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컨대 한국에서 ‘대안교육‘이라 불리는 교육 형태를 중국의 ‘자연교육‘이 품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정부의 통제가 매우 엄격한 중국에비제도권 교육‘이 체계화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대신 자연교육 종사자들은 대안적 삶‘이나 공공성을 추구하면서, 다소 모호하지만 사회적 합의를 얻은 교육 프로젝트 혹은 ‘비즈니스‘를 수행한다. 한국과 비교했을 때 ‘공민(시민) 교육‘이 빠져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국가가 규정하지 않은 시민적 권리와 의무, 이를 기반으로 한 공공성과 사회 참여에 대한 담론이 중국 교육계에서는 거의 허용되지 않는다. - P181

향토문화에 기반한 혈연·지연사회가 상당 부분 해체된 한국과 달리, 중국은 설사 대도시 거주민이라고 하더라도 자신들의 인맥 네트워크의 안과 바깥을 철저히 구분한다는 것을 실감했다. - P188

이처럼 선전은 최첨단 과학지식을 지닌 두뇌들의 ‘꿈의 경연장이자, 스스로 목숨을 끊을 만큼 고된 육체노동자들의 일터가 글로벌‘ 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공존하는 곳이다. - P207

홍콩은 선전에 자본을 투자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동시에 섬이라는 지리적 약점 때문에 대륙과 섬을 연결해주는 선전에 의존해야 했다. 즉 선전과 홍콩의 인접성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한적한 어촌이 통일의 사명을 부여받아 특구로 선정된 결정적 이유였다. - P209

요컨대 미국의 과잉축적의 위기가 대만으로 전가되고, 반半주변부인 대만의 과잉 축적 위기가 다시 주변부인 중국 대륙으로 전가된 결과 선전에 폭스콘 공장이 세워졌다. 그 후 폭스콘은 서진과 북진을 거듭하며 내륙으로 진출해 오늘날의 ‘제국‘을 형성하게 된다. - P214

선전에서는 40세가 넘으면 자연도태되지만 젊은이들에게는 ‘기회의 땅‘으로 여겨진다. 각지에서 젊은이들이 선전으로 몰려들면서 홍콩은 뒷전으로 밀려난 지 오래다. - P215

아시아의 ‘체면 문화‘와 자살의 상관성은 문화대혁명 시기 지식인의 자살이나 더 이상 명예를 지킬 수 없게 된 명사들의 경우엔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폭스콘의 노동자는 자신이 말하는 주체가 된 적이 없고 손상될 사회적 명예도 없이 오로지 ‘인간에서 기계로 추락하는 것에 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으로 죽음을 택했다. - P225

선전특구는 지구 어느 곳에서나 실행 가능한 보편적인 모델이 될 수 없다. 내부적으로는 산업화 시기의 ‘역군‘을 2등 시민으로 주변화하는 정책을 국가가 공공연히 시행하고 있다는 점과 대외적으로 성장주의에 경도된 인재 영입으로 국가 간의 마찰과 저항을 야기하고 과도한 ‘애국주의‘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러나 다른 무엇보다도 경제개혁의 실착은 이 이민 도시가 근대국가의 기본 단위인 ‘가정 만들기‘에 실패했다는 데 있다. - P227

개혁개방과 함께 도농 간 인구 이동이 허용되자 도시는 필요한 노동력을 공급받아 산업화를 달성했다. 그러나 그 결과로 천만 명의 상주인구 가운데 700만 명이 외지인인 선전, 그리고 전국적으로 2억 4천만 명에 달하는 비도시 호구 노동자들은 전국에 6천여만 명의 농촌 ‘잔류아동‘을 사회적 문제로 남겼다. 부모와 떨어져 농촌에 남겨진 잔류아동들은 도시가 성인의 노동력만을 요구하고 노동자의 가족 형성에 드는 부담을 거부한 결과였으며, 국가의 입장에서 보면 6천만 명의 차세대가 교육과 돌봄을 받지 못해 ‘국민의 질‘이 저하되는 손실을 초래한 것이었다. 이러한 문제가 발생한 근본적인 이유는 개혁정책이 ‘국민‘으로서의 보편적 권리보다 호구제에 따라 ‘도시민‘의 특권을 우선시한 데 있다. - P227

