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권력자들은 자기 손에 권력이 전혀 없는 것처럼 행동하거나 혹은 권력이 있더라도 극도로 조심해서 사용하는 것처럼 행동했다. 이들은 또한 국민, 천황, 국가, 회사와 또는 다른 그 무언가를 위해 본인의 행복을 포기한 것처럼 행동하기도 했다. 다나카는 이런 쓸데없는 가식에 코웃음을 치며 일본의 총리들은 자신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라고 자부했다. 마치 가능성은 있으나 경험이 부족한 학생들에 대해 논하는 선생님과도 같이 총리들을 평가했다. 그리고 자신과 일본 정부 사이의 관계를, 과반의 주식을 소유한 대주주와 회사 경영진 사이의 관계에 비교했다. - P451

1990년 버블이 끝나고 디플레이션이 시작되면서 일본 금융계의 썩은 속살이 속속 드러났다. 정계와 금융계의 부적절한 유착관계가 노출되었음은 물론, 특히 정계와 금융계의 최상위 단계에까지 범죄 조직의 영향이 광범위하게 미치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스캔들과 더불어 지하 범죄세계의 역할이 드러나자, 1955년 체제를 간신히 유지하던 정통성의 마지막 꺼풀이 벗겨지면서 마침내 정치적 위기가 찾아왔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오직 탁월한 정치인만이 정치인에 대한 분노와 혐오의 에너지를 동력 삼아 낡은 질서를 깨뜨리고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힘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 - P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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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민당의 애초 설립 목적은 사회당과 경쟁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일본 좌익 세력이 그 어떤 주요한 권력도 장악하지 못하도록 원천봉쇄하는 것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자민당은 국내 정치 자금이 떨어질 때마다 CIA의 비자금에 기댈 수 있었다.
(중략)
일본의 의회제도가 얼핏 보기에는 영국의 의회제도와 비슷했는지 몰라도, 실제 선거는 일본 사회당이 절대 이길 수 없는 방식으로 치러졌다. - P427

메이지 정부는 전통적인 불교 위주의 대중 종교를 없애고 그 자리에 영적으로 빈약한 초국가주의와 국체에 대한 숭배를 대체해넣는 데 성공했으나, 그로 인해 일본에는 영적인 위기가 만연하게 된다. 이는 3장에서 이야기했던 ‘신흥 종교의 부상에서도 뚜렷이 관찰된다. 하지만 일본이 악을 행할 수 있다는 개념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일본 우파들의 태도 또한 이 영적인 위기에 기반한다. 이들에게 난징대학살이나 충칭의 테러 폭격 또는 731부대의 잔악한 행위를 인정하는 것은 글자 그대로 견딜 수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것은 그들에게 존재론적으로 허용된 유일한 신성함인 ‘일본스러움을 더럽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신성한 땅에서 살고 있는 신성한 민족인 그들의 지위를 위협하는 일이기도 하다.
- P430

자민당의 파벌들은 천황이나 욱일승천기에 대한 충성의 정도에 따라 형성된 것이 아니었다. 이들은 돈과 후원관계를 통해 조직되었다.
- P431

예를 들어 후보 A는 건설업계에서 알려진 인물이고 건설성에 탄탄한 인맥을 갖고 있을 수 있다(자신이 예전에 건설성의 관료였을 수도 있다). 그의 후원회 네트워크는 현지 건설회사의 회장들이 이끌고 있다. 이들은 회사 직원들을 동원해 표를 몰아주는 대신, 지역구에 배정된 인프라 예산에 따른 건설 계약을 수주할 것을 기대한다. 후보 자신은 도쿄의 비중 있는 정치가이기도 한 당내의 파벌 지도자에게의존하는 관계다. 일단 당선되면 그의 힘을 통해 국회 내의 원하던 위원회에 배정되어, 자신의 선거구가 충분한 건설 예산을 배정받도록 할 수 있다. - P431

일본은 어찌 보면 일당 독재 국가라고 불러도 될 만한 나라였으나, 자민당은 일당 독재를 할 수 있는 정당이 아니었다. 자민당의 역할은 일본이라는 국가의 지배 구조 전반에서 다양한 권력을 갖고 있는 모든 층위의 사람들에게 정치적 보호막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그 지배 구조에는 자민당 외에도 정부 관료와, 일본인들이 자이카이 (재계)라고 부르는 분야의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중략) 자민당은 정책을 결정하지 않았다. 누군가 정책을 결정한다면,
그것은 일본 관료가 오를 수 있는 커리어의 정점인 각 부처 사무차관들의 일이었다. 자민당의 주요 임무는 방해가 될 만한 힘을 가진 모든 주요 이해관계자가 정책을 지지하도록 매수하는 것(자민당은 야쿠자는 물론이고 PTA, 물가 인상에 반대하는 주부들의 연합까지 사회의 모든 주요 그룹과 어떤 식으로든 연계를 맺고 있었다), 그리고 지배 엘리트층의 서로 다른 구성원들 사이에서 완충 작용과 중재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 P434

