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처음 만나도 언제나 웃음을 주고받는데 그 까닭이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겠다. 덧니가 꽤 매력적인 젊은 아가씨의 나이와 이름을 묻지는 않았으나 인터뷰 준비를 하고 있는데 다가와서 몇 시인지 묻고 듣기 좋은 칭찬을 처음 보았는데도 허물없이 하는 걸 보고 젊음이라는 건 정말 좋구나 다시 느꼈다. 왜 굳이 그곳인지 물을 때 나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두려워했던 것도 같은데 중년이 채 되지 않은 그러니까 이제 곧 중년에 접어들 준비를 하는 저 여성 또한 내게 그런 말을 던졌다. 단번에 모든 걸 해결하겠다, 넘어서겠다, 해내고 말겠다, 이런 마음이 아니어도 그냥 몇 번 실패하고난 후면 그러니까 좀 느긋해지면 어느새 그 길에 다다르고 계실지도 모르겠다, 라는 조언을 하는데 이 부분에서 살짝 감동을 먹었던 것도 같다. 떨리는 마음에 준비해간 것들의 절반의 절반도 채 다 말하지 못하고 머뭇거렸지만 원하는 것들이 명확하게 보인다는 건 확실히 좋구나 아침에 완독한 스피노자 만화책 속 장면들 떠오르면서. 여기에서 말하는 우리는 그냥 낯선 외국어를 조금씩 배워가는 어떤 그룹을 뜻한다. 15년 되었는데도 아직도 때때로 어려워요, 그래서 한국어도 아니고 불어도 아닌 이상한 발음이 새어나올 때도 있어요, 라고 했다. 초등학교 2학년에 불어를 시작해서 중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더듬거리면서 아이들이랑 대화했어요, 저는, 언니는 가셔서 금방 하실 거 같아요, 밝은 분이라서, 라고 덧니 아가씨가 말했다. 요즘 MZ 특징들인가 싶었다. 터닝 포인트를 지나고나니 표정이 밝아지고 따라서 낯선 이들과도 스스럼 없이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어떤 기대나 희망이나 줄다리기 같은 게 필요하다 싶은 타이밍은 정말로 적구나 라는 걸 이 나이때쯤에는 저절로 알게 되는 거 같다. 동시에 들어갔고 동시에 나오면서 서로 헤어지면서 우리 인연이면 파리에서 만나겠다, 그때 커피 마셔요, 했다. 덧니 아가씨는 환하게 웃으며 좋아요 언니, 했다.





우리는 역사를 재구성할 때마다 등장하는 빈틈과 대결해야 하는데, 때로는 새롭게 관찰되고 이야기되는 역사에서 팩트와 빈틈은 계속 새롭게 조명된다. 이 점은 한나 아렌트의 에세이 「리틀록 사건을 돌아보며」와 관련한 논쟁에도 해당되는 듯하다. 아렌트의 전기 작가 엘리자베스 영-브륄(Elisabeth Young-Bruehl)이 적절히 표현했듯이 그 에세이는 가늠할 수 없는 감정과 청산하지 못한 과거의 물결을 거슬러 헤엄쳐 간다. 아렌트가 북부에서는 보통 멸시받는 생각을 지닌 남부 백인에게 제한적이더라도 사회적 배타성에 대한 권리를 인정했다는 사실은 정의에 대한 많은 친구들의 표상을 훼손시켰다. 그럼 그 논쟁에서는 무엇이 문제였을까?
월간지 『코멘터리(Commentary)』의 편집부는 한나 아렌트에게 리틀록 사건에 대한 원고를 청탁했다. 그러나 시간에 쫓겨 쓴 원고가 도착했는데도, 편집부는 출간을 머뭇거렸다. 아렌트의 성찰이 이 잡지를 발간하는 미국유대인위원회(American Jewish Committee, AJC)의 정책에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러 유대 - P61

