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 3성(랴오닝, 지린, 헤이룽장)이 ‘공화국의 장자‘라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조국의 운명을 짊어지겠다는 가부장적 포부를 당당히 외치던 시절이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을 정식 선포하기 전에 공산당과 국민당의 내전을 일찌감치 종식한 곳도, 한국전쟁 개입으로 마오쩌둥과 중국 공산당의 영향력을 공고히 해준 곳도, 중공업 전략기지로 신중국의 경제건설을 선도한 곳도 동북이었다. 러시아와 북조선이라는 사회주의 우방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어 현재는 "지독히 재수가 없다"고 불평이 자자하지만, 50년 전엔 사정이 달랐다. - P103
2000년대 중반 동북에서 내가 만난 사람들은 지위와 계층을 막론하고 동북을 ‘중국의 내부 식민지‘로 바라봤다. - P105
시장경제에 발 빠르게 적응하지 못한 낙오자라는 동북인에 대한 비판은 사실상 노동계급을 겨냥하고 있다. ‘사회주의‘ 독트린을 포기하지 않은 나라에서 ‘노동자‘를 비난하는 행위는 조심성을 요구하나, ‘동북인‘ 에 대한 풍자와 조롱은 ‘문화‘라는 장막을 두른 채 급속히 확산 중이었다. "무식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려 하지 않는" 동북인과 "자립할 생각을 않고 국가에 의존하려고만 하는" 노동계급에 대한 비판은 미디어나 학계에서 뒤섞일 뿐 아니라 이미 취약해진 사람들의 마음을 후볐다. - P107
다들 단위체제의 의존적 삶을 비판하며 모험적인 기업가 정신을 강조했지만, 제 자식은 안정적인 직업을 갖길 바랐다. - P115
노동자들의 사회안전망에서 국가나 단위가 차지하는 역할이 축소되었을 때, 면면히 이어져 온 가족들의 상호의존은 더 큰 힘을 발휘한다. 그렇다고 의존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능력과 기술을 쉽게 획득할 수 있는것은 아니다.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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