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한 가지 일이 발생하는 것은 우연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 열 가지, 스무 가지 끊이지 않고 발생한다면 그 사건들 사이에는 필연적인 연계가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렇게 듣기 힘들고 괴상한 일들이 매달 매주, 거의 매일 한 지역에서 일어난다면 우리는 하는 수 없이 이런 사건들 자체의 구체적인 문제가 아니라 중국이라는 이 땅, 이 땅의 현실에 아무도 파악 못 하고 치료할 수도없는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 P145

사람들은 대도시나 시골에서 살아가면서 돈과 허망함과 아름다운 미래를 위해 바삐 돌아치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의 영혼은 어둠의 깊은 나락으로 추락하여 미끄러져가고 있다. 죽음을 향한 질주이자 추구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오늘 살아 있는 사람들이 사실은 전부 죽은 영혼들인 것이다. 살아있는 사람들의 죽은 영혼을 마주하여, 팽창되고 왜곡된 현실과 부조리, 불가사의한 어둠, 엽기적인 진실을 마주하여 문학적 상상은 전혀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작가들은 빠르게 발전하고 변형되는 인심 및 생활에 대해 반드시 갖추고 있어야 할 파악 능력을 상실한 상태다. - P146

오늘날 중국의 현실과 현실 속의 사람들에 대한 비판과 풍자, 폭로는 하나같이 연민과 사랑, 뜨거운 열정을 담은 포옹과는 차가운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하나같이 매우 단순하고 편파적이며 일부를 전부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좀더 구체적이고 깊이 있는 시각으로 얘기하자면 오늘날 중국의 수많은 작가가 마주하고 있는 문제는 사람들이 얘기하는 것처럼 복잡한 현실 파악 능력을 상실한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중국 현실과 현실 속의 사람들에 대해 알맞은 태도를 유지하지 못하고 있는것이다. 이러한 태도의 유지가 진정한 난제인 것이다. - P149

작가들에게 아무런 권력도 없고 이런 단어를 ‘1989년 6월 4일‘이라고 명확하게 기술할 수 있는 자유를 쟁취하지도 못해 ‘1990년에서 한 해 모자라는 해의 5월 35일‘이라고 표현하고 있을 때, 우리는 이미 글쓰기의 독립성을 상실한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연약성으로 인해 약소함과 안전감으로 위안과 만족을 얻는것은 아Q가 마음속으로만 욕을 내뱉으면서 이를 사회와 적에 대한 반항과 반격으로 여겼던 것과 다르지 않다.
이에 대해 나는 슬픔과 고통을 통감한다. -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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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시종 금지가 곧 예술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금서가 때로는 용기와 두려움 없는 태도, 그리고 지나친 외부의 견제를 의미할 수는 있지만 예술의 유일한 법문이 되지는 못한다. - P109

오늘날, 중국으로 말하자면 거의 매년 몇권 혹은 몇십 권의 책이 검열을 통해 출판이 금지되고 있다. 이에대해 우리는 한편으로는 이런 출판 제도와 검열을 싫어하면서 이런 검열을 제거하기 위해 기꺼이 여러 희생과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한편 이런 작품들의 검열과 금지 때문에 좋은 작품이라는 월계관을 그 작품의 지위에 내려놓거나 그 작가의 머리 위에 씌워주지도 못한다. - P111

여기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금지와 논쟁이 중국 검열 제도의 치욕인 동시에 중국에 대한 서양의 절실한 관심의 단초가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금지와 쟁론이 예술적 성취도가 높은 훌륭한 작품의 척도나 기준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몇 년 전에 중국의 한 작가가 인민폐 10만 위안(한화 약1700만 원)을 중국의 출판 기구에 뇌물로 주면서 자신의 소설에 금지와 비판의 조치가 내려지게 해달라고 요구한 적이 있다. 이 우스운 사건이야말로 금지가 관심의 대상이 되는 단초가 되는 것이지 결코 예술적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님을 잘 설명해준다. - P112