사회주의 중국에는 두 부류의 노동자가 존재한다. 개혁개방 이전부터 국영기업에서 일하면서 도시의 대표 ‘인민‘으로 인정받았던 ‘구노동자‘와 1980~1990년대에 태어난 농촌 출신의 ‘외지인 노동자‘가 그들이다. 구노동자들은 임금체불과 정리해고를 당하면 마오쩌둥의 사진을 들고 나와 "우리는 마오쩌둥의 시대가 그립다"라고 외치며 집단 시위를 벌인다. 반면 농민공이라 불리는 외지인 노동자들은 도시의 잠재적 ‘불법체류자‘로 간주되기에 이들의 시위를 지지해줄 가족도, 주민 네트워크도 없어 ‘점‘처럼 고립되고 만다. 신·구노동자 간의 이질성은 사회주의 경험의 유무만이 아니라 호구 문제와도 결합되어 있는 것이다. - P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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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주석의 강력한 지지자들은 지금 진행 중인 개혁 성과를 철저하게 완수하고 미국과의 정치적 · 경제적 대립 속에서 어느 때보다 강력한 국가지도력이 요구된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평이 보기에더 합리적인 것은 시진핑 주석의 일인집권체제보다 공산당의 집단지도체제였다. "공산당은 전통적으로 당원 및 노동자, 농민 집체에 의지하여 목표를 이루어야 하는데, 개인의 의지가 당의 의지를 대변할 경우 그 결과는 예측하기 어렵고, 다중이 원하는 바와 배치될 수 있습니다. 공산당은 하나의 집체적 지도체제이지 한 개인이 집체를 지도하는 체제가 아닙니다." - P161

"노동자나 농민으로서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사회의 진정한 주인으로 여겨졌다는 점에서 마오 시기에 대해 긍정적인 기억을 갖고 있습니다. 물론 그 시대에 정치적 박해를 받은 정치 엘리트, 지식인, 자본가 계급은 고통스러운 기억을 갖고 있겠죠, 문화대혁명에 대한 논쟁은 1980년대에 유행했지만, 지금은 사람들이 별 관심도 없고 학계에서만 논의되고 있을 뿐입니다." - P162

한국이나 미국처럼 중국인들이 국가 지도자를 직접 선거로 선출하도록 요구하는 것이 향후에 가능할지 묻자 진평은 고개를 내저었다. "가까운 미래에 중국 현대사에서 항일 투쟁과 국가 건설, 경제 발전 등 이미 공산당이 이룩한 역사적 성취와 견줄 만한 업적을 보여줄 다른 정당을 상상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 P163

진평은 마오 시대에 처음으로 농민들도 자신의 토지를 소유하게 되었고 그 기억을 대대로 간직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청조의 봉건사회가 와해된 뒤에 중국의 토지 문제를 해결한 정치세력이 민심을 얻은 것은 역사적으로 필연적인 귀결이었습니다." - P165

흥미로운 것은, 중국의 빈부 격치에 대한 진평의 반응이 계속 모순적인 양상을 보였다는 점이다. 그는 빈부 격차로 인한 사회적 불평등에 대해 비판하면서도, 중국 사회에서 주택·교육·의료 등 사회적 자원이 불공평하게 분배되는 현상 속에 존재하는 능력주의, 우승열패 등의 합리성을 강조한다. 예컨대 노력하지 않으면 뒤처질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괴롭지만, 열심히 노력한다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 P168

어느 사회에 나 물질적 가치를 통해 계층적 지위를 확보하고자 하는 욕망과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정치적 · 도덕적 명제 사이의 모순과 간극이 존재할 것이다. 인생에서 돈은 중요하지 않으며 돈으로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면서도, 동시에 부동산 시장, 주식 시장에 관심을 기울이며 끊임없이 남들보다 더 좋은 집, 더 좋은 차, 더 좋은 학교를 추구하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의 민낯일 수도 있다. 다만 중국의 경우가 더 두드러져 보이는 것은, 과거 사회주의가 지향했던 공정과 평등의 이상, 그 시절에 대한 향수와 현재 중국 사회의 경제적 불평등 사이의 간극이 너무 크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 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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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인민공화국의 혼인법은 부모강제혼인을 금지했지만, 현지조사를 통해 직접 확인해보면 1980년대까지도 농촌에서는 여전히 부모강제혼인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 결혼식을 하기 전에 한 번이라도 상대방의 얼굴을 보는 경우는 그나마 낫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다. 이처럼 부모의 강요로 혼인이 이루어지는 까닭은 무엇보다 혼인 시에 신랑의 가족이 신부의 가족에게 보내는 ‘신부대‘라는 관습 때문이다. 딸을 시집보낼 때 부모는 농촌에서는 쉽게 구하기 어려운 많은 돈을 신랑 쪽 집안으로부터 받기 때문에, 더 많은 돈을 줄 수 있는 집안에 딸을 시집보내려고 할 수 있다. 또 대를 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서, 가난한 농민일 경우 딸을 시집보내면서 받은 돈으로 며느리를 얻어 아들을 혼인시키고자 한다. - P135

