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한 소재의 미스터리 소설이다. 우리가 다 아는 미니어처가 하나의 중요한 단서가 되는 소재로 사용되고 그것에 따라서 뭔가 사건이
이루어지는 이야기. 이거 먼가 심상치 않은 이야기가 전개될듯한 느낌이었는데 배경도 현대가 아니라 중세다. 네덜란드가 최고의 무역국가로
승승장구하던 암스테르담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간만에 특이한 스타일의 이야기란 느낌이 들었다.
17세기 암스테르담. 어린 신부 넬라는 여러가지 상황으로 인해서 어느 거상과 결혼을 하게 된다. 아직 꽃다운 나이인 18살...시골에서
살던 넬라는 대도시에 기대와 함께 걱정을 하면서 오게 되는데 그 대단한 집이 무엇인가 이상하다. 대저택임에도 불구하고 하인은 둘 뿐. 그것도
남자 하인은 하인이라고 부르기 애매한 위치에 있고. 그런데 무엇보다 이상한 사람은 남편의 여동생인 마린이었다. 차갑냐 하면 차가운것도 아니고
불친절하냐면 또 그것도 아니다. 하지만 왠지 불편한 느낌을 주는 그런 사람. 애매모호한 분위기의 대저택에 들어선 넬라는 그래도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현모양처가 되겠다고 결심한다.
그러나 그 누구보다 힘이 되어야할 남편은 자신이 결혼한지도 모르는건지 넬라에게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분명히 친절하고 예의를 다하지만
그렇다고 애정을 주는것도 아니다. 그저 바쁘다고 일해야한다고 그 자신의 서재에만 틀어박히거나 외부 출장을 간다. 그에 비해서 마린은 여러가지로
오빠를 대신해서 실질적으로 집안을 통제하고 있다. 어딘지 모르게 음울한 분위기였는데 남편은 결혼 선물이라고 미니어처를 선물한다.
자신의 집을 그대로 복사해서 아주 정교하고 세밀한 작은 미니어처로 만든것이다. 여기에 넬라는 광고집에서 한 미니어처리스트를 발견하고
미니어처를 의뢰한다. 그런데 배달되어 오는 미니어처는 넬라가 주문한게 아니었다. 그리고 연이어 배달되는 미니어처들...문제는 이 미니어처가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가 되긴 했는데 앞으로 일어날 어떤 것을 미리 예견을 한다는 것이다. 인물 미니어처에 묘사되어 있는 어떤 행위가 실제로 일어났다!
과연 어떻게 알고 그것을 예상했을까. 무엇보다 그 일들이 대부분 나쁜일이어서 더욱더 넬라의 신경을 쓰게 한다. 미니어처리스트는 대체 누구길래
이런 일들을!!
단조로울꺼 같은 집안은 점점 비밀스러운 일들이 일어나고 그 내막이 밝혀지면서 점점 긴장이 고조된다. 처음에는 서먹했던 집안 식구들과도 더
가까와지게 되는데 남편에게는 더 큰 비밀이 있었고 그 비밀로 말미암아 큰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과연 넬라는 집안도 지키고 남편도 지키게
될것인가.
미니어처라는 특이한 소재에 17세기 네덜란드의 모습을 잘 재현한 이번 소설은 기본적으로 미니어처와 그것을 만든 미니어처리스트의 정체를
쫓아가는 미스터리의 틀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넬라와 그녀 남편과의 로맨스도 적절히 있는 미스터리 로맨스물 같은 느낌을 준다. 무엇보다
시골에서 막 올라온 갓 18살의 수줍은 새색시가 점점 더 성장해나가는 것을 보여주는것이 좋았다.
그리고 인상적인 인물로 마린이 있다. 당시는 우리의 옛날과 마찬가지로 여자의 존재 자체가 희미하던 시절이었다. 여자는 그저 남편 수발이나
잘 들고 아이들 잘 낳고 돌보는 그런 존재. 그 자신의 주체적인 삶을 살수 없던 시절인데 이 책의 마린은 그렇지 않았다. 무역과 관련해서 자신의
오빠와 논쟁을 벌이기도 하고 자주 집을 비우는 오빠를 대신해서 실질적으로 집안을 이끌어가고 있었다.
아마 마린이 남자로 태어났다면 자기 오빠보다 더 큰 장사 수완을 발휘했을수도 있다. 시대를 잘못 타고 난 탓이리라. 물론 그런 마린도
한계가 있긴 했지만 동시대 여성들에 비해선 상당히 진보적인 성격을 갖고 있었다고 생각이 든다. 아마 평범한 주인마님이 될 생각을 갖고 있었던
넬라에게 영향을 끼쳤으리라.
책은 재미있게 잘 읽힌다. 아주 큰 반향을 불어일으킬 정도의 내용은 없지만 실체를 모르는 미니어처의 적절한 배달과 함께 벌어지는 여러가지
사건들로 인해서 적절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아주 몰입도가 뛰어난 서술이 아님에도 끝까지 읽게 하는 힘을 가진 책이었다.
다만 끝부분은 물음표를 갖게 한다. 넬라의 선택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소재였던 미니어처리스트의 존재에 대해서 별다른
기술이 없어서 용두사미격이 되버린 느낌이 든다. 혹시 후편을 생각하고 그런것인가. 아무튼 결말 부분은 마음에 안든다.
하지만 그 마음에 안드는 결말 부분이 있다고 해도 색다른 소재와 잘 보지 못한 시대적 배경이 잘 어우러져서 짜임새있는 미스터리였음은 분명한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