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리학이 주류 이데올로기를 지배한 이래로 ‘모든 악에서 음란함이 으뜸‘이라는 비이성적인 관념이 점차 사람들 마음에 스며들어 ‘성을 이야기하면 얼굴색이 변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21세기가 되었는데, 우리는 아직도 이러한 소재를 언급할 수 없다. - P310

한 독일 기자는 이렇게 썼다. "서방과 달리 중국에서 정부를 두는 것은 높은 지위를 드러내는 상징이다." "중국 남성에게 정부가 있는지를 묻는 것은 그에게 무례하게 구는 것이 아니라 아첨하는 것이다." 이러한 평론을 본 뒤 내가 중국인이라는 사실에 얼굴이 붉어졌다. 우리 중국 페미니스트들은 그토록 역겨운 현상이 중국에서 유행하게 놔두어서는 절대 안 된다. 우리는 단호하게 그것을 비판하고, 생각 있는 사람들이 이 가증스러운 발상을 철저하게 없애야 한다. 그리고 내연녀를 둔 사람들이 자신들의 행위에 자랑스러움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부끄러움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 - P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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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재범률이 높은 것은 교도소 동료 말고는 믿고 의지할 사람이 없어서일 거라고 도네는 생각했다. -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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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개괄적으로 정리해 보자면, 서양에서는 종종 옳고 그름, 정상과 비정상, 선행과 죄악의 문제로 성과 관련된 논쟁이 전개된 반면 중국에서는 대단한지 보잘것없는지, 숭고한지 수치스러운지, 상류인지 하류인지의 문제라는 것이다. 서양 사회에서 성은 억압과 저항, 정상과 변태, 유죄와 무죄와 같은 대항 관계에 있다. 중국 사회에서 성은 그저 홀시의 대상이다. 성은 중요함과 중요하지 않음, 숭고함과 저속함, 올바른 기개와 사악한 기운 중에 후자에 속한다. 일찍이 많은 학자가 서양은 죄의식의 사회이고 중국은 수치심의 사회라고 설명했는데 아주 이치에 맞는 말이다. - P242

페르낭 브로델의 3단계 구분에서 중국인은 자연스럽게 단기지속 현상(정치적 사건)이 가장 중요하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중기지속 현상(어떤 발전적 추세)이 그다음이고, 장기지속 현상(생활 방식)은 가장 중시할 가치가 없다고 여긴다. 내가 보기에 장기지속 현상에 대해 브로델이 쏟은 관심에는 역사 연구방법론적 의미뿐 아니라 인간에 대한 관심이라는 의미가 있다. 궁극적으로 말해, 정치투쟁과 경제발전은 도구에 불과하다. 인간의 행복과 즐거움이야말로 목적이다. 우리는 왜 이렇게 주객을 전도시킬까? 왜 수단을 목적으로 삼고 목적이 냉대를 받도록 하는 것일까? - P247

속담에 이르기를 같은 물건이라도 어진 사람에게는 어진 것만 보이고 지혜로운 자에게는 지혜로운 것만 보인다고 했는데 한 구절을 덧붙여야겠다. 음탕한 사람에게는 음탕한 것만 보인다. 전문 사진사가 촬영한 아름다움으로 충만한 인체 예술사진 한 장에서 보통 사람들은 아름다움을 보지만, 마음이 어두운 사람들은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고 음란한 것만 본다. 그들은 그래서 부끄럽고, 그래서 떳떳하지 못하고, 그래서 분노한다. 작품 자체가 고상하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단지 보는 사람이 고상하지 않고 심지어 마음이 음험하고 천박하고 왜곡되었으며 변태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 P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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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학인 양 나타난 이러한 유사 과학의 충동 이론을 현대 과학이 이미 부정했지만, 일반 대중 중에는 아직 믿고 있는 사람이 많다. 바로 양성의 생리학적 차이가 행위의 차이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사실 내가 보기에 정과 성의 관계에서, 양성이 지닌 행위와 관념의 차이는 근본적으로 생리적인 원인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단지 ‘여성‘과 ‘남성‘을 사회가 어떻게 형성하고 만들었는가로 설명할 수 있을 뿐이다. 좀 더 분명하게 말하면, 양성의 이러한 차이는 긴 세월에 걸친 남권 문화의 산물이고, 성별 간 이중적 도덕 기준이 만들어 낸 결과이다. - P124

어떤 사람들(검열하는 사람을 포함해서)은 자신들이 한 사람이두 사람을 사랑해서는 안 된다고 여기는 것이 아니라 한 여자가 동시에 두 남자를 사랑해서는 안 된다고만 여기고 있음을 자각하지 못한다. 첩을 받아들이는 것이 합법적이었던 구시대에 중국 남자들은 한 남자가 동시에 두 여자를 사랑하는 상황을 아주 쉽게 받아들였다. 한 남자가 동시에 두 명 심지어 세 명이나 네 명을 사랑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도덕적‘이라고 본다. 하지만 뇌리 한 귀퉁이에 이러한 ‘집단무의식‘을 모셔 놓은 중국 남자들은 여자가 동시에 두 남자를 사랑할 수 있다는 것에 상처를 받곤 한다. 마치 그 여자가 어떤 불문법을 뛰어넘어 체통에 큰 손상을 주기라도 한 듯이 말이다. - P128

내가 본 세 번째 사랑에 관한 설명은, 사랑의 감각이 완전히 착각이라는 것이다. 사람이 사랑에 빠질 때는 술에 취한 것 같아서 사랑의 대상을 크게 미화한다. 사람이 연애할 때 사랑하는 것은 사실 자기 자신이다. 그리고 마치 사람들이 일부러 술에 취한 상태에 빠지는 것처럼 일부러 자신의 착각에 빠지는 것이다. - P148

이성애가 패권을 차지한 지난 몇 세기 동안 지나치게 강경한 연애 규칙이 만들어졌다. 이성을 사랑하지 않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지 않으면 사람들은 그 사람에게 병이 있다며 손가락질하고 병원에 가 보라고 윽박질렀다. -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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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기질 문제에서 정확한 관점은 소위 여성 기질이라는 것은 결코 천성적이지 않고 장기적인 사회적 실천이 구축한 결과라는 시각이다. 다시 말해, 전통사회에서 여성의 온유하고 완곡하며 의존적인 점과 현대사회에서 여성이 강인하고 억세며 자신의 능력을 펼치려는 것은 사회발전의 산물이지 결코 자연의 섭리를 위반한 것이 아니다. 또 회귀할 수 있는 기준이 되는 여성 기질의 틀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다. 본질적으로 우리는 어떤 여성이 ‘더욱 여성스러운지‘ 알지 못한다. 또 어떤 남성이 ‘더욱 남성스러운지‘도 알지 못한다. 인간, 먼저 인간이고 그다음에 남성이거나 여성이다. 여성은 아이를 낳는 능력 말고는 남성과 근본적으로 차이가 전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정말이지 여성의 ‘남성화‘나 혹은 남성의 ‘여성화‘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 P78

취업난을 해결하기 위해서든, 아니면 다른 원인 때문이든 누군가를 집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면 일부 사람들(성별 구분 없이)이집으로 돌아가도록 호소해야지, 일방적으로 여성이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호소할 수는 절대로 없다. 왜냐하면 헌법에서 공민은 일할 권리가 있다고 했고, 여성은 공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성에게는 일할 권리가 있다. 일부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면 그것 역시 그들의 권리이다. 사실 이미 많은 사람이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선택했다. 하지만 우리는 절대 일방적으로 특정 성별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소리쳐서는 안 된다. 그것은 성차별이다. -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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