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부터 중앙민족대학에서 법과 경제를 강의한 일함은 한동안 위구르인들로부터 중국 정부의 동화 정책에 협력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을 만큼 분리 독립 주장과는 거리가 먼 온건파였다. 그러나 위구르인들이 조상 대대로 살아온 신장에서 한족들에게 밀려나 경제적, 사회적 차별을 받는 문제를 개선하려는 그의 노력은 극단주의로 몰리고 있었다. - P99

2017년 4월께부터 신장 곳곳에 재교육 캠프, 교육훈련학교 등의 이름을 단 건물들이 세워져 위구르인들이 이곳으로 잡혀가기 시작했다. 가족이 해외에 있거나 해외의 친지를 방문 또는 연락했다는 이유로, 종교나 위구르 문화에 대한 책을 소지했거나 수염을 기르거나 모스크 이외 공공장소에서 기도를 하거나 히잡을 썼다는 이유로, 해외와 연락할 수 있는 왓츠앱 등의 앱을 휴대전화에 깔았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사라졌다. - P103

수용소에 수감되었다가 석방되거나 탈출한 위구르 여성들은 수용소 안에서 한족 남성들로부터 조직적으로 성폭력을 당하고, 강제로 불임 주사를 맞거나 낙태를 당했다고 폭로했다. 2018년까지 9개월간 재교육 수용소에 감금되었다가 미국에 망명했다는 투르수나이 지아우둔은 2021년 2월 영국 B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매일 밤 많은 여성들이 끌려나가 정장 차림에 마스크 를쓴 중국 남성들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했다. 나도 세 차례 당했다"고 증언했다. - P106

중국 당국은 자신들이 서구 국가들의 반테러 · 급진주의에 대한 대응법을 따르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2019년 12월 호주 주재 중국대사 청징예는 "교육캠프의 모든 교육생은 캠프를 졸업하고 원래 일자리로 돌아가거나 정부의 지원으로 새로운 직업을 찾았다. 100만 명이 구금되어 있다는 보도는 가짜 뉴스"라면서 "신장에서 일어난 일은 서구 국가들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이 테러와의 전쟁을 위해 했던 일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 P107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수렁에 빠져 있는 동안 중국은 경제적으로 급속히 도약해 미국과의 경쟁에 대비했다. 이제 미-중 긴장이 고조되고 미국과의 대결 가능성을 의식하기 시작한 중국은 외부 세력이 중국 통치에 저항하는 위구르인 등을 이용해 중국을 분리시킬 우려가 있다는 강박에 사로잡혔다. - P108

1949년 중국공산당의 인민해방군이 신장에 처음 들어온 뒤, 중국 당국은 정책적으로 한족을 대규모로 이주시켰고 위구르인과 한족의 갈등과 긴장은 높아졌다. 농부나 소상점 주인, 무역업자 등으로 일하는 1100만 위구르인 사회와 정부 관리나 군인으로 일하거나 대규모 사업 또는 자원 개발에 종사해 권력과 부를 장악한 한족들은 조금도 융화되지 않은 채 두 개의 세계로 완전히 분리되어 살아왔다. - P115

중국의 정책은 신장의 위구르 사회를 극과 극으로 갈라놓았다. 중국 당국의 감시와 처벌, 통제를 말단에서 수행하는 것도 당국에 고용된 위구르인들이다. 이들은 경찰이나 재교육 캠프의 관리자 · 간수, 검문소의 보안요원으로 고용되어 살아간다. 감시와 통제가 위구르인들의 주요 일자리가 되었다. 반면 수용소에 갇히거나 일상생활에서 수많은 검문과 감시를 받으며 살아야 하는 주민들 사이에는 골이 깊어졌다. - P116

호주 전략정책연구소는 2020년 3월 보고서에서 2017~2019년 8만 명 이상의 위구르인들이 신장으로부터 중국 각지의 공장으로 보내져 "강제노동에 가까운 환경에서 컴퓨터 스크린, 카메라, 지문 인식장치 등 다양한 제품을 만들고 있으며 이런 상품들이 나이키, 애플, 델 등 83 개 글로벌 브랜드에 납품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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