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 전쟁의 원인과 평화의 확산
아자 가트 지음, 이재만 옮김 / 교유서가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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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과 전쟁'이라는 책을 통해서 전쟁이 인간의 본성인지 그리고 그런 본성으로 어떻게 전쟁을 했으며 어떻게 문명을 이룩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자세한 고찰을 했던 지은이가 인간은 왜 전쟁을 하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에 따로 책을 낸게 바로 이 전쟁과 평화다.

인간이 역사를 가진 이래로 수많은 전쟁을 치뤄왔고 우리는 그런 전쟁사에 대해서 많이 알아왔는데 정작 왜 전쟁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해보지 못한거 같다. 인간은 왜 전쟁을 하고 사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말이다. 


책은 우선 언제부터 싸워왔는가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인간이 생겨나서 부터 싸웠는지 아니면 인간이 진화하면서 조금씩 싸워왔는가를 이야기하는데 전쟁의 기원에 대해서 토머스 홉스와 장자크 루소의 두 가지 반대되는 답을 소개하고 있다. 홉스는 국가 이전 상태를 만인 대 만인의 전쟁 상태로 규정했고 평화를 강요하는 권위가 없었던 그 시절에 삶은 '가난하고 험악하고 잔인하고 짧았다'라고 주장했다. 반면에 루소는 인간의 원시적 상태는 근본적으로 평화롭고 선량해서 농업 이전 사유재산이 없던 시절에 싸울 이유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이것은 말하자면 본능적으로 싸우는 것을 타고 났느냐 아니면 그 뒤에 진화의 산물로 생겨난 것이냐의 싸움 같다. 책에서는 두 가지 관점에서 모두 여러가지 역사적인 사실을 들어서 설명하고 있다. 사실 이것은 성악설과 성선설처럼 쉽게 판단 내리기 어렵다.시대적 상황에 따라서 각각 선호 되는 주장도 달랐다. 나도 옛날에는 인간은 타고날 때부터 착하다는 성선설을 믿었지만 인간의 잔혹함을 알고 나서는 그것이 과연 절대적으로 맞는 것인가에 대한 회의가 품어졌다. 책에서는 지금보다 훨씬 덜 탐욕스럽고 더 평화롭던 시대에 폭력에 의한 사망률이 현대보다 훨씬 더 크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인류가 더 발달해서 농업사회가 된 이후로 더 폭력적이 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루소의 주장이었지만 인구밀도도 낮고 폭력을 피할 가능성이 큰 옛날에 더 많은 폭력이 있었음을 여러 증거자료로 제시하는데 모든 시대에 걸쳐서 평화로운 때는 전쟁과 폭력에 의해 중단되었음을 말해주고 있는데 책은 인류학과 국제관계학에서 보는 전쟁의 원인을 각각 소개하면서 조금 더 가깝게 다가간다. 


그렇다면 그렇게 오랜 세월 선사 시대부터 있어왔던 전쟁은 계속해서 증가 했는가 라는 의문을 던질 수 있다. 중세 이후에 제국주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확실히 전쟁은 많아졌다. 서로 많은 땅을 차지하고 더 많은 부를 얻기 위해서 치열하게 싸웠다. 그러다가 19세기 동안 평화가 증진된다는 생각이 등장했다. 이른바 과거보다 더 이성적인 시대가 되었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역사상 가장 끔찍하고 파괴적인 세계 대전을 한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겪으면서 그것은 깨지고 말았다. 2차 대전 이후 냉전에 돌입하면서 언젠가 3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긴 평화'에 돌입하게 되었다.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긴장은 더해갔지만 전쟁이 일어나지 않은 이유는 바로 '핵무기' 때문이다. 한쪽이 쏘면 다른 한쪽이 쏘게 되고 그러면 그냥 같이 망하는 길이기에 서로 힘의 균형이 일어난 이상 전쟁은 감소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편으론 세계적으로 산업화가 일어나고 민주주의와 상업주의가 확산되면서 평화가 확산되었다. 책에서는 근대화 평화라고 하는데 민주주의 평화와 함께 자유 무역의 상업화가 가장 큰 중심축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제 지구촌이라고 할만큼 무역을 통해서 서로의 이익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상대가 잘못되면 나도 잘못되게 되는 체제가 된 것이다. 그것이 합쳐져서 결국 전쟁을 통한 이익보다 평화가 주는 이익이 더 크기에 전쟁은 줄어들고 있다고 이야기 한다. 과거에 폭력적인 수단을 통해서 만이 더 나은 부를 가질 수 있었던 것에 비해서 지금은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서로가 함께 갈때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일제가 패망하고 광복 이후에 분단이 되고 전쟁을 치룬 뒤 아직 까지 군사 대치 상황에 있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있는 내용이었다. 지난 시절 우리는 상대에게 지지 않기 위해서 열심히 군대를 키웠다. 그 군대를 키우기 위해서 열심히 경제를 키웠고 그 결과 세계 10대 경제국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지금 시점에서는 전쟁은 그동안에 쌓아 온 성과를 한번에 무너뜨리게 될 일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에게 평화란 실질적인 이익을 가져올 일이란 것을 새삼 생각하게 되었다.