신랑과 신랑 부모의 부담을 생각하면 어째서 신부대가 매매혼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키는지도 이해가 되지만, 신부대는 딸의 입장에서 보자면 딸을 키워준 부모에 대한 ‘은혜 갚음‘의 의미로 여겨진다. - P136

중국 정부의 농촌 재개발 정책은 토지와 건물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놓았다. 이제 농촌에서도 건물을 사고파는 일은 부를 축적하기 위한 당연한 행위가 되고 있고, 심지어 현행법상 거래할 수 없는 국가 소유의 토지도 암암리에 매매가 이루어지고 있다. 돈을 가진 사람들은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선점하면서, 같은 농촌이라 하더라도 현성에 사는 사람들과 주변 농촌에 사는 사람들 간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 P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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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 3성(랴오닝, 지린, 헤이룽장)이 ‘공화국의 장자‘라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조국의 운명을 짊어지겠다는 가부장적 포부를 당당히 외치던 시절이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을 정식 선포하기 전에 공산당과 국민당의 내전을 일찌감치 종식한 곳도, 한국전쟁 개입으로 마오쩌둥과 중국 공산당의 영향력을 공고히 해준 곳도, 중공업 전략기지로 신중국의 경제건설을 선도한 곳도 동북이었다. 러시아와 북조선이라는 사회주의 우방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어 현재는 "지독히 재수가 없다"고 불평이 자자하지만, 50년 전엔 사정이 달랐다. - P103

2000년대 중반 동북에서 내가 만난 사람들은 지위와 계층을 막론하고 동북을 ‘중국의 내부 식민지‘로 바라봤다. - P105

시장경제에 발 빠르게 적응하지 못한 낙오자라는 동북인에 대한 비판은 사실상 노동계급을 겨냥하고 있다. ‘사회주의‘ 독트린을 포기하지 않은 나라에서 ‘노동자‘를 비난하는 행위는 조심성을 요구하나, ‘동북인‘
에 대한 풍자와 조롱은 ‘문화‘라는 장막을 두른 채 급속히 확산 중이었다. "무식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려 하지 않는" 동북인과 "자립할 생각을 않고 국가에 의존하려고만 하는" 노동계급에 대한 비판은 미디어나 학계에서 뒤섞일 뿐 아니라 이미 취약해진 사람들의 마음을 후볐다. - P107

다들 단위체제의 의존적 삶을 비판하며 모험적인 기업가 정신을 강조했지만, 제 자식은 안정적인 직업을 갖길 바랐다. - P115

노동자들의 사회안전망에서 국가나 단위가 차지하는 역할이 축소되었을 때, 면면히 이어져 온 가족들의 상호의존은 더 큰 힘을 발휘한다. 그렇다고 의존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능력과 기술을 쉽게 획득할 수 있는것은 아니다.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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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인류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한 이래 나의 계획은 끝없이 벽에 부딪혔다. 신장 국경 내외의 목축민 비교연구‘라는 주제를 들고 처음 베이징대학을 찾아갔을 때, 면담 교수는 그 주제를 단칼에 거절했다. 칭화대학교는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주제의 수정을 제안했다. 상하이 푸단대학교의 교수는 본인이 소수민족이었고 연구 주제의 수정을 요구하지 않았기에 나는 상하이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나 2017년 신장에서 예비조사를 시작하면서, 그제야 베이징 인사들의 ‘현실주의‘를 인정하게 되었다. 소수민족 지구에서 인류학 조사는 나의 순진한 상상 속에서나 가능했다. 여러 관공서를 돌아다니며 설득해봤지만 결국 결정권은 국경수비대(보국대)의 손에 있었고, 그들은 외부 관찰자를 원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나는 서서히 중국 변경에서 중앙아시아로 몰리다. 연구 대상을 중앙아시아로 완전히 바꿀 수밖에 없었다. - P67

어떤 현상이 일어나고 분과 학문이 그것을 미처 분석하기도 전에 다른 현상이 겹쳐진다.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소위 ‘개혁개방‘의 시기가 도래해 막 이전 시대를 분석하기 시작하자마자, 문혁을 꼭 닮은 사회운동 ‘옌다‘ (옌리다지嚴打擊: 엄격하게 때려잡는다‘는 뜻. 1983년에 시작된 풍속정화운동, 즉결심판이 기승을 부려, 남녀혼거 등의 풍속 문제로 수많은 사람들이 투옥되고 즉결처벌을 받았다)가 개혁개방의 흐름 안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개혁개방과 집단지배체제 리더십의 성과를 다 분석하기도 전에, 이미 일인지배체제와 무역전쟁이 자리를 잡는다. - P68

