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의 눈에는 장개석의 국민당 정부가 일본과 다를 바 없는 억압의 주체로 보였던 것이다. 해방 조선의 좌우익 구분은 일차적으로 좌익측 입장에 달려 있었다. 안재홍의 신민주주의나 조소앙(趙素昻, 1887~1958)의 삼균주의는 좌익에서 좌익으로 받아들이면 좌익이 되고 우익으로 몰면 우익이 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좌익으로까지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중도로 인정해서 우익에 대항하는 합작대상으로 삼는 것도 통일전선 결성의 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건준과 인공을 장악하고 좌익의 대표성을 획득해 가던 박헌영 일당은 ‘민주주의‘ 진영과 ‘민족주의‘ 진영으로 좌우를 구분했다. 사회주의 원리를 승인하는 사람이라도 민족주의를 앞세우기만 하면 ‘국수(國)‘ ’파쇼‘로 몰아 적대시했던 것이다. 한편 식민지시대에 확보한 강자 입장에 집착하는 수구파는 좌파에 편입되지 않은 민족주의자들을 ‘우익‘의 간판으로 끌어들였다.
보다 정의롭고 평등한 사회를 추구하는 진보적 노력도 현실을 무시하는 오만에 빠진다면 ‘사람 사는 세상‘의 기반조건을 악화시키는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 약자 옹호라는 소박한 수준에서라도 사회주의원리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힘을 합쳐 극소수의 수구파를 배제하는 것이 당시 현실의 필요였다. 그런데 좌파 일각의 헤게모니 추구가 중도파를 우익으로 내몰거나 무력화시켰다. 비극적 역사전개의 발판인 ‘적대적 공생‘의 길이 열린 것이다. - P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