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민당의 애초 설립 목적은 사회당과 경쟁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일본 좌익 세력이 그 어떤 주요한 권력도 장악하지 못하도록 원천봉쇄하는 것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자민당은 국내 정치 자금이 떨어질 때마다 CIA의 비자금에 기댈 수 있었다.
(중략)
일본의 의회제도가 얼핏 보기에는 영국의 의회제도와 비슷했는지 몰라도, 실제 선거는 일본 사회당이 절대 이길 수 없는 방식으로 치러졌다. - P427

메이지 정부는 전통적인 불교 위주의 대중 종교를 없애고 그 자리에 영적으로 빈약한 초국가주의와 국체에 대한 숭배를 대체해넣는 데 성공했으나, 그로 인해 일본에는 영적인 위기가 만연하게 된다. 이는 3장에서 이야기했던 ‘신흥 종교의 부상에서도 뚜렷이 관찰된다. 하지만 일본이 악을 행할 수 있다는 개념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일본 우파들의 태도 또한 이 영적인 위기에 기반한다. 이들에게 난징대학살이나 충칭의 테러 폭격 또는 731부대의 잔악한 행위를 인정하는 것은 글자 그대로 견딜 수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것은 그들에게 존재론적으로 허용된 유일한 신성함인 ‘일본스러움을 더럽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신성한 땅에서 살고 있는 신성한 민족인 그들의 지위를 위협하는 일이기도 하다.
- P430

자민당의 파벌들은 천황이나 욱일승천기에 대한 충성의 정도에 따라 형성된 것이 아니었다. 이들은 돈과 후원관계를 통해 조직되었다.
- P431

예를 들어 후보 A는 건설업계에서 알려진 인물이고 건설성에 탄탄한 인맥을 갖고 있을 수 있다(자신이 예전에 건설성의 관료였을 수도 있다). 그의 후원회 네트워크는 현지 건설회사의 회장들이 이끌고 있다. 이들은 회사 직원들을 동원해 표를 몰아주는 대신, 지역구에 배정된 인프라 예산에 따른 건설 계약을 수주할 것을 기대한다. 후보 자신은 도쿄의 비중 있는 정치가이기도 한 당내의 파벌 지도자에게의존하는 관계다. 일단 당선되면 그의 힘을 통해 국회 내의 원하던 위원회에 배정되어, 자신의 선거구가 충분한 건설 예산을 배정받도록 할 수 있다. - P431

일본은 어찌 보면 일당 독재 국가라고 불러도 될 만한 나라였으나, 자민당은 일당 독재를 할 수 있는 정당이 아니었다. 자민당의 역할은 일본이라는 국가의 지배 구조 전반에서 다양한 권력을 갖고 있는 모든 층위의 사람들에게 정치적 보호막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그 지배 구조에는 자민당 외에도 정부 관료와, 일본인들이 자이카이 (재계)라고 부르는 분야의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중략) 자민당은 정책을 결정하지 않았다. 누군가 정책을 결정한다면,
그것은 일본 관료가 오를 수 있는 커리어의 정점인 각 부처 사무차관들의 일이었다. 자민당의 주요 임무는 방해가 될 만한 힘을 가진 모든 주요 이해관계자가 정책을 지지하도록 매수하는 것(자민당은 야쿠자는 물론이고 PTA, 물가 인상에 반대하는 주부들의 연합까지 사회의 모든 주요 그룹과 어떤 식으로든 연계를 맺고 있었다), 그리고 지배 엘리트층의 서로 다른 구성원들 사이에서 완충 작용과 중재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 P434

공공과 민간 영역에서 일본 경제를 운영하던 대부분은 스스로를 일본의 산업 역량과 국가번영을 회복하기 위한 집단적 노력에 동참하는 에국자들이라고 여겼다. - P436

1955년 체제는 두 가지 심각한 결점을 갖고 있었다. 하나는 정책 방향의 중대한 전환을 가능케 할 수 있는 메커니즘이 없었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체제 외부의 야심만만한 사람이 체제 내부의 복잡한 인맥과 힘의 균형에 정통하게 되면 그에게 손쉽게 체제를 내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외부 인사가 역사적인 분기점에 때맞춰 등장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미군정 이후 처음으로 외부 환경으로 인해 일본이 중대한 경로 수정을 할 것을 강요받던 시기였다.
- P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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