"89년, 그때 학생들과 지금 학생들은 수준을 비교할 수가 없어요. 그때 학생들은 자신의 생각을 따르는 이들이었어요. (아쉽게도) 그들이 일어나서, 앞으로 나가기도 전에 눌려버렸죠." - P81

"나는 역사학자가 아니지만 역사를 공부하고, 종교와 철학을 공부하면서 내 관점을 얻습니다. 공부 후에 찍은 사진은 분명 자신의 세계 인식을 표현한 것입니다. 한 장의 개별 사진이 아니라, (전체로 연결된) 촬영입니다. 그래서 나는 사진을 찍지만, 평소에 사진과 관계없는 활동을 주로 합니다. 사진과 그림은 내 세계관을 표현하는 방식 혹은 태도이니까요." - P84

"전체적으로 말하면, 그것은 돈 있는 사람들이 돈 없는 사람들을 가지고 즐기는 방식의 하나입니다, 예술을 수단으로요. 곤극의 내용은 대개 애정입니다. 지금 중국에서 곤극을 좋아하는 이들은 대부분 중산계급 지식분자들, 교육을 받고 공부도 좀 한 이들로서, 현실 도피도 좀 하고 싶은 이들. 20대에서 40대 중반 정도의 여자들이 많죠. 곤극의 내용은 아름답지만 모두 비극이잖아요. 곤극을 통해 그들은 비극적 애정 정서의 가장 아름다운 면을 느끼고 싶어 해요. 곤극 애호는 중국 당대의 중산층 지식분자, 특히 여성 계층의 현상입니다." - P85

"문화가 가장 위험한 겁니다. 지식인들은 문화를 통해 가장 큰 영향을 받거든요. 예술은 문화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이고요. 지금 상하이 예술계에는 매일 국가안전국 사람들이 나와서 점검해요. 전국이 똑같아요." - P86

"예술품은 돈과 자본시장과 연계될 수밖에 없지요. 그러나 예술가는 창조할 때 판매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예술의 생태가 망가집니다." - P87

"사람들이 자기 하나 보존하기도 힘든데, 무슨 시간이 있어서 내 작품을 즐겨 보겠습니까? 경제 · 정치 · 문화 · 생태 · 환경이 다 어렵고, 상황은 문혁 때보다.
더 심각합니다. 어떤 때는 절망합니다. 사는 것이 재미없어서요. 죽으라면 죽지 뭐, 이런 생각도 합니다. 자주요." - P88

"예민하게 사회를 비판하려면, 먼저 민족주의의 위험성을 알아야 합니다. 민족주의는 인류가 가진 좁은 심성이지요."
오랜 대화를 통해 파악한 결과, 그는 민족주의를 국가와 결합된 인종주의로 파악하는 듯했다. - P90

"내가 독일의 표현주의 당대주의를 높이 평가하는 건, 그 내용이 인류의 보편가치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평등, 민주, 자유, 인류와 환경의 화합이죠. 이런 것들이 없으면 허무하고 황당한 현상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는 그런 것이 없으니, (국가에게 자신을 맡기고) 계획경제 시절 국가가 황제처럼 ‘내가 모두 안배해줄 테니 내 말만 들어‘ 하는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자기 길을 모릅니다. 물론 반항하는 예술가도 있지만, 그 수준과 층위는 얇고 얕습니다." - P91

"어떤 이는 ‘나는 주류와 다르다. 나는 반항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주류와 더 밀접하게 접촉하고 있습니다." - P92

"유가의 인애나 관용은 현실에서는 완전히 허위입니다! 유가는 세상에서 가장 위선적인 것, 인류 사상 가장 괴상한 존재입니다. 물론 좋은 점도 있겠지만, 수천 년 동안 중국에서 너무나 기괴한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중국의 불교도 그렇습니다. 원래 불교 자체는 문제가 없겠지만, 중국에 와서 세속화된 후, 무슨 (진짜) 불교가 있습니까? 미신이지요. 그것이 권리(이익)와 연결되면, 바로 끝장이죠!" - P92

"상하이가 전국 여타 지역과 다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지금 상하이의 경제적 측면이 너무 커졌다는 겁니다. 그것이 더 큰 세속화를 불러와 예술의 본질을 더욱 부식합니다. 돈 가진 이들이 보는 작품은 공예품에 불과합니다. 표면 묘사는 좋습니다. 그러나 내면은 황무지에 불과합니다." - P93

"돈은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요. 많은 사람들이 돈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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