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과 멀지 않은 아파트숲을 지나 산길로 접어들면 절이 하나 있다. 도심에 이리 큰 절이라니.. 도저히 보통 절이라고 느낄 수 없는 웅장함으로 무장한 채. 그 절에서 내건 펼침막 하나가 횡단보도 옆에 걸려 있다. 수험생을 위한 특별 법회 안내. (법회 맞나요? 아무튼 기독교로 치면 기도회..) 그 펼침막을 보면서 생각에 잠긴다.

해마다 수능시즌이 되면 각 교회니 사찰을 찾아가서 기도나 불공을 드리는 어머니들이 전국에 수없이 많다. 내가 고3때도 우리 어머니와 할머니로 기도 많이 하셨다. 물론 그 기도는 평생 이어진다. 자식 잘되게 해달라고. 고백하건데, 나도 그 시절 이후로 그렇게 성당에 잘 나간 적이 없었다.

한번은 TV 뉴스를 보는데 '수험생 합격을 위한 공동 기도회'라는 타이틀을 내세운 한 교회의 기도회 화면이 나왔다. 합격이라.... 합격을 위한 기도회에는 어떻게 진행될까? "여기 모인 수험생 어머님 여러분... 우리 다 같이 기도합시다. 지금껏 10몇년 동안 이 날을 위해서 고생한 우리 불쌍한 자녀들이 반드시 수능 좋은 성적 받고 좋은 대학에 합격하길 빕니다. 아멘..."

종교도 역시 신도들의 이해와 요구 속에서 자라난다. 대학 합격을 위한 기도회도 우리 나라에서만 있는 독특한 종교문화는 아닐까? 신도들이 요구했을까, 아니면 신도들의 요구를 간파했을까? 이런 기도회는 날로 번창한다.

그런데, 몇년 전 한 수녀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합격을 바라는 기도는 잘된 기도가 아니다. 나의 합격은 다른 말로는 남의 불합격을 낳는다. 내가 잘 되기 위해 남이 떨어지길 바래야 하는 기도는 하느님께서 들어주시지 않는다. 기도는 이래야 한다. 내가 이번 시험을 맞이하여 최선을 다하게 해주십시오. 아는 문제를 놓치지 않게 저에게 침착함을 주시옵소서... 제가 노력한만큼 성과가 나올 수 있도록 축복해 주십시오... 라고.."

그렇다. 기도는 상대평가가 아니다. 절대평가다. 결과적으로 남을 떨어뜨리기를 간절히 바라는 기도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것은 종교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다. 아무리 우리 나라 종교의 특징이 기복신앙이라지만, 이건 심하다 싶을 때가 많다.

기독교인이 이렇게 많은데, 세상은 왜 이리 살기가 팍팍해지는 것일까? 제대로 기도하자. 날 위해 기도하더라도 나만을 위해 기도하지는 말자. 내가 최선을 다해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기도하자. 그게 올바로 된 기도다. 감히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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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두기 2005-04-27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림님, 잘 읽었어요. 알려주신 덕분에....그 덕분에 다른 글도 쭈욱 읽으면서 여기까지 내려왔네요. 서림님의 글엔 울림이 많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