내 작품을 평가할 때, 나는 독자들이 나를 ‘가장 많은 쟁론의 대상이 되고‘ ‘금서가 가장 많은‘ 작가가 아니라 그냥 한 명의 작가로 생각해주기를 바란다.
요컨대 내 일생의 노력은 좋은 작품을 써내기 위한 것이다. 나는 ‘중국에서 금서가 가장 많고 쟁론의 대상이 가장 많이 되는‘ 작가가 아니라 좋은 작가가 되기를 원한다. - P113

나는 현재 중국의 정치환경과 문화 생태, 그리고 현실의 속박 안에서 글을 쓰는 작가들은 일생의 글쓰기가 내용에서 형식에 이르기까지 금지된 적은 없더라도 질책과 쟁론의 대상조차 되어본 적이 없다면 이는 대단히 의심할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한다. - P115

금지당하고 비판받는 것은 당연히 좋은 일이 아니다. 금지와 비판이 좋은 작품을 써냈다는 것을 증명하진 못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복잡하고 잔혹한 현실 상황에서 금지와 비판이 가장 예술적임을 의미하진 않지만 적어도 존경의 근거를 증명하기는 한다. 금지와 비판은 적어도 작가의 인성이 용기와 인격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한 작가가 평생 비판과 논쟁의 대상이 되지 않으면서 반만 열려 있는 창문으로 갑자기 열렸다 갑자기 닫히는 바람 같은 정치 환경에 처해 있었다면 평생의 명예와 수상은 의심의 대상이 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무척이나 가련하고 슬픈 일이라고 말하는 게 옳을 것이다. - P116

글쓰기의 신념이 울타리 밖의 자유로 통하는 길을 쟁취하기 위한 위치에 맞춰져 있어야지 스스로 마음대로 울타리를 드나들 수 있는 축신술의 이상에 맞춰져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작가들의 글쓰기 신념은 울타리 문에 구멍을 뚫는 것이어야지 몸집을 줄여 울타리를 빠져나가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울타리 문을 열다가 죽을지언정 몸집을 줄여 드나들생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할 경우에는 눈으로 보고 있어야 한다. 눈으로 볼 수도 없다면 그 반쯤 열린 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비바람과 문틈 밖을 오가는 발걸음 소리나 웃음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 모든 것을 할 수도 없고 볼 수도 없고 들을수도 없다면 우리는 머리와 몸으로 울타리 담장을 들이받는 양이나 울타리 문의 자유로운 통행을 쟁취하기 위해 행동하고 희생하는 양들에게 말없이 존경과 지지의 마음이 담긴 절을 올려야 할 것이다. - P119

한 가지 생략된 문제는 작가들이 문학을 통해 탐구가 허락되지 않은 현실과 역사의 진실을 탐구하고자 할 때, 종종 정직함과 용기에 좌우되어 사실의 진상이 주재자가 되어 모든 것을 압도하고 팽창되어 더 이상 억누를 수 없는 내면의 걱정이 예술의 필요성을 덮어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진실이 곧 예술은 아니라는 상식과 이치를 무시하게 된다. - P121

중국에서 제2차 세계대전 시기에 사망한 사람은 2000만 명이 넘는다. 하지만 중국 문학에는 서양처럼 전쟁과 생명 전체에 대해 성찰하는 작품이 거의 없고 전쟁에서 사라진 평민을 그린 감동과 슬픔으로 가득한 작품도 하나 없다. 거의 모든 예술작품이 당파와 전쟁 영웅에 대한 가공송덕이다. - P122

중국의 일류 작가, 가장 뛰어난 예술적 재능과 창조력을 갖춘 작가들은 일반적으로 이 사회에서의 수혜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우회하여 돌아갈지언정 허락되지 않은 역사와 현실, 진실과 진상을 건드리지 않을 만큼 충분히 똑똑하고 지혜롭다. 그들은 대부분 ‘조직 내부‘의 행렬 안으로 편입되어 들어가고, 이처럼 양심과 용기를 가진 작가들은 뛰어난 예지와 창조력, 그리고 문학예술에 대한 인지력 때문에 예술에 있어서 혹은 예술 자체로부터 그 무겁고 거대한 진실과역사를 진정으로 지배할 수 없게 된다. - P123