전쟁이 없을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도 종교적인 이유로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과거와 같이 땅따먹기나 다른 나라를 침공하는 식의 전쟁은 없을 꺼 같다. 그렇게 해서 얻는 이익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물론 새로운 이유가 나타나서 또 다른 전쟁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공산주의가 몰락한 이때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퍼지면 퍼질수록 전쟁의 필요성은 줄어들 것이란 생각이 든다. 


책은 읽기 쉽지 않다. 원전이 어려운지 번역을 어렵게 했는지 그리 잘 읽히지 않는다. 처음에 좀 추상적으로 전쟁은 언제 했는가 부터 여러 딱딱한 이론을 설명할 때는 진도가 잘 안나갔는데 중반 이후에 여러 예시가 나오면서 읽기 편해진거 같다. 전쟁을 대비하고 있긴 하지만 전쟁이 왜 일어나는지 어떻게 줄일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잘 안했는데 이 책의 분석을 통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는 기회가 된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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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한 나의 집 모중석 스릴러 클럽 46
정 윤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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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제목은 안전한 나의 집이지만 이 '안전한' 이란 것이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다. 무엇으로부터의 안전함일까. 바깥으로부터의? 그렇다면 안에서의 위험에는 안전한 것인가. 제목은 책내용과 뭔가가 다를꺼 같은 암시를 주는거 같다.

 

지은이가 한국계 미국인이다. 처음에 지은이 이름만 보고 우리나라 소설인줄 알았는데 미국에서 발간된 책이다. 사실 이 책이 스릴러 시리즈로 발간이 되었는데 일반적인 스릴러 장르와는 좀 다르다. 뭔가 분위기나 상황상 스릴감을 느끼는 형식이랄까. 아마 미국에서는 이런 식의 분위기가 낯설기에 그럴지도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사실 그리 낯선 이야기는 아니다. 한국 문화의 어두운면이 미국에서 발현된 느낌이기 때문이다.

 

주인공 경은 성공한 사람이다. 좋은 대학을 나와서 괜찮은 여성을 만나서 안락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그러나 좋은 집을 사기 위해서 너무 많은 대출을 받은 나머지 상환에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그래서 살던 집을 세주고 부모님댁으로 들어가서 살아야할 처지가 되었다. 그것과 관련해서 부동산 중개인과 이야기 하던 도중 엄청난 일이 일어난다. 가까이에 사는 부모님에게 강도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다행스럽게 부모님의 목숨은 무사했지만 어머니가 끔찍한 일을 당하고 만다.

 

이야기 초기는 생각치도 못한 일로 전개가 된다. 경은 부모님에게 신세를 지고 싶지 않지만 어쩔수없이 합가를 해야 할 처지다. 그러나 그는 부모님과 오랫동안 거의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있다. 연락을 끊은것도 의절한 것도 아니지만 부모님을 보는게 불편하다. 일년에 몇번 있는 집안 행사도 최소한의 접촉만하고 피하다시피 하고 있다. 그것은 과거 어릴때부터 있었던 가정 폭력때문이었다. 그의 집안은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한 이민자 가정. 낯선 미국땅에서 인종차별을 겪으며 치열하게 살아야 했던 그의 아버지는 분풀이를 하듯 그의 어머니에게 폭력을 가했고 아무런 기반도 없고 말도 안 통하는 미국에서 어머니의 스트레스 해소상대는 그의 아들뿐이었다. 비록 모종의 사건으로 폭력은 더이상 이어지지 않았지만 경의 인생에서 부모의 존재는 멀어져 버리고 말핬다.

