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 주체적‘이라는 말에는 몸이 배제되어 있다. 누군가가 상호 주체성에 몸이 전제되어 있다고 말하더라도 상호 주체성이 ‘상호몸성‘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그것은 ‘몸‘의 문제를 더 이상 거론하지 않겠다는 의미일 수 있다. ‘상호몸성(intercoporeality)‘은 몸의 주체적 역량을 회복하는 데 필요한 과정이다. 데카르트의 생각하는 ‘나‘는 ‘몸‘이라는 물질에 갇힌 자유 잃은 영혼이다. 따라서 자유를 얻기 위한 영혼은 몸의 한계를 벗어나야만 한다. 하지만 영혼이 어떻게 자신을 구속하는 몸을 넘어 다른 몸속의 영혼과 만날 수 있을까? 데카르트가 만든 이원론적 세계에서 영혼과 영혼들의 만남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 문제를 다르게 사유해 볼 수 있다. ‘어떻게 나의 영혼과 너의 영혼이 구별될 수 있는가?‘
몸 없이 영혼을 말할 수는 없다. 영혼은 어떻게 존재하는가? 영혼은 우리의 상상이 만들어 낸 관념이다. 그러니 실재적이고 현실적인 것, ‘몸‘에서 시작하자. ˝몸 없는 영혼은 없다.˝ 이 말은 영혼과 더불어 몸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인간을 몸과 영혼으로 분리할 수 없다는 말이다. 여기서 사례는 인간이지만, 메를로퐁티에게 몸은 인간 몸을 넘어 모든 존재의 몸으로 확장될 여지가 있다. (3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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