최종적으로 작가가 쓴 작품의 의미를 평가하는 기준은 인간과 인류의 감정 및 사물의 기억을 연장했는지의 여부가 된다. 문학작품이 연장한 기억은 인류에게 대단히 큰 의미를 갖는다. 그 의미는 작가들과 현재의 시간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강줄기와 시간, 미래를 결정한다. - P124

이러한 양심과 지성을 갖춘 작가들이 그저 정직과 양심에만 의지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양심과 지성 외에 작가들에게는 좀더 높은 예술적 추구와 창조력이 있어야 한다. - P126

 오늘날 중국에서 ‘즐겁게 죽는 것‘은 허용되지만 현실을 마음대로 사유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돈을 신앙으로 삼는 것은 허용하고 미친 듯한 배금주의를 성스러운 높이까지 올려놓지만 신앙에 대한 선택과 경건함은 허용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을 문학의 영역으로 옮겨놓고 보면 자연스럽게 ‘허용‘ ‘불허‘의 구별과 맞닥뜨리게 된다. ‘독자 지상주의‘와 ‘시장 제일주의‘ ‘환락 만세‘ ‘순수예술‘을 선택하는 것은 허용되지만 ‘예술의 진실한 탐구‘와 현실 속 ‘영혼에 대한 문학의 끊임없는 질의‘는 허용되지 않는다. 칭송은 높이 평가하지만 질의는 막아버리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두 가지 태도와 세력을 조성한다. 보이지 않는 권력의 통제 속에서 복잡하고 풍부한 현실을 거의 모든 사람이 수용하는 글쓰기와 수많은 사람이 침을 뱉는 글쓰기로 분류하는 것이다. - 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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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 제너레이션 작가들은 중국의 작가와 독자들에게 살아 있으면서도 혁명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저항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인생은 ‘본질적‘이고 ‘본원적‘인 것일 수도 있고 그렇게 숭고하고 피곤할 필요가 없는 것일 수도 있다는 점을 깨닫게 해주었다. - P87

중국이라는 오래된 땅은 줄곧 성과 성애에 대해 늦가을의 매미처럼 아무 소리를 내지 못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몹시 갈구하고 추구하는 태도를 보여왔다. 한편으로는 예로부터 "배가 부르면 음욕을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런 일이다"라고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성애를 화의 근원으로 간주해왔다. 그래서 『롤리타』는 상당 기간 동안 ‘엄숙 문학(정통 문학)‘으로 간주되지 못했다. 하지만 중국인은 오랫동안 정치적 억압에 시달렸고 온갖 거짓말과 유언비어에 속아왔기 때문에 아주 오랫동안 금서에 대한 특별한 사랑과 취향이 세계의 모든 문학상을 초월했다. - P96

이 ‘거친 아이‘는 문학적 의미에서 볼 때는 일종의 ‘해방된 독립이자 창조‘라고 할 수 있고 사회학적 의미에서 말하자면 문학에서 발양된 미국의 ‘자유 정신‘이자 인간의 독립성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 ‘거친 아이‘라는 문학의 공동 형상이 중국에서 그토록 위력을 떨치면서 큰 환영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중국의 역사 및 현실이 이러한 문학적 야성과 현실에서의 인간의 자유를 크게 결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친 아이‘의 자유 생활과 자유 생존, 분투하여 자유를 쟁취하는 것 내지 자유를 타락시키는 것이 과거와 현재, 미래의 중국인, 즉 독자들의 ‘거친‘과 자유에 대한 갈망을 결합시켰다고 할수 있다. -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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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현실을 마주하고 작가가 국가 및 권력을 마주하고 있을 때, 문학과 작가의 비천함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오늘날의 중국에서 작가와 문학이 정말로 먼지 속으로 들어가서도 숭고함을 느낄 수 있고 사회 발전과 함께 다른 사람들보다 앞서나갈 수 있을까? - P60

중국 문학은 세계에 독특하고 유일무이한 중국 이야기를 써내지 못한 것에 대해 스스로 비친함을 느끼지 못하고, 독특하며 유일무이한 다른 인류의 중국식 시대에 처해 있으면서도 과거 루쉰이 당시의 중국인인 ‘아Q‘를 써냈던 것처럼 오로지 오늘날의 다른 인류인 중국인을 써내지 못한 데 대해 마땅히 느껴야 하는 자괴감을 느끼지 못한다. 문학이 바로 ‘다른 중국‘의 비천한 시대에 처해 있지만 나를 비롯한 수많은 작가가 그 안에서 깨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 P69