 

그런 그에게 부모가 당한 일은 경이 부모에게 다가갈수 밖에 없는 일이 되고 만다. 아무리 그래도 가족인데. 하지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어찌보면 아슬아슬하게 지탱되던 그들의 가족이라는 묶음은 같이 있으면서 충돌이 일어나고 점점 더 끈이 약해지기 시작한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같이 있을수는 없게 되버리고 만 것이다.

 

책에서 경의 가족은 전형적인 한국 가정의 모습을 보인다. 과거에 많이 그랬고 아직도 보이는 가부장적인 모습 말이다. 집안의 여자는 아버지에게 절대 충성을 해야하고 모든 집안일은 여자들이 해야한다는 그런 모습. 수백년동안의 전통아닌 전통으로 여성들이 가정내에서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어왔던가. 그런데 거기에 더해서 가정폭력이 있어왔던 것인데 과거 우리나라에서는 그런것이 그리 큰일도 아닌것처럼 치부되던 시절도 있었다.

 

책의 내용은 결국 이 가정폭력이 어떻게 마음을 피폐하게 하고 가정을 파괴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책에서 경은 매사에 짜증이고 부정적인데 자기 부모에게도 냉정하지만 그의 결혼을 반대했던 처가에도 별로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하지 않는다. 책을 읽다보면 대체 경의 지지자는 누가 있기라고 한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그런 상황에서 결혼까지 했는지도 의문이다. 책을 읽다보면 뭐든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경에 대해서 읽는 사람 자체가 짜증이 나기도 한다.

 

어릴때부터의 그 폭력이 결국 모든 것의 원인이 되었긴 하지만 경이 조금 더 인내심을 갖고 상황을 통제하면서 좋은쪽으로 갈수는 없었을까. 경의 행동이 짜증 나기는 했지만 과연 내가 그 상황이었으면 그처럼 행동하지 않았으리란 보장이 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책은 한국식의 가정 폭력을 배경으로 해서 소재 자체가 익숙하다. 그래서 이야기가 술술 잘 넘어간다. 지금까지도 심심치 않게 있는 일이라서 더 몰입이 잘 되었던것도 있다. 나쁜일이 일어나면 가족이 제일 큰 힘이 되는게 맞다. 사이가 소원하더라도 내편 들어줄 사람은 결국 가족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가족이 또한 상처의 원천이기도 하다.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가족일때는 참 좋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 가족은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감싸주고 의지할수는 없다는 것을 이야기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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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 그녀의 고양이
나가카와 나루키 지음, 문승준 옮김, 신카이 마코토 / 비채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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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카이 마코토는 세밀하면서도 서정적인 애니메이션을 잘 만들기로 소문한 감독이다. 그의 작품은 일단 그림이 참 좋다. 실제로 있는 장소를 소재로 해서 배경을 만드는데 정말 아름답게 그려서 기본점수를 먹고 들어간다. 내용은 담담하면서도 열린 결말을 내는 편인데 최근의 장편 영화에서는 좀더 재미있고 설레는 내용으로 눈을 즐겁게 하기도 했다. 보통은 애니메이션이 나오면서 만화책과 일반 소설책이 같이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번에 나온 책은 그의 초기작으 한 단편을 소설화해서 나왔다.

 

내용은 고양이와 그 고양이를 키우게 되는 사람의 이야기인데 사람의 시점과 고양이의 시점을 교차하면서 각각 그들의 입장에서 보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각각의 이야기 같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인간과 반려동물의 이야기이며 등장인물들이 모두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독립된 이야기면서도 하나의 큰 이야기를 이루는 형식이다.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 활동에서 사실상 데뷔작에 해당한다는 작품인데 사실 애니메이션을 보지는 못했지만 구성이나 전개 방식이 딱 이 감독 스타일이라서 책 내용도 흥미롭게 읽혔다.

 

미요는 연애에 상처를 입은 사람이다. 그런 그녀에게 어느날 초비라는 고양이가 다가오고 그로 인해 삶에 조금씩 활기를 띄게 된다. 레이나는 재능은 있지만 스스로의 능력에 자신이 없는데 미미라는 작은 고양이가 힘을 준다. 아오이는 슬픔으로 세상밖에 나오지 않으려하지만 쿠키때문에 밖에 나오게 된다. 시노는 삶의 후반부를 아무런 동력도 없이 혼자 살아가고 있는데 존이라는 개와 함께 구로때문에 삶에 의지가 생긴다.

