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학에서 모든 학생들이 필수적으로 이수해야 하는 정치 과목은 본래 마오쩌둥 사상과 덩샤오핑 사상 두 가지였다. 여기에 시진핑 사상을 추가했다는 것은 최소한 시진핑이 자신이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초기의 가장 유명한 두 지도자만큼의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중국공산당은 "시진핑 사상은 현대 중국의 마르크스주의이며, 21세기 마르크스주의의 새로운 발전" 이라고 강조한다. 2020년 가을부터 베이징대, 칭화대 등 중국 37개 주요 대학은 시진핑 사상 강의를 시작했다. 시진핑 사상을 21세기 마르크스 사상으로 떠받드는 중국공산당이 불평등에 맞서 노동자들을 지원하려는 좌파 학생들을 탄압하는 현실은 기묘한 질문을 던진다. - P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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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경제의 초고속 성장 시대가 끝나고, 미국과의 패권 경쟁으로 외부 환경이 악화되고, 노동자들의 파업과 시위가 계속되는 가운데 중국 지도부는 통제 강화로 사회불안 요소를 원천 차단하기로 결정했다. 공산당과 시진핑 주석의 영도에 대한 절대적 복종을 강조하면서 인민의 주체성과 아래로부터의 목소리는 철저히 통제하는 쪽으로 급속한 방향 전환이 일어났다. - P167

민주와 평등을 요구하는 목소리는중국 현대사의 오래된 미완의 과제다. 1919년 반제국주의와 함께 민주와 과학을 요구했던 5·4운동의 과제는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이후 특권에 반대하고 공정한 사회를 요구했다가 반우파 투쟁에서 희생된 학생들, 문화대혁명 이후 정치 현대화를 요구했던 민주의 벽 운동, 1989년의 톈안먼 시위를 거쳐 노동운동과 인권운동으로 이어져왔다. - P168

(선멍위는) 노동자들에게 선택의 권리란 "임금이 너무 낮아 주말에도 휴일근무를 선택할 수밖에 없고, 산재를 신청하면 보너스가 깎이기 때문에 산재 신청 포기를 선택할 수밖에 없고, 관리자의 학대와 욕설에도 묵묵히 참는 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임을 깨달았다. - P172

중국공산당의 역사를 돌아보면, 엘리트들이 농민과 손을 잡았을 때, 한 알의 불씨가 광야를 불사르듯 혁명의 불길을 일으켰다. 1989년 톈안먼 시위의 한계는 학생들이 노동자, 농민과 제대로 연대하지 못한 것이었다. 자스커지 사건은 마르크스주의와 마오쩌둥 사상에 따라 중국 사회를 바꾸려던 대학생들과 노동자들이 처음으로 ‘노학연대‘를 이루고 함께 행동에 나섰다는 점에서 중국공산당에게는 매우 민감한 경고음이 되었을 것이다. -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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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대륙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의 억압적 통치가 강화되고 해바라기운동과 같은 해에 홍콩에서 일어난 우산혁명이 중국 당국의 탄압을 받으면서, 중국의 통치 방식에 반감을 느끼는 대만인과 홍콩인의 정서가 강하게 공명했다. 해바라기운 동과 우산혁명은 대만의 여론에 "중국과 우리의 길은 다르다"는 선명한 신호를 각인시킨 역사적 분기점이었다. - P149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대만을 지렛대 삼아 중국 흔들기를 계속할 것이고, 2021년 공산당 창당 100주년과 2022년 시진핑 주석의 3연임을 결정할 20차 당대회를 맞아 정당성과 성과를 부각시켜야 하는 시진핑 주석도 ‘대만에 대한 무력통일도 가능하다‘는강경 태세에서 물러서기 어렵다. 미-중 양국 모두 두 강대국의 실제 군사적 충돌로는 나아가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선은 그어두고 있지만, 대만 카드를 패권 경쟁에서 충분히 활용하며 위태로운 공방전을 계속할 것이다. - P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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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인들은 시진핑 시대 들어 크게 악화된 중국 대륙의 권위주의, 통제, 감시가 홍콩인들에게도 강요되는 것을 우려하면서 ‘일국양제‘ 약속에 보장된 홍콩인들의 삶의 방식을 지키고 민주화를 진전시키길 원했지만, 중국공산당 지도부의 답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홍콩인들의 완전한 복종이었다. - P123

