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월의 시작이다. 시작은 상콤하게 새로 산 책으로 시작을 하고 싶었으나 머리가 돌아가지 않아 읽던 책을 다시 펼쳤다. 삶은 계란 다 먹고도 배가 고파 호두 가득 들어간 단팥빵을 조금씩 뜯어먹는다. 요거트 만들어야 하는데 아직도 정리할 게 태산인지라 장을 보지 못했다. 오늘은 하여 장 보는 날. 냉장고를 열면 단백질 관련 음료와 계란만 두 판이니 냉장고가 과연 냉장고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건지. 그렇다고 내 새끼를 굶기는 건 아님.
어제는 잠들기 전에 생각 하나에 사로잡혀 그 일에 대해 생각을 조금 하다가 결론을 맺을까 하다가 결론을 확 맺지는 못하고 일단 잤다. 일어나니 다시 그 생각에 사로잡히긴 했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다 싶어 책을 펼친 건. 계란을 삶으면서.
좋아하는 선생님 보러 잠깐 요가원에 갔다가 간만에 특훈 받고 이사하고 필러 맞느라 못 나왔다는 이야기를 하니 다시 시작하면 된다 했지만 비틀기 행하고 90분 몸 이리저리 비틀고 쥐어짜고 펼쳐내고 하면서 알았다. 이 고통을 내 몸이 원했구나 라는 걸. 쇠질하는 곳에서 행하는 할머니들, 아줌마들 한그득한 말랑말랑 요가와는 다른 고통. 고요 속에서 차원이 다른 고통을 억지로 몸 안에 불러들이다보면 온몸의 내장이 펄떡펄떡거리는 게 느껴진다. 환희에 차서. 오르가즘에 비할 바 아니나 몸 이곳과 저곳에서 동시에 행해지는 기쁨이 세포를 달군다는 것. 무리하고 싶었으나 무리하면 큰일난다 라는 자각이 일었고 순간 기우뚱 해서 탁 무너져 엎어졌는데 이건 요가 바로 전에 급하게 아이스라떼와 담배를 요가원 앞에서 흡입했기 때문이라는 걸 알았고 운동 전에는 흡연은 불가다 하고 정했다. 오래 운동을 쉬었다가 쇠질 조금 하고 요가 조금 했다고 아침에 일어날 때는 근육통이 사지에 한그득이어서 안되겠다 뜨끈한 물에 몸 담궈야겠구나 싶은.
훈이가 눈은 괜찮냐 물었을 때 내 두 눈은 지극히 멀쩡하기만 한데 갑자기 왜 눈을 물어볼까 싶어서 응, 괜찮은데, 했더니 훈이가 웃으며 말했다. 책을 안 읽으니 괜찮은 거 아니냐 하고. 책 조금만 읽어도 눈물 주룩주룩 난다고 했잖아. 그 말을 듣고난 후에야 깨달았다. 책을 진짜 안 읽었구나 올해. 한 시간 이상만 읽어도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 아 글렀다 이제 내 두 눈은, 노화의 극치에 다다르는구나 깨닫고 절망했는데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온 게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으니 그러하다, 이제 읽는 인간이라고 말하기 참 창피하구먼 싶은.
민이 오랜만에 늦잠 자는 날이다. 30분 정도 남았으니 30분이라도 간만에 책을 읽어보겠다. 켁. 사진은 모두 어제 기록. 교보에서 입 벌리고 주무시는 따님을 발견하고 사진 한컷 남기고 손에 들고 있는 건 뭐냐 물어보니 그냥 자고 있으면 민망하니 책 읽다 피곤한 중딩 컨셉이다 라는 대답을 듣고 웃겨서 쿡, 아침점심저녁 한끼로 해결해서 폭식, 샴페인 과하게 마셔서 순간 핑 돌아서 아이구마 했다가 커피 마시고 술 깼다. 요가원 냐옹이 오랜만에 만났더니 엄청 성장했고 나의 요가 실력은 하락했다. 요가원 가는 길에 맛난 샌드위치집 발견해서 사진 찍다가 한켠에 거울 커다란 거 있어서 거기서 셀피 찍고 나의 뚱뚱하고 건강하고 튼튼한 하체를 새삼 실감했다. 나 몰래 언제 모자 샀냐 파스타 흡입하면서 민이가 닦달하는데 그냥 씨익 웃고말았다. 내 아가가 나를 위해 철필로 긁어 새긴 조명을 또 선물받고 아이의 꿈과 내 꿈이 중첩되어있음을 또 알았다. 더 여자가 되어버린 내 새끼 몸매에 감탄하면서 이 에미에게 감사하거라, 훌륭한 유전자를 물려받았으니 말하니 내 브레인은 아빠 브레인인데, 해서 허허허허허허허 너털웃음 짓고 괜찮다, 니 애비 아이큐가 이 에미보다 더 훌륭한 건 인정한다. 안되겠다 남자새끼들이 가만히 두지 않을 터이니 너는 이 에미랑 찰싹 달라붙어서 도서관이랑 장만 보러 다니자꾸나 딸아 했더니 막 웃는데 천하의 딸바보가 또 여기 있구만 하고 알았다. 친구들 잔뜩 사귀고 남자친구 생기면 나랑 놀 시간은 뭐 거의 없겠구먼 싶어서 그럼 또 운동 하나를 새로 시작해야지 라는 생각을 하고 있더라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