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조선은 선비의 나라 사대부의 나라라고 해서 문을 중시하고 무를 가볍게 여겼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럴수밖에 없는것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란 큰 전란을 겪었고 결국 왜적에 의해 나라를 잃어버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선이 무를 가볍게 여겼다고는 볼수 없는 여러가지
증거가 있다. 바로 이 책 조선의 병서다. 조선 시대 내내 병서가 간행되었다는것은 결국 무를 발전시켰다는 것이고 무에 관심이 없었으면 어찌
병서가 발간이 되었겠는가.
사실 우리나라 전체 역사를 돌아봐도 무를 중하게 여긴것은 고규려가 유일하지 싶다. 백제나 신라에 비해서 중국이라는 강대국을 접하고 있는
고구려는 늘 긴장했고 군사력을 유지시키기 위해서 노력했기에 무를 중시할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뒤를 잇는 통일신라나 고려, 조선은 기본적인
국방력은 갖고 있었지만 나라가 안정되면서 무보다는 무를 중시하게 되었던 것이다. 특히 조선은 전 왕조들에 비해서 허약한 국방력으로 크고 작은
전란을 겪었고 나라를 빼앗기기 까지 해서 더 그런 생각이 들수가 있는데 사실 조선이 무를 천시한것은 아니다. 오히려 고려에 없었던 과거시험의
무과 시험까지 있으면서 무를 중시했었고 이책에 나오는 여러 병서를 발간하면서 늘 관심을 가졌었다. 그러나 그것이 단발성이 되고 정치적인
힘겨루기의 상황이 되면서 서서히 힘을 잃어가게 된것이다.
책은 말 그대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병서를 총망라하고 있다. 조선 시대에 발간된 모든 병서를 다 소개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중요한
병서는 다 나온거 같다. 내용은 단순히 병서의 내용만 소개하는것이 아니라 그 병서가 나오게 된 배경, 즉 시대적인 상황을 설명하고 있어서 이
책을 읽으면서 조선의 역사도 함께 배워나갈수있게 한다.
책은 처음에 정도전의 '진법'을 이야기한다. 조선의 설계자였던 정도전은 군사분야에서도 탁월했는데 이 진법은 말 그대로 진치는 방법을
말한다. 그 당시의 진이란것은 공격하고 후퇴하고 그런 전술을 말하는데 그것이 일사불란하게 이루어지면 상대를 압도할수있는것이다. 명과 불편한
상황이라는 시대적인 면도 있었지만 사병을 혁파하고 그 사병을 국가의 군대로 흡수하기 위해서 진법으로 군사를 훈련한 것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진법도 왕자의 난에 휘말린 정도전의 죽음으로 막을 내린다. 아마 일부분은 후대로 이어졌겠지만 주창자가 사라졌으니 진법도 사라졌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그가 살아서 진법을 계속 발전시켰다면 조선의 군대는 더 성장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다
임진왜란의 실패로 새로운 병서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그것은 '무예제보'나 '무예제보번역속집'으로 발전되었다. 왜적의 단검술에 쉽게 대응하지
못했던것을 명나라 장수 척계광의 '기효신서'에서 그 비결을 찾아서 대응책을 마련한 책이다. 중국의 병법서지만 우리의 현실에 맞게 자주적으로
수용해서 외적을 방어하는데 큰 도움이 되게 했다.
이런저런 일로 명맥을 이어오던 병서는 정조대에 와서 큰 발전을 이루게 된다. 그 자신이 활쏘기의 장인일 정도로 무인적인 기질이 강했던
정조는 군사훈련과 관련된 거의 모든 내용을 총정리한 군사교범서인
'병학지남'을 발간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을 더 발전시킨 통합 전술 병서로 '병학통'을 발간하게 되고 동양 삼국의 무예를 집대성한
'무예도보통지'를 발간함으로써 개인무술도 정리하게 된다.
병서를 발간하긴 했으나 후속조치가 꾸준하지 못해서 병서내용이 제대로 발현이 되지 못했었다. 그래서 결국 조선 후기에는 훈련할 국방력 자체가
크게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그때도 병서는 꾸준히 발간되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뛰어난 군인이었던 신헌의 '훈국신조군기도설' 과 '훈국신조기계도설'이
있다. 이 책들은 각종 무기와 병기 제작 및 활용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어서 이것이 전체적으로 활용되었다면 좋았겠지만 이미 조선은 국력은 병서의
발간정도까지만 할수밖에 없는 정도였다. 그것을 실제로 활용하고 보급할만한 힘은 없었던 것이다.
책은 전체적으로 조선이 결코 무에 관심이 없었는게 아님을 알려주고 있다. 각 시대를 지나면서 여러 병서를 간행하고 그것을 활용하기 위해서
노력은 했음을 보여준다. 각 병서의 내용도 잘 설명하고 있는데 당시의 실력으로 봐서는 꽤 괜찮은 내용이 많아보였다. 다만 그것이 전체 국방력에
영향을 끼쳐서 그것을 바탕으로 힘을 기르지 못하고 일부 사람들에게만 활용되는 수준에 그쳤기에 그 의미가 퇴색하고 말았다.
각 병서와 관련된 시대적인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어서 흥미롭게 읽을수 있었던 책이었다. 병서의 특징을 잘 간추려서 소개하는것도 좋았고
전체적으로 어렵지 않게 쓰여져서 역사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잘 읽을수있을꺼 같다. 조선병서의 역사란게 그동안 학계에서 많이 다루어지지 않은
분야라 이런 시도가 나온게 참 좋다. 조선은 수많은 조각들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나라다. 흔하게 보는 정치사나 경제사가 아니라 나름 중요하지만
잊혀진 주제를 가지고 조선의 참모습을 볼수있게 하는 시도 자체가 참 좋다. 지은이는 무와 관련해서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는데 이런 진정성이
좋아보인다. 앞으로 또 무와 관련된 다른 주제의 이야기가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