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루티 글을 읽으면서 영어공부를 좀 하고 싶어서 마리 루티가 쓴 라캉 찾다가 우연히 작년 여름에 마리 루티가 예순의 나이에 암으로 오래 고생을 하다가 영면하였다는 걸 알게 됐다. 겨우 나보다 몇 살 많은 언니고 한창 쓸 시기니까 학교에서 교수직을 은퇴할 무렵이면 더 활발하게 글을 쓰게 되지 않을까 싶어 은근 기대하고 있었다. 라캉 관련서로 40만원 정도 지출을 하고나니 정신을 차려야지 싶어 마리 루티 언니가 쓴 라캉 관련서를 끝으로 이제 갖고 있는 거 위주로 읽되 한 권씩 천천히_라고 했다가 마리 루티의 죽음을 알고난 후 문득_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겨우 읽고 쓰고 사랑하고_ 이게 전부일 텐데 그래도 무관한가 물어보니 그래서 더 좋아_라는 대답을 듣고난 후 읽고 쓰고 사랑하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라면 그렇게 태어나 그렇게 살아가도 괜찮다면 그렇게 살아볼래 대답하고난 후 파도처럼 밀려드는 것들. 그러니 나도 언젠가는 필멸한다는. 내 시간도 언니 시간처럼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영면하소서, 기껏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당신을 읽고 당신을 메모하고 생각하며 다시 당신을 읽는 게 전부이지만 그리 해드리리, 라고 나 혼자 마음 속으로 말했다. 당신의 문장이 나를 살리기도 했으니 당신을 읽음으로써 당신을 다시 살게 하고 싶다는 마음.




“오랫동안 순응적으로 잘 살아오다가 갑자기 그렇게 사는 것이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마리 루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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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4-01-13 19: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맙소사... 뭐라고요? 언니 ㅜㅜ .... 아... 안돼 ㅜㅜㅜㅜㅜ 말도안돼.... 어떡해요 ㅜㅜㅜ 너무 가슴 아파요....루티 책이 작년의 제 원픽이었는 데... 제게 루티는 정희진 선생님 다음으로 좋아하는 대중을 위해 글을 써주는 멋진 여성 학자 였는데...ㅠㅠㅠㅜㅜ 너무 아깝다...

수이 2024-01-13 20:31   좋아요 3 | URL
마리 루티의 책을 읽으면서 많은 것들을 얻었죠. 가치 있는 삶_을 제외하고는 건성으로 읽었던 것도 같은데 가치 있는 삶이 탑이었음, 저도, 그의 책 중에서. 참 좋은 책인데 홍보가 덜 되어 사람들이 많이 읽지 않아 가슴 아팠는데 이렇게 언니가 저 세상에 가신 걸 알고 나니 또 그의 문장들이 얼마나 귀한지 새삼 알겠더라구요. 그래서 다시 읽어야지 합니다.

공쟝쟝 2024-01-13 19: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검색해보니.. 암이었군요... 너무 열심히 살았나부다... 글에서도 열심히 사는 사람인 게 많이 느껴졌는데.. 아, 눈물나요. 루티 글 읽으면서 정말 위로 많이 받았는 데... 내 삶도 가치있는 삶이라고 여기고 싶어졌는 데.... 감사해요. 루티.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 곳에서는 평안하시기를. 두려움 없이 사랑하시기를.

수이 2024-01-13 20:32   좋아요 2 | URL
열심히 살아도 게으르게 살아도 병은 걸립니다. 이건 뭐 제 생각이지만. 더 많은 글을 읽을 수 있으리라, 더 깊은 사유를 광대하게 펼치는 걸 보게 되리라 했는데 이렇게 가셨네요. 그리고 쟝아, 두려움 없이 사랑하는 건 여기서도 가능해. 그 말을 다시 하고 싶어지네요. 언니 마음으로 뜬금포로;; 그럼 굿밤!

공쟝쟝 2024-01-14 00:21   좋아요 1 | URL
그러고보면 루티 하버드에서 사랑학 강의 한 선생님이신데 ㅋㅋㅋㅋ 내가 뭐라고 두려움 없이 사랑을…ㅋㅋㅋ

수이 2024-01-15 07:50   좋아요 0 | URL
에헴 그러니까 여기에서 쟝님이 그런 말씀을 하신 건 말이죠_ 하버드에서 사랑학 강의하신 마리 루티 언니 이야기를 하면서_ 두려움 없이 사랑하시기를_ 이건 즉 본인에게 하고픈 말이 아닌가. 전 또 그렇게 오버해서 생각했더랬죠.

단발머리 2024-01-13 22:3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왜 오래 사실거라고. 앞으로도 마리 루티님의 책을, 신간을 계속 읽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을까. 전 한글로 번역된 책(4권) 다 읽었는데 <남근선망과 내 안의 나쁜 감정들>이 제일 좋았어요. 두 번 읽고도 또 읽고 싶은 책인데........ 슬프네요ㅠㅠㅠ

우리도 그런 존재라는, 필멸의 존재라는 수연님 말이 마음에 콕 박혀요. 잊지 말아요, 우리.... 영원하지 않은 우리네 삶을...

수이 2024-01-15 07:54   좋아요 1 | URL
남근선망은 제가 가물가물한 걸 보니 안 읽은 거 같습니다. 단발님 페이퍼 읽으면서 마리 루티는 그 바나나 이미지와 함께 제게 탁 달라붙었다가 가치 있는 삶_을 읽고난 후 대단하다, 이 언니, 바나나 그 이상이야_ 했던 거 같아요. 이미지상으로.

83년 우정을 쌓았다는 할머니들 이야기를 봤죠. 그들이 89세라는데 그러니까 아가때부터 만나 우정을 쌓았다는 건데 내는 남편보다 내 친구가 더 좋다 아이가_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도 단발님이랑 83년 우정 쌓고 싶다 중얼거렸는데 아이고 그럼 우리가 몇 살까지 살아야 하는겨?! 나는 신은 잘 모르겠지만요, 단발님이 제 옆에 계실 때 그런 생각 자주 하죠. 신이 내게 보내신 선물. (우리 애인이 들으면 훈님이 나보다 좋은겨?! 버럭 하시겠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