 

고양이와 그 고양이를 키우는 주인. 요즘에는 집사라고 불리는데 아무튼 이들간의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된 단단한 애정을 책에서는 그리고 있다. 전쟁같은 삶을 살면서 편하게 위로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고양이는 편견없는 위로가 된다.

 

한편 초비는 겉모습이 고급스러운 고양이인데 주인인 미요에게 절대충성한다. 고양이면서 주인을 애인으로 여기는 특이한 고양이다. 미미는 작은 고양이지만 초비를 쫓아다니며 사귀자고 한다. 그렇지만 아기는 다른 길고양이와의 사이에서 낳아서 그중의 하나인 쿠키가 이들을 이어주는 하나의 끈이 된다. 구로는 집고양이가 되기 싫고 영원한 들고양이가 되고 싶어했지만 집에 한발을 들여놓은 순간 순한 집고양이가 되고 만다.

 

총 4개의 에피소드를 통해서 각 주인과 고양이의 이야기를 교차로 들려주고 있는데 각각의 등장인물들이 다른 에피소드에 잠깐씩 등장하면서 모두가 하나의 주인공이 되는 이야기 전개가 좋다. 영상으로 봐도 좋았을꺼지만 소설로 보니 더 많이 상상하게 되어서 더 좋은면도 있는거 같다.

 

도도한 고양이에 비해서 애교가 있는 개를 더 좋아하긴 하는데 사실 키우기는 고양이가 더 편하다.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알아서 행동하고 또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고양이가 키우고 싶어졌다. 막 뛰어와서 안기는 개도 좋지만 기분이 안 좋을때 은근히 다가와서 옆에 있는 고양이가 참 위로가 될듯하다. 책에서 나오는 이런 고양이라면 누가 이뻐하지 않을까. 요즘에 많은 사람들이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기도 하고 여건이 되면 입양해서 집사의 길을 걷기도 하는데 그만큼 고양이가 주는 정이 이뻐보여서 그런게 아닐까.

 

상처받고 소외된 사람과 고양이와의 만남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내어서 읽는 내내 마음이 포근했다. 빛의 마술사라는 호칭에 가려져있어서 그렇지 원작자의 이야기 능력도 나쁘지 않음을 잘 보여준 작품이기도 해서 앞으로 그의 작품을 이렇게 소설로도 읽어보면 더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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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사람의 속마음 비채×마스다 미리 컬렉션 2
마스다 미리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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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를 담담하지만 여운있게 그려내는 마스다 미리 작가의 신작이다.  이 작가 글쓰기의 특색은 큰 자극은 없지만 은은하게 마음에 와 닿는 글을 잘 쓴다는 것이다. 우리네 일상에 있었던 이야기를 뛰어난 기억력으로 더하고 빼고 하지 않고 간결하게 잘 표현해서 묘한 흡입력을 느끼게 하는 작가다. 각 이야기의 끝에 함축된 짧은 만화를 덧붙여서 이야기를 더 풍성하게 하는 것은 또다른 매력이기도 하다.

 

이번에는 일본의 오사카 지역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마스다 미리는 스물여섯 살 까지 오사카에서 살다가 도쿄로 이사왔다고 한다. 26년을 살았다고 하면 뭐 오사카사람이라고 할수 있겠다. 태어나서 잠시 산 것이 아니라 오사카의 모든 것을 몸에 완전 체득한 것이기에 이것은 오랜 세월이 흘러도 오사카스러움이 많이 변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지은이가 오사카를 떠난 오사카 사람의 눈으로 고향 이야기를 하는데 우리로 치면 경상도나 전라도 충청도 강원도 출신이 서울에서 고향을 그리는 내용쯤이 될런가. 사실 오사카는 우리 나라로 표현하자면 경상도비슷하게 번역하는 경우가 많은데 언뜻 비슷한 억양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치환할수가 없다. 각 지역의 특색은 어느 다른 것과 비슷할수가 없는 것이다. 그 지역의 지역색은 지역민만이 느낄수 있는 거라서 이 책을 완전히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경상도사람으로써 서울에서 느끼는 고향을 이 책에서도 비슷하게 느낄수는 있었다.