경찰의 폭력, 시위 참가자들의 실종과 석연치 않은 죽음, 시위를 주도한 운동가들에 대한 습격이 이어졌다. 공권력에 대한 신뢰는 사라졌다. 비폭력 시위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대다수가 평화 시위를 이어갔지만, 경찰과 대치하는 선봉에선 청년들이 폭력으로 경찰에 맞서기 시작했다.(중략) 언제라도 체포되거나 ‘의문사‘ 당할 수 있다고 불안해하면서 많은 청년들이 유서를 써두고 시위에 나섰다. - P123

오랫동안 홍콩인이란 정치에 무관심하고 각자도생에 바쁜 이들로 여겨졌다. 영국 식민지 시절부터 홍콩의 정치는 친영국 엘리트들과 부동산 재벌 · 자본가들만의 것이었다. - P134

우산혁명이 좌절한 이후 ‘우산세대‘가 등장했다. 이들은 부모 세대의 중국 시민사회 지원에 큰 관심이 없었다. 중국은 남이고 우리는 홍콩인이란 정체성이 높아졌다. 홍콩 민주화를 넘어 홍콩 독립을 강조하는 본토주의 단체들이 성장하기 시작했다. 홍콩에서 원정 출산, 싹쓸이 쇼핑, 부동산 투기를 하는 대륙인들에 대한 노골적 혐오감을 드러내는 인종주의적 주장도 나왔다. - P136

2019년 송환법 반대 시위에서 일부가 미국과 영국 국기 등을 흔들면서 외국 정부의 개입을 요구한 것은 논란과 파장을 몰고 왔다. (중략)
중국공산당은 이 지점에 주목했다. 시위대 일부의 반중국, 독립 주장을 지목하며 홍콩 시위대 전체를 "매국노"로 규정했다. (중략)
중국 지도부는 홍콩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대신, 이들의 절박한 시위를 안보 불안의 문제로만 보았다. - P127

홍콩의 좌파 활동가 연구자 그룹인 라우산Lausan은 2020년 5월 22일 발표한 글에서 "최근 몇 년 사이 홍콩 민중운동은 중국을 이웃나라 혹은 적대적 대상으로 보는 논법을 써왔지만 이런 논리로는 중국공산당의 민족주의에 맞설 수 없다"며 "국가 안보라는 미명하에 억압당하고 있는 대륙 내의 인민들과 단결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 P129

"지금 중국의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희망을 정부나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지 않고 스스로에게 둔다. 그들은 우리가 (톈안먼 시위를 했던) 30년 전에 상상했던 것을 이미 뛰어넘었다. 그들이 권리를, 그리고 어떻게 싸워나갈지를 자각한다면, 여기에 희망이 있다." 그는 "중국공산당 정부는 노동자 가족들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권력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그들이 직면한 가장 큰 정당성 이슈는 부의 재분배 문제다. 이런 긴장 때문에 중국 노동자들은 계속 힘을 얻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 P134

"30년 전 베이징에서 우리는 한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자유라고 불리던 어떤 것을 간청하다가 탄압을 당하자 바로 포기했다. 우리가 그것을 경험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홍콩의 젊은이들은 구걸하지 않고 요구한다. 그들은 자유 속에서 살아왔고 이제 누군가 그것을 빼앗아가려 하기 때문이다. 이 점이 근본적 차이다. 이 사람들이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라 믿는다. - P136

6월 30일 밤 11시 보안법이 시행되면서 홍콩은 순식간에 낮선 공간으로 변했다. 보안법은 정부에 대한 비판은 물론, 홍콩의 사회운동 단체가 해외 인권 단체나 정치조직과 연대하는 것까지 국가분열, 외세 결탁 등의 죄목으로 처벌할 수 있게 해서 중국과 홍콩 당국이 비판 세력을 마음대로 탄압할 수 있는 요술방망이임이 드러났다. - P139

