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금 전에 직장인들 12명이 맞은편 테이블에서 커피를 마시고 갔는데 30분 앉아있는 동안 주식 이야기와 아파트 이야기와 아파트 리모델링 이야기만 계속 하더라. 제일 직급이 높아 보이는 이가 주로 이야기를 하고 다른 이들은 모두 귀기울여 경청하는 분위기였다. 12억짜리 아파트가 20억이 되었다고 어떤 이가 진짜 신나서 이야기를 했다. 그래, 내가 그 입장이라고 해도 신이 나서 이야기를 하긴 할 거 같다. (할까? 하지 않을 거 같다. 4억짜리 전세에서 살든 40억짜리 아파트에서 살든 그런 걸로 누군가와 이야기를 할 일은 없을듯 싶다. 이런 나의 비경제적인 태도가 얼마나 쓸모없는 건지 내 동생들은 자주 이야기를 하곤 하지만 내가 4억짜리 살든 40억짜리에서 살든 그걸 누군가와 왜 공유를 할까? 그게 좀 이상하게 느껴진다, 가족이 아닌 이상 그런 테마로 사람들과 말을 주고받는다는 건 내가 이만큼 가난하고 내가 이만큼 부유하고 그런 걸 드러내는 것밖에 되지 않는데 굳이? 어째서? 왜? 그렇다고 해서 내가 돈을 싫어한다든가 혐오한다든가 이런 오해는 그닥, 돈의 편리성을 모르는 바 아니니 다만 관심이 비이성적일 정도로 한쪽으로 몰려있는 거 같아서 좋게 보이지는 않는다. 자존감을 경제적인 잣대로 측정한다면 그럴 수 있다고 본다, 나도 다른 식으로 자존감을 드러내니까, 돈으로 자존감을 드러내는 장면들 중 몇 가지 기억에 박혀있는데 아름다운 적 없어서 그렇게 보는 걸 수도 있다) 때마침 법정스님 에세이를 읽고 있었는데 사뭇 대조적인 분위기가 아이러니했다. 이게 인간사회로구나 라는 걸 새삼 느낌. 설암에 걸린 선배는 목까지 암이 전이되어 긴급수술을 받았다고 다른 이가 연락을 해서 알려줬다. 여름이 끝날 무렵에 함께 문병을 가기로 했다. 어린 시절 개신교도였던 선배는 무교였다가 카톨릭으로 개종했다고 한다. 같이 밤새워서 소주를 퍼마시며 줄담배를 피우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30년이 흘러버렸다. 믿겨지지 않지만. 문병을 간다 간다 하고 가지 않았다. 마주할 자신이 없다. 마주하고 무슨 이야기를 해야할지 알 수 없어서. 그래서 가겠다 하고 아직도 가지 않았다. 뼈밖에 안 남은 선배를 마주하고 무슨 말을 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아침 수련 시간은 90분이었는데 하다보니 100분으로 늘어나서 막판에는 숨조차 제대로 쉬어지지 않을 거 같았는데 편안하게 숨이 쉬어져서 조금 놀랐다. 더 이상은 몸과 마음의 구분을 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갈등의 여지가 사라졌다는 이야기다. 속이 편해지긴 했다. 어젯밤에도 수련 끝나고 돌아와 딸아이와 야심한 시각에 라면을 끓여 콜라와 함께 꿀꺽꿀꺽, 더구나 삶은 계란을 세 알이나 먹었다. 그리고 바로 뻗어버림. 다 소화되어서 놀라버림. 아침에 땀범벅이 되어 밥을 다 하고 먹고나니 기운이 쏘옥 빠져버렸다. 엄마가 감기 막바지니까 딸아이가 감기에 걸려버렸다. 학원에서 에어컨 바람이 너무 세서 오들오들 떨었다고 하더니만. 이 여름이 앞으로 우리가 맞이할 여름 중에 제일 덥지 않은 여름이래, 엄마, 라고 말했다. 찰나나마 불지옥이란 말이 떠올랐다. 법정스님의 말씀 중 인상 깊은 구절을 옮겨 적었다. 움직일 생각을 하니 아찔하구먼. 알라딘에서 빨래바구니를 8월의 사은품으로 준다고 해서 냅다 질러야겠다. 빨래바구니 고장나서 사야 했는데 안 사고 버티길 잘 했군. [원스]의 글렌 핸사드가 오토바이 사고로 사망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의 목소리를 사랑했기에 고인의 명복을 빈다. 영화관 가서 세 번씩 본 영화는 내 인생을 통틀어 두 번뿐인지라. 법정스님 말씀 중 부분,
그대의 숨을 따라가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