문학의 비천함은 ‘다른 중국‘의 존재일 뿐만 아니라 좀더 다른 예술의 힘, 혹은 영생하는 작가와 문학 자체이기도 하다. 나는 오늘의 중국, 즉 ‘다른 중국‘과 ‘다른 시대‘에는 작가가 비천하기 때문에 글을 쓰고 비천함을 위해 글을 쓰며, 글을 쓸수록 더 비천해지고 비천해질수록 더 글을 써야 한다는 점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사정은 이렇다. 문학은 비천하기 때문에 존재하고 비천함은 문학예술을 위해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나는 마침내 ‘다른 중국‘의 비천함을 자각적으로 인정하고 수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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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와 1990년대에 태어나 이제 스무 살 내지 서른 살이 된 중국의 아이들은 정말로 망각의 한 세대를 형성하고 있는 것일까? 누가 그들을 망각의 상태로 내몬 것일까? 그들이 망각하는 방법은 어떤 것일까? 우리처럼 기억을 갖고 있는 전 세대는 그들의 망각에 대해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일까? - P32

혁명은 정권을 창조했고, 역사를 창조했으며, 현실을 창조하고 ‘기억도 창조했다‘. 기억하고 기억되는 것, 자연적인 기억상실과 억압에 의한 망각이 국가적인 ‘망각과 기억‘의 범주에서 혁명적 선택과 수단이 되어 질서정연하게 점진적으로 추진되고 실행되었다. (중략) 오늘날까지 살아 있는 중국의 노인들이 두 눈 똑바로 뜨고 목격했던 군벌의 혼전과 중일전쟁, 당파와 군대, 지사들과 내홍, 유혈과 희생이 전부 선택적으로 기억되거나 망각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기억상실과 관련된 행위들이 국가적인 정책과 전략이 되고, 나중에는 한 사람의 광기와 열정에 의해 민족 전체가 물 끓듯이 끓어올랐던 혁명과 건설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었다. - P35

용솟음치는 뜨거운 피를 주체하지 못해 현장에 참여했던 당시의 젊은이들도 지금은 인생에 성공하거나 실패한 중년이 되어 그때의 일을 ‘어리석음‘이라는 한 단어로 요약하고 있다. 자신의 행위에 대한 자조와 기억상실에 대한 만족이 이미 개인의 운명과 집단의 기억, 민족의 역사에서 가장 처절하고 치열했던 고통의 상처를 단절시키거나 덮어버린 것이다. - P37

기억상실은 모든 사람의 병증과 의지의 특징이 아니라 국가 관리의 책략과 사회 제도가 야기한 일종의 필연이었다. 가장 효과적인 경로는 이데올로기에서 금언의 정책을 실행하는 것이었다. 권력의 통제를 통해 역사책과 교과서, 문학과 모든 유형의 예술의 표현 및 공연 등 기억의 연속을 가능하게 하는 모든 통로를 단절시키는 것이다. - P38

우리는 이따금 "침묵은 일종의 소리 없는 반항이다"라면서 침묵에 대해 고상한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하지만 침묵은 어디까지나 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고 행동하지 않는 것이다. 아주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으면 정말로 벙어리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침묵이 오래 지속되면 묵인이나 인정이 혈루에 스며들어 습관이 되기 쉽고, 이것이 기억상실이라는 국가의 악랄한 조치의 조력자가 될 수 있으며, 강제로 기억을 상실하게 만드는 사람들의 동조자나 지지자가 될 수 있다. - P39

