아. 없으니까 제1인자!"
물론 이런 마음만으로 원숭이 선생이 되려고 하기에는 원숭이를 조련시키는 일은 쉽지 않았다고 한다. 원숭이 기예의 전통이 끊긴 상황에서 그 첫발을 내딛는것조차도 무척이나 힘겨운 과정이었다고 한다. 다행이도 젊은시절 원숭이 기예을 가르쳤던 시게오카의 부인 후지코에게 부탁해 원숭이를 가르칠 수 있는 초석을  마련할 수 있게 되었고, 현재 일본에서 원숭이 기예을 가르치는 사람은 단 두명이라고 한다. 어쨌든 무라사키 타로의 말처럼, 제 1인자가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외에도 많지 않은 나이에 평범하지 않은 이력을 가진 9인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대학진학에 실패한 이후 칠기장인이 되어 산골에 오크밸리라는 가구마을을 형성하고 살아가는 이나모토 유타카, 정육계에서는 달인의 경지에 도달한 모리야스 츠네요시, 엄청난 끈기로 동물들의 생태계를 밝혀내는데 큰 공헌을 한 동물사진 전문작가 미야자키 마나부, 자전거 선수가 되려다 사고로 프레임 빌더로서 명성을 떨치고 있는 나가사와 요시아키, 전 일본에서 유일무이한 매 사냥꾼(수할치) 마츠바라 히데토시, 일본최초의 소믈리에라 할 수 있는 다사키 신야, 프랑스에서 알아주는 요리사 사이스 마사오, 유럽에서는 알아주는 염직가 도미타 준, 최초로 레코딩 엔지니어도 프리랜서로 활동할 수 있다는걸 보여준 요시노 긴지. 비록 방황하고 표류하는 청춘을 보냈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낸 후에는 어떤 권위나 사람들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안락함과 순조로운 삶을 포기하면서까지도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서 최고가 된 젊은이들이 이 책의 주인공들이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청춘은 분명 표류할 필요가 있다고, 표류하지 않는 청춘은 청춘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했다고 얘기하고 있는듯 하다. 
"젊어 고생은 사서 한다.", " 젊으니까 괜챦다.", "그런일은 젊을때, 하는 거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항상 들어왔었던 많은 얘기들이 청춘이 표류하기를 권유하고 있는것 같기도 하다.

두가지 생각이 들었다. 세상모든 도덕률에 대해 음모론을 제기하는 마음과, 전혀 표류하길 원하지 않는 내 마음의 자세에 대한 걱정. 다시 말해, 왜 성공하기 위해 인간적인 모멸감마저 견뎌야 할 정도로 애써야 하는가? 그런 가치관을 강요하는 것은 있는자들의 음모가 아닌가? 하는 마음과 지금이라도 열정을 갖고 죽도록 애써야 하는거 아닌가? 하는 불안감. 어쨋든 생각할 거리가 느낄거리가 많았던 책인것 만은 분명하다.

사족 :
 "이거이거 청춘표류가 아니라 {기인열전}이라고 제목 바꿔야 하는거 아냐?"
동생이랑 잠깐 이런 대화를 하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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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perfrog 2005-05-31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습관님, 오랫만에 뵈어요..^^(제가 오랫만인가요..?;;;) 이 책, 궁금해지는군요. 리뷰 잘 읽었습니다. 사족 윗단락 내용에 공감합니다.

2005-06-01 12:3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