공공과 민간 영역에서 일본 경제를 운영하던 대부분은 스스로를 일본의 산업 역량과 국가번영을 회복하기 위한 집단적 노력에 동참하는 에국자들이라고 여겼다. - P436

1955년 체제는 두 가지 심각한 결점을 갖고 있었다. 하나는 정책 방향의 중대한 전환을 가능케 할 수 있는 메커니즘이 없었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체제 외부의 야심만만한 사람이 체제 내부의 복잡한 인맥과 힘의 균형에 정통하게 되면 그에게 손쉽게 체제를 내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외부 인사가 역사적인 분기점에 때맞춰 등장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미군정 이후 처음으로 외부 환경으로 인해 일본이 중대한 경로 수정을 할 것을 강요받던 시기였다.
- P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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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시안적인 미국 정부는 일본이 건강하고 안정적인 정치체제를 갖춘 진정한 우방이 아닌, 미국에 의존하는 고분고분한 국가로 남아 있기를 바란다.
- P420

일본에서 정치는 모든 곳에 존재한다. 시장을 간섭하고 통제하며 삶의 모든 영역에 스며들어 있다. 그러나 일본에서 정치의 존재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 P421

일본에는 국가 중앙권력과 직접적인 상관이 전혀 없는 다양한 상징과 권위의 원천이 자유롭게 존재한다. - P421

메이지 지도자들이 무대에서 사라진 이후로, 일본 정치에는 의심의 여지 없는 명확한 통치권을 갖는 권력 집단이 존재하지 않았다. 경쟁관계에 있는 권력 집단들 사이의 분쟁에 대해 온전히 합법적인 판단을 내려줄 제도적인 절차 또한 존재하지 않았다. 일본이 전혀 승산 없는 전쟁을 일으켰던 것 또한 공개적인 정치 절차가 없었던 데 그 직접적인 원인이 있다.
- P424

일본이 필요로 했던 정치 시스템은 권력에 도전하는 잠재 세력들을 필요에 따라 흡수하거나 무력화할 수 있는 정치였다. 막강한 정부 부처들 사이에서 또는 그 부처들과 다른 세력들 사이에서 중재 역할을 해야 하는 정치였다. 그리고 해외 국가들에게, 일본이 그들에게 친숙한 정당과 선거와 총리와 법원과 같은 제도를 통해 운영되는 나라라고 안심시켜줄 수 있는 정치였다.
이러한 정치 시스템을 ‘1955년 체제‘라고 부른다.
- P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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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마리미떼 얘기인 줄...
그만큼 그 소설에 이런 문화가 잘 표현돼 있다고 봐야 하나.

전통적인 관념에 따르면, 일본 여성들은 머리를 길게 땋고, 무릎길이의 흰 양말을 신고, 활기에 넘쳐 재잘대는 귀여운 여자아이로 인생을 시작한다. 조금 더 자라면 점점 드러나는 여성성을 천편일률적인 세일러복교복 안에 감춘다. 긴 치마에 발목까지 말아 내린 양말, 풍성한 블라우스로 된 교복은 마치 이슬람의 히잡이나 수녀복처럼, 여학생을 성적인 대상으로 보일 법하게 하는 모든 것을 감추고 억압하기 위해 디자인된 것처럼 보인다. 상급생 여학생에 대한 순수한 짝사랑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사랑의 감정도 가져서는 안 되며, 남성에 대한 관심이 생기면 당황스럽고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한다. - P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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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교토는 한때 아름다웠으나 얼굴에 염산을 끼얹고 만 여인을 닮았다. 여전히 전성기의 아름다움을 어렴풋이 엿볼 수 있지만 그 완전한 모습을 상상하는 일은 우울한 감상을 동반한다.
교토는 고도성장에 일본 전역의 자연환경과 역사적·문화적 유산에 저질러진 일들을 역력히 대변한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던 국토의 상당 부분이 이 시기에 복구 불가능할 정도로 훼손되었다. - P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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