집중된 권력이 이데올로기에서 역사와 현실에 대한 강제적 기억상실의 방법을 사용하는 것도 집중된 권력이 집중된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취하는 필수적인 조치다. 하지만 오늘날 중국에서는 문제를 그렇게 두루뭉술하고 간단하게 국가와 권력의 문제로 귀납시킬 수 없다. 그 강제적 기억상실 과정에서 자발적으로 일정한 역할을 한 지식인들에게 물어야 한다. 그들이 자발적으로 점차 기억을 상실하여 최종적으로 권력이 요구하는 완전한 망각에 도달하기를 원했던 것인지 따져 물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중국 지식인들의 다른 국가나 민족, 역사와 가장 큰 차이점이다. - P40

오늘의 중국은 하나의 창문(경제)만이 세계를 향해 열려 있고, 또 다른 문(정치)은 사회와 인민에 대한 권력의 통제라는 필요성 때문에 봉쇄되어 있거나 최대한 봉쇄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다. 기억이나 망각과 관련된 중국식 국가 기억상실의 독특성이 바로 이처럼 반쯤 닫혀 있고 반쯤 열려 있는 교묘함 속에 있는 것이다. - P41

기억상실에 대한 자발적인 태도에는 지자들의 집단적인 타협이 존재한다. 집단적으로 기억을 방치한 뒤에 서로를 이해하고 이심전심으로 보살피는 것이다. 오늘날 이미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이 생겼고 내일은 봄날의 좀더 맑은 바람을 쟁취하기 위한 불필요한 희생을 할 필요가 없으니, 기억할 것만 기억하고 잊어야 할 것은 잊어주자는 것이다. 말믈 잘 듣는 아이가 그 군말 없이 말을 잘 들음으로 인해 버 큰 총애와 은전을 누리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 P42

오늘날 중국에서 돈은 그어떤 것보다 더 강대한 힘을 지니고 있어, 두 입술을 굳게 다물 수 있게 하고 잉크를 마르게 할 수도 있다. 문학적 상상의 날개가 돈의힘을 빌리면 진실과 양심의 반대 방향으로 날아갈 수도 있다. 그러면 다음에는 예술과 예술가의 이름으로 당당하게 역사의 망각 속에서의 허구와 현실의 가상이 아주 튼튼하고 화려하게 건설되는 것이다. 이렇게 진상은 묻히고 양심은 단절되며 언어는 돈과 권력에 윤간당하고 만다. 그리고 권력에 의해 텅 비워진 시간이 하루 또 하루, 한 해 또 한 해 반복되면서 국가적인 기억상실의 완성을 돕고모든 개인의 습관적 기억상실과 회의에 대한 회의를 양성하고 배양하게 된다. 회의자들은 반드시 징벌을 받게 되고 기꺼이 허위를 만들어내고 허위를 믿는 사람들, 어둠 아래에 원래 눈부신 빛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하지 않는 사람들이 모든 상과 격려를 독차지하게 된다. - P42

국가적 기억상실의 전략에서 강제성은 전 세계 공통의 특성이자 서로 상통하는 전략이지만 타협과 장려는 오늘날의 중국에만 있는 독특한 특징이다. - P44

중국인들이 기억상실 과정에서 가장 먼저 잃는 것은 역사 속에서의 민족의 기억이다. 그런 다음 현실 속에서의 모든 사실과 진상을 잃는다. 그리고 세 번째 단계로 기억을 갖는 모든 중국인이 「기억상실의 시대」에 등장하는 ‘나‘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일생에 대한 기억, 애인에 대한 기억, 애증과 은원에 대한 기억, 즐거움과 고통에 대한 기억을 잃게 된다. 대뇌에서 기억이 차지하는 영역이 아주 깨끗한 백지로 변해 사회와 권력, 타인들이 자기 필요에 따라 역사가 어떤 것이고, 사회는.또 어떤 모습이며 나와 나의 과거, 세밀한 모습이 어떤 상태인지 말해주기를 기다리게 된다. - P47

기억이 작품의 우수성을 가늠하는 유일한 표준은 아니지만, 한국가나 당파, 민족의 진정한 성숙도를 평가하는 대단히 유효한 척도임에는 틀림없다. 따라서 나는 작가들이 항상 아이처럼 순진한 꿈을 갖고 과거 중국의 원로 작가 바진 선생이 가졌던 기억의 꿈을 이어가기를 바란다. 다름 아니라 중국에 ‘문혁기념관‘을 건립하는 꿈이다. -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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