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아이히만은 "그 어느 것도 타인의 입장에서 바라볼 수" 없었고 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김선욱 옮김, 한길사, 2006, 104쪽.,"상황에 연루된 타인의 시점이 어떤지, 혹은 어떨 것 같은지, 스스로 파악할 능력이 그냥 아예 부재"했다. 데보라 넬슨, [터프 이너프], 김선형 옮김, 책세상, 2019, 147쪽. 그는 어이없을 정도로 천박했고, 자기 안에 현실을 막는 벽을 세우고 오랫동안 타자와 접촉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복수성의 상실, 다시 말해 타자와 타자의 관점의 상실은 사유를 불가능하게 할 수 있다. (38)
사유가 더 깊어지려면 또 다른 관점도 고려할 수 있어야 할 테니, 그러한 접촉을 멈추지 않는 데서 깊이의 가능성이 생길 것이다. '자신과의 대화'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정치와 마찬가지로 연습이 필요한 활동이다. (39)
각자가 지니고 있는 투시경의 차이에 기인한 걸까, 단락 읽다가 문득. 선을 그어놓고 나를 안에도 세워놓고 밖에도 세워놓았다. 그리고 몇몇 이들 이름도 선의 안쪽과 바깥에 적어놓고 헤아려보았다. 맛없는 커피를 조금씩 입 안으로 털어 넣으면서 할 일을 조금 하고 책을 펼쳤다. 내가 들 때는 호피무늬 에코백이 멋져 보였는데 다른 이들이 든 호피무늬 에코백을 마주하니 내 호피무늬 에코백도 심드렁하게 다가왔다. 변덕을 또 부리려고 하는건가. 마음의 조절이 호흡에 맞춰 진행이 된다면 좋겠지만 인간사는 그렇게 순조롭게 흐르지 않는 거고. 단순하게 할 수 있는 일만 하면서 사는 게 이토록 버거운 일인가요? 라고 소설 속 전혜린은 자문했다. 아무래도 루만을 읽다 보니까 시스템과 환경에서 환경을 아우르던 그녀의 인물들이 겹쳐졌고 그 어느 곳이라도 좋으니 도망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여겼던 소설 속 전혜린을 다시. 아무래도 이 소설 속 전혜린은 그 전혜린이 아니고 작가의 모습이 너무 투영된 거 같아 입 속이 서걱거렸다. 겨우 이 정도라고? 라는 의문이 누구에게 향하는지는 묻지 않았다. 양창아의 문장을 마저 읽고 아르바이트를 하러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