중국 당국은 톈안먼에서 제기된 민주와 평등의 요구 그리고 부패와 특권에 대한 문제 제기를 진압해버린 뒤에 저항수단을 잃은 국유기업 노동자들을 대량으로 해고하고 농촌에서 도시로 온 농민공들에게 제대로 권리를 주지 않은 채 저임금 노동력으로 활용해 급격한 시장화 개혁을 추진했다. 이것이 오늘날 중국 사회의 심각한 빈부격차, 농민공들이 겪는 심각한 차별의 주요한 기원이 되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 P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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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부터 중앙민족대학에서 법과 경제를 강의한 일함은 한동안 위구르인들로부터 중국 정부의 동화 정책에 협력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을 만큼 분리 독립 주장과는 거리가 먼 온건파였다. 그러나 위구르인들이 조상 대대로 살아온 신장에서 한족들에게 밀려나 경제적, 사회적 차별을 받는 문제를 개선하려는 그의 노력은 극단주의로 몰리고 있었다. - P99

2017년 4월께부터 신장 곳곳에 재교육 캠프, 교육훈련학교 등의 이름을 단 건물들이 세워져 위구르인들이 이곳으로 잡혀가기 시작했다. 가족이 해외에 있거나 해외의 친지를 방문 또는 연락했다는 이유로, 종교나 위구르 문화에 대한 책을 소지했거나 수염을 기르거나 모스크 이외 공공장소에서 기도를 하거나 히잡을 썼다는 이유로, 해외와 연락할 수 있는 왓츠앱 등의 앱을 휴대전화에 깔았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사라졌다. - P103

수용소에 수감되었다가 석방되거나 탈출한 위구르 여성들은 수용소 안에서 한족 남성들로부터 조직적으로 성폭력을 당하고, 강제로 불임 주사를 맞거나 낙태를 당했다고 폭로했다. 2018년까지 9개월간 재교육 수용소에 감금되었다가 미국에 망명했다는 투르수나이 지아우둔은 2021년 2월 영국 B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매일 밤 많은 여성들이 끌려나가 정장 차림에 마스크 를쓴 중국 남성들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했다. 나도 세 차례 당했다"고 증언했다. - P106

중국 당국은 자신들이 서구 국가들의 반테러 · 급진주의에 대한 대응법을 따르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2019년 12월 호주 주재 중국대사 청징예는 "교육캠프의 모든 교육생은 캠프를 졸업하고 원래 일자리로 돌아가거나 정부의 지원으로 새로운 직업을 찾았다. 100만 명이 구금되어 있다는 보도는 가짜 뉴스"라면서 "신장에서 일어난 일은 서구 국가들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이 테러와의 전쟁을 위해 했던 일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 P107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수렁에 빠져 있는 동안 중국은 경제적으로 급속히 도약해 미국과의 경쟁에 대비했다. 이제 미-중 긴장이 고조되고 미국과의 대결 가능성을 의식하기 시작한 중국은 외부 세력이 중국 통치에 저항하는 위구르인 등을 이용해 중국을 분리시킬 우려가 있다는 강박에 사로잡혔다. - P108

1949년 중국공산당의 인민해방군이 신장에 처음 들어온 뒤, 중국 당국은 정책적으로 한족을 대규모로 이주시켰고 위구르인과 한족의 갈등과 긴장은 높아졌다. 농부나 소상점 주인, 무역업자 등으로 일하는 1100만 위구르인 사회와 정부 관리나 군인으로 일하거나 대규모 사업 또는 자원 개발에 종사해 권력과 부를 장악한 한족들은 조금도 융화되지 않은 채 두 개의 세계로 완전히 분리되어 살아왔다. - P115

중국의 정책은 신장의 위구르 사회를 극과 극으로 갈라놓았다. 중국 당국의 감시와 처벌, 통제를 말단에서 수행하는 것도 당국에 고용된 위구르인들이다. 이들은 경찰이나 재교육 캠프의 관리자 · 간수, 검문소의 보안요원으로 고용되어 살아간다. 감시와 통제가 위구르인들의 주요 일자리가 되었다. 반면 수용소에 갇히거나 일상생활에서 수많은 검문과 감시를 받으며 살아야 하는 주민들 사이에는 골이 깊어졌다. - P116

호주 전략정책연구소는 2020년 3월 보고서에서 2017~2019년 8만 명 이상의 위구르인들이 신장으로부터 중국 각지의 공장으로 보내져 "강제노동에 가까운 환경에서 컴퓨터 스크린, 카메라, 지문 인식장치 등 다양한 제품을 만들고 있으며 이런 상품들이 나이키, 애플, 델 등 83 개 글로벌 브랜드에 납품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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