 

책은 오사카와 관련해서 여러가지 분야별로 오사카의 특징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일본에서는 오사카 사투리가 도쿄쪽 말에 비해서 두드러지고 웃긴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의 경상도 비슷하다고 했을지도 모른다. 다른 지역언어에 비해서 경상도말이 확연히 억양 차이가 나니까 말이다. 말투가 웃긴다고 사람이 다 웃긴건 아니지만 실제로 일본 코미디쪽에는 오사카 출신이 많다고 한다. 오사카 사투리와 관련해서 방송 소재로도 많이 쓰이고 있고.

 

책에서는 오사카말에 대한 은근한 자부심 같은것도 느껴진다. 물론 다른 지역언어보다 낫다는 식이 아니라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한 기억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오사카 사람들이 좀 애바르다고 한다. 같은 말이라고 해도 도쿄식 어법보다는 좀 덜 딱딱하다고나 할까. 그래서 이익에 좀 더 재빠른 구석이 있는데 다른 지역 사람들도 그렇게 느낀다고 하니 신기하다.

 

책에서는 오사카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다른 지역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지역만의 독특함을 이야기 한다. 책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표현이 되는지 일본어로 적어놓긴 했지만 뭐 알수는 없고 서울이 아닌 다른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은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갈 것이다. 중앙집권적이었던 우리도 각 지역마다 지역색이 강했는데 오랫동안 지역분권적인 성격을 가진 일본은 우리보다 더 각 지역의 특색이 있다. 전체적인 일본어는 같지만 억양이나 상황에 따른 표현 등이 다르다. 도쿄에 살면 그것을 못 느끼다가 갑작스런 상황에서 그런말을 들으면 아련한 고향이 떠오르는 것이다.

 

마지막 부분에서 오사카 지역의 약속 장소가 나온다. 이것은 뭐 각 지역마다 떠오르는 곳이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무슨백화점 무슨서점 이런식으로 오랫동안 지역에 있었던 건물을 떠올릴수 있다. 책에서는 오사카 사람이라면 바로 생각날 약속 장소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하루가 멀다하고 안 좋은 쪽으로 일본관련 뉴스가 나오는데 사실 일본을 얼마나 알겠는가. 알아도 수도인 도쿄쪽을 많이 알지 오사카나 다른 지역을 많이 알지는 못한다. 그런점에서 오사카가 일본속에서 어떤 느낌인지 어떤 곳인지 오사카 출신에게 설명을 듣는 느낌이어서 좋았다. 그리고 책을 관통해서 흐르는 감정은 역시 고향에 대한 애정이 아닐까. 지은이의 고향을 생각하는 마음을 통해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각자 고향을 느끼게 하는 책이었는데 조곤조곤하게 오사카를 잘 느끼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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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탕에서 생긴 일 비채×마스다 미리 컬렉션 1
마스다 미리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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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다 미리는 담담하면서도 진실되고 소소하면서도 세밀한 이야기로 인기를 얻고 있는 일본의 인기 만화작가이다. 이번에 그 시리즈가 나오게 되었는데 첫번째 책이 여탕에서 생긴 일이란다. 사실 일본의 목욕탕과 우리의 목욕탕은 비슷하면서도 다른데 제일 크게 다른 것은 우리는 목욕탕에 가는 것이 일정한 시기에 가는 일종의 연례행사같은거라면 일본에서는 마실 가듯이 더 가깝게 가는 곳이라는 것이다.

 

일본의 전반적인 목욕탕 문화가 그러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에서 지은이는 목욕탕을 매일 갔다! 집에 욕실이 없는 가난한 집이었기 때문에 그렇다고 하는데 그럼 목욕비는 아주 싼가? 가난해서 목욕탕을 매일 간다면 그만큼 싸야 자주 가는것이 아니겠는가. 우리나라의 사우나를 생각하면 절대 매일 갈 수가 없는데 말이다. 아마 우리나라처럼 시설이 아주 좋은 그런 탕이 아니라 진짜 간단하게 탕과 샤워시절 정도만 있었던게 아닐까 싶다. 아무튼 그렇게 매일 가니까 이런저런 소소한 일들이 많이 있었던 것이다. 지은이처럼 매일 오는 사람들을 매일 보니까 이야기꺼리가 생기는것이고.