인 단체는 과거에 흑인 인권 운동 단체를 적극 지지했고, 20세기 초에는 흑인 대표 단체인 전미유색인종지위향상협회(National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Colored People, NAACP)의 설립도 도운 바 있다. 남부의유대인 변호사들만이 권리를 찾기 위해 필사적인 흑인들을 대변한 것은 아니었다. 변호사들 중 일부는 아주소신 있는 정의를 실천했다. 예를 들면, 잭 그린버그(Jack Greenberg)는 앞서 언급한 1954년 "브라운 대교육위원회" 재판에 참여한 27세의 최연소 변호사로서 흑인의 권리를 위해 법정에서 여러 번 싸웠고, 인종 차별이 만연한 남부로 출장을 가서, 흑인 호텔에 투숙했으며, 흑인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다. 그렇다면 ‘흑인전용‘의 최종 결정권자는 누구였는가?
아렌트의 「리틀록 사건을 돌아보며」의 배경으로 돌아가 보자. 흑인 교육 기관의 터무니없는 상황과 백인의 교육 특권을 고려해 보면, 남부 주의 학교에서 합법적인 인종 차별을 종식하는 일은 많은 사람에게 마음의 문제를 넘어서는 일이었다. 랠프 엘리슨도 1954년 통합이라는 법적인 강제가 연방대법원에 의해 결 - P62

정되었을 때 크게 환호했다. "이제 우리 아이들에게 참으로 기적 같은 가능성의 세계가 열리고 있구나!" 마침내 진정한 남북전쟁의 승리에 도달했고, 이제 이 승리의 성공 여부는 결국 전적으로 아이들이 무엇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러나 아렌트가 어디에서도 그런 큰 희망은 일절 언급하지 않으면서 반대로 남부 백인부모의 (겉으로 중요하지 않아 보이는) 개별 "권리"를 옹호한 사실은 교육과 통합에 희망을 건 모든 이를 격분시켰다. ‘학교의 인종 차별 철폐는 정치적 과제가 아닌 사회적 과제‘라는 아렌트의 주장은 광범위하고 완전한 몰이해에 직면했다. 이는 당시에도 그랬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하다. 여기서 거의 이해되지 않은 것은, 한나 아렌트는 결코 당시의 상황을 유지하자고 말하지 않았으며 편견에 기반한 불공정한 사회는 공동체의 결정을 통해서만 구제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학교 위원회의 공동 결정을 거친 후에 모든 인종에게 교문을 개방하거나, 혼합된 학교를 만들려는 목표로 시작된 사회 운동으로부터 공동체의 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런 시도는 거의 실현되지 않았다. - P63

아렌트의 비평가 중 데이비드 스피츠(David Spitz)는 당시 아렌트가 말한 정치, 사회, 개인의 구분이 매력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실제로 이 영역들 중 한 가지에만 해당하는 인간 행위는 없다고 주장했다. 아렌트의 에세이가, 흑인을 배제하는 폭행과 법원 판결이사람들의 영혼에 일깨운 희망에 대해 말을 아낀 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또 소외계층이 계속해서 부당한 일을 겪지 않도록 하기 위해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고 또 일어나야 하는지에 대해거의 언급하지 않은 것도 마찬가지다. - P64


댓글(13)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공쟝쟝 2025-02-18 23: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념의 스피노자~ 또 어려운 책 읽는 울언니!

수이 2025-02-19 07:33   좋아요 1 | URL
만화책입니다, 안 어렵습니다, 정신없이 바쁜 나날들 보내고 계십니까? (밥 잘 챙기삼)

단발머리 2025-02-19 08:48   좋아요 2 | URL
네, 언니! 아침은 요플레, 점심은 순대국, 저녁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녁은?

수이 2025-02-19 09:03   좋아요 1 | URL
그릭요거트에 견과류, 블루베리나 딸기 필수 😋

단발머리 2025-02-19 09:44   좋아요 2 | URL
🍦🥜🫐🍓🤪

수이 2025-02-19 09:45   좋아요 2 | URL
저속노화의 지름길 ㅋㅋㅋㅋ 마라탕 땡기네, 오늘도 춥습니다! 목도리 챙겨!!

단발머리 2025-02-19 09:54   좋아요 2 | URL
털목도리에요 ㅋㅋㅋㅋ 괜찮을까요? 빨리 답해 주세요! 챙겨야함 🧣

수이 2025-02-19 10:03   좋아요 2 | URL
좋습니다 ㅋㅋ

단발머리 2025-02-19 10:12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플러스 🧤플러스 ♨️

공쟝쟝 2025-02-19 17: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녁은 커피에 조각 케잌먹는 쟝쟝입니다

수이 2025-02-19 17:47   좋아요 2 | URL
와인도 한잔 하십쇼, 운동 다 했으면, 일 다 했으면

단발머리 2025-02-20 07:45   좋아요 1 | URL
위 댓글을 정희원 교수님이 싫어합니다. 메 롱 !!

수이 2025-02-20 08:44   좋아요 1 | URL
난 정희원 안 좋아하는데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