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모리슨의 [가장 파란 눈]을 아껴가며 읽는다. 취약성들이 마치 여름날 끝없이 울어대다 사라지는 매미들 날개처럼 뻗어있다. 연약해서 차마 만질 수조차 없다. 손을 대는 순간 바스라질 거 같아서. 며칠 전 딸아이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길을 걷다가 죽어 움직이지 않는 매미 한 마리를 마주했다. 아이가 손가락을 뻗어 가리켰고 보는 순간 그 연약한 매미 날개가 눈에 닿아 질끈 눈을 감아버렸다. 나는 이런 거에 약하다. 등산을 하다가 들개인가 들고양이에게 마구 물어뜯겨 내장이 다 보이는 까마귀를 마주해도 무덤덤하건만. 더한 취약성, 그 더 깊고 그 더 보잘것없는 취약성들에는 더 무심하기가 힘들어진다. 엘렌 식수와 마르크스 입문서와 토니 모리슨을 읽다보면 이번주도 금방 날아갈 것이다. 이 할미가 퇴원하면 엘에이 갈비 맛있게 해줄게, 아가, 라고 엄마가 민에게 말했다. 단골정육점에서 문자가 날아왔는데 갈비가 평상시보다 좀 더 싼 거야, 그래서 20근 시킬까 하다가 10근만 시켰지, 라고 자랑스레 이야기하는 엄마에게 아니 무슨 갈비를 열 근이나 시켜, 소리를 빽 질렀더니 내 새끼도 멕이고 내 새끼 새끼도 멕이고 또 다른 내 새끼들도 멕여야 하고 그 새끼 새끼들도 멕이려면 열 근은 금방이야, 너무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노친네에게 할 말을 잃었다.
페미니즘 이야기를 좀 나누다가 정신분석학 이야기 나왔고 겹쳐지는 지점들 사이에서 신경과학 관련서를 너무 많이 읽고난 후인지 이제는 정신분석학은 좀 사이비처럼 느껴져, 차라리 철학책을 읽는 편이 더 낫더라고. 프로이트랑 라깡은 얼추 읽고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거지? 물었고 왜 이래, 프로이트, 라깡 다 읽고 정신분석도 받아보려고 진지하게 분석가들도 서칭했다고, 라는 소리를 듣고난 후에 사이비 같다고 해도 내게 와닿는 것들이 있어, 내 마음을 쓰다듬어주고 그러니 나는 좀 더 읽어볼래, 더 읽고난 후에 사이비 같네, 라는 소리를 해도 할래, 했더니 다치바나 다카시가 그런 소리를 했어, 정신분석학은 좀 어처구니 없는 면모도 없지 않지만 역시 소설보다 압도적으로 흥미롭죠, 라고. 조금 더 나아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면 어떻게 하지, 혼잣말처럼 물었더니 조금 더 나아가보면 되는 거잖아, 걸림돌들이 전혀 없는 판국인데, 라는 대꾸에 그렇지, 걸림돌들이 이제는 내 앞에 전혀 없지. 어제는 천둥 소리들을 계속 들었다. 중간중간. 빗방울들이 방울방울 떨어졌고. 아 맞다, 당신 꿈을 꿨어. 내가 공주처럼 화려하게 한복을 입고 등장했나? 물어보니 아니, 가난하고 비참하게 있었어. 그래서 가서 내가 안아줬어. 아하, 하고. 네 무의식이 나를 그렇게 보는 거겠지. 그 사이에 네 욕망이 깃들어있는 거고. 물론 그런 말을 입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빔 벤더스 감독과 막스 프리슈 이야기를 좀 더 나누었다.
엄마는 어제 시킨 아이스커피를 맛없어 했다. 맛없어, 마셔봐, 하고 마셔봤더니 엄마가 마시던 그 맛 그대로인데 왜? 했더니 맛없어, 해서 핫초코 내꺼 마셔, 하고 줬더니 한 모금 마시더니 맛있어! 감탄사를 내뱉어서 바꿔 마셔, 했더니 너는 아이스 마시기 싫다고 뜨거운 거 시켰잖아, 그냥 난 내꺼 마실게, 해서 그냥 내꺼 마셔, 하고 바꿔줬더니 나도 그냥 네 말대로 핫초코 마실걸, 해서 노친네, 변덕이 완전 죽 끓듯 해, 말하고나니 그런가 그런가 머리를 살랑살랑 흔들어댔다. 애교떨지 마, 할머니, 라고 했더니 이건 할머니의 특권이야, 하면서 계속 귀여운 척 굴더니 근데 딸아, 네가 아름다운 건 역시 나를 닮아서인 거 같아, 네 애비보다, 라고 뜬금포 이야기를 해서 내가 아빠 입술을 물려받았다면 장난 아니었을 텐데, 했더니 왜 네 입술이 어때서?! 버럭 하는 엄마를 보며 내 입술은 엄마 입술이지, 말하고나니 괜찮아, 다 예뻐, 우리 큰딸은. 나이를 먹을수록 더 아름다워지렴, 하고 둘이서 병원 스벅에서 체조를 했다는. 호흡 해야지, 호흡하지 않고 운동하면 그게 무슨 운동이야, 그냥 팔다리 흔드는 거지, 소리를 빽 질렀더니 호흡하며 움직이고 3분 지났나, 오, 연아, 등에서 땀이 난다! 라고 나지막하게 외치는 엄마가 귀여워서 나도 몰래 푸후후 웃고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