 

놀라운 점은 남탕 여탕과 구분되서 서로 다른 성이 출입하는것이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는 우리와는 달리 일본은 목욕탕 아저씨가 여탕에 가서 아줌마들이랑 이야기하고 그 반대로 남탕에 아주머니가 들어와서 먼일을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일본에서 대중적인 일인지 지은이가 살던 곳 살던 때만 그런건지 모르겠다. 우리같으면 당장 경찰에 신고할 일인데. 하긴 일본에 남녀혼탕도 있다는 말을 들었으니 물론 이것은 다 벗고 같이 있는것이 아니라 목욕타월정도는 입은 상태를 말하는거긴 하지만 우리와는 좀 분위기가 다른 면이 있다. 그러나 그런 차이를 제외하고는 책의 내용은 우리네 이웃의 이야기같은 느낌이 들어서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제목은 여탕에서 생긴 일인데 이 일들은 남탕에선 덜 일어나는 일일것이다. 아무래도 남자들은 간단하게 목욕하고 나가기 바쁘지만 여자들은 목욕탕에서 목욕도 하지만 친목도모(?)도 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어머니도 한때 일주일에 2-3번을 한 사우나에 가신 적이 있는데 처음 간 다른 동네의 목욕탕이었지만 이내 거기 자주 오는 아주머니들이랑 형님 동생하면서 친해지셔서 먹을꺼리를 나누기도 하셨다니 확실히 여자들은 남자들과는 다르긴 하다.

 

여탕을 한번도 가보지 못한, 아니 갈수가 없는 남자긴 하지만 여탕에서 생긴 일들을 보니 실제로 일어난것을 알고 있는것처럼 익숙함을 느끼게 되고 입가에 미소가 띄게 되었다. 책에서 나오는 에피소드들이 내가 어렸을때 느꼈던 것들을 비슷하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어렸을때 엄마따라 목욕탕 가서 생긴 일들을 적고 있는데 나 또한 어릴때 아버지따라 목욕탕 가서 느꼈던게 생각이 난 것이다. 어릴때는 그렇게 뜨겁게 느껴졌던 열탕이 어른들은 왜 그리 좋다고 느꼈는가는 역시 아이들의 시선에선 알수가 없는 문제였다.

 

언젠가부터 목욕하고 나오면서 바나나우유 먹는것이 하나의 관례가 되다시피했는데 그 옛날에도 그랬던것을 요즘에도 그런다고 하니 신기하기도 하다. 아마 아빠가 어렸을때 그 기억이 자신이 아빠가 되어서 아이에게 사주는것이 아닐까 싶다. 이 책에서도 자판기의 캔을 하나 사서 엄마랑 동생이랑 같이 마시면서 오는 장면이 나온다. 따뜻한 곳에서 목욕하고 시원한 음료수 마시는게 얼마나 맛이 좋을까. 하나의 캔을 가지고 세 명이서 한모금씩 마시는데 엄마는 걸으면서 마시지 못해서 마실때는 꼭 멈춘다는 대목이 웃음이 나왔다. 길거리 음식도 못드실듯해서.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세모녀의 모습이 연상이 되니까 얼마나 마음이 따뜻해지던지.

 

웃음이 많이 난 에피소드는 만화책 사건이다. 돈을 아끼기 위해서 만화를 사보지 않고 시간차를 두고 목욕탕에 비치된 만화책을 노리던 지은이가 엄마의 재촉에 만화를 다 보지 못하고 끌려나오는 장면이나 동생이 먼저 보는걸 방지하기 위해서 만화를 읽고 목욕탕에 들어가려다 엄마한테 등짝스메싱들 당하는 장면은 진짜 웃음이 나왔다. 아마 남자아이던 여자아이던 상상할수 있는 일들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아이때 목욕탕에서 놀다가 엄마를 찾아갔는데 비슷한 체격의 다른 엄마를 착각한것등이 웃음이 났다.

 

요즘에는 옛날식의 작은 목욕탕도 없고 아마 매일 목욕탕에 가는 일도 거의 없을 것이다. 지은이는 그런 목욕탕이 없어지기 전에 어른이 되어서는 안 갔지만 어릴적 욕실이 없어서 목욕탕에 매일 갔던 그 시절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의 말마따나 욕실이 없던 덕에 보였던 세상이 있었던 것이다.

 

글이 참 따뜻하고 정감있다. 많은 부분 남녀를 떠나서 옛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크고 깨끗하고 현대화된 요즘의 목욕탕에서는 느낄수 없는 감정. 그립다 그때의 그 따스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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