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의 조국
로버트 해리스 지음, 김홍래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인간은 미완의 동물이다. 완전치 못한 존재이기에 늘 욕심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곧잘 후회도 하고 이미 지나간것에 대해서 미련을 가지기도 한다.
역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일것이다.
현재라는것이 결국 과거의 산물인데 현재에 만족하면 모를까 만족하지 못한다면 과거에 대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된다.

최근 고구려 바람이 불면서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 했으면 하는 생각들 해봤을것이다.
지금의 답답함을 고구려의 저 광활한 기상으로 위로 받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겠고.
그러나 사실 그때 고구려가 통일을 했다면 과연 지금의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저 드넓은 요동땅이 우리땅일까? 아니면 삼국을 통일한 고구려가 나중에 중국의 침략을 끝내 이기지 못해서 지도상에 한민족이 사라져버렸을까?
결과는 알수 없겠지만 그렇게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재미나는 일일것이다.
이렇게 실제하는 역사를 비틀고 공공연한 '역사왜곡'을 일삼아 문학 작품으로 만든것이 '가상역사소설'이다.

이 책 '당신들의 조국'은 바로 그런 가상역사소설이다.
보통은 위에서 예를 든것처럼 과거의 아쉬웠던 부분을 바꾸는 편인데 이 책은 그 반대다.
악이 승리했다는 설정을 한 것이다.

2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이 패망하지 않고 승리했다는 가정하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나치 독일이 2차 세계 대전에서 승리한지 20년이 지났고 독일의 패권은 공고한 가운데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의 방문을 앞두고 한 시체가 호숫가에서 발견된다.
수사에 들어간 사법경찰인 주인공 마르크는 수사 과정중에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단순한것 같았던 사건이 의혹에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게슈타포까지 개입하게 되는데다가 또다른 살인 사건이 일어나게 되는데 그것의 진실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엄청난 사실들이 마르크를 기다리게 되는데...

사실 이 책은 본격적인 가상역사소설이라고 하기엔 조금 약한 면이 있다.
뒤틀린 역사가 종횡무진 이야기를 이끌지는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약간 추리소설적인 면이 보이는게 아주 단순하게 말하면 변사체로 발견된 피해자의 범인을 찾아가는 이야기라고도 볼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겉으로 보기에 그런 단순하게 보이는것이 실은 역사를 바로잡을수 있는 작은 실마리가 된다는 것이다.

비록 가상의 역사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긴 하지만 결국엔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전형적인 병영국가로 묘사된 나치독일의 일상은 작은 부분에서 현재에도 나타나는 일들이다.
어쩌면 지은이는 가상의 독일을 통해서 현대의 그 불합리한 면을 비유했는지도 모른다.
정보가 차단되고 진실이 은폐되는건 지금도 여전하니깐.
하지만 마르크의 행동에서 보듯이 언젠가는 진실이란것이 드러나게 되어 있고 또 그것을 캐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결국 가상역사를 차용했지만 진실된 현재를 그리고 있다고도 볼수 있을 것이다.

장르를 생각하지 않고 그냥 읽는다고 해도 이 책은 참 재미가 있다.
시간상으로 보면 일주일 남짓한 시간인데 수십년의 역사를 다 읽어내려가는 느낌이 들지만 쉽게 잘 읽힐 정도로 지은이의 이야기 풀어가는 솜씨가 좋다.
현실에 안주하는 것같으면서도 날카롭고 흐물흐물하면서도 강단이 있게 보이는 주인공 마르크나 어쩔수없이 현실에 굴복하는 주위 사람들, 그리고 사실적인 게슈타포의 캐릭터 묘사는 더욱더 책에 쉽게 몰입하게 한다.
책을 점점 읽어가면서 가슴을 짓누르는 무엇인가를 느끼게 되는데 나치가 숨기고 있는 그 거대한 비밀을 마르크와 나만 알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물론 이 책을 읽는 독자는 이 이야기 자체가 거짓말이라는걸 알고 있지만 책을 읽어내려가는 내내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술술 읽어내려 갈 정도로 이야기에 힘이 있다.

이 책은 결말을 내지 않았다. 역사가 다시 환원되는것도 아니고 진실이 밝혀진다고 나오는것도 아니다.
마르크의 마지막 시도가 실패할수도 있다.
그러나 마르크의 최후의 모습에서 왠지 모를 희망이 보이는거 같았다.
총을 들고 호기롭게 나서는 그의 모습은 서부영화에서 악당들을 처치하는 '존웨인'을 순간 연상시켰다고 하면 좀 엉뚱한 상상일까.

이 책은 그전에 한번 출판되었던 것을 새롭게 번역하고 장정을 입혀서 나온 책이다.
장르적으로는 SF소설의 하위 장르라고 하던데 사실 장르가 무엇인지 알 필요는 없을 것이다.
번역도 깔끔하고 책 상태도 좋으며 값고 분량에 비해선 경제적이고 무엇보다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교훈 찾을라고 하지말고 장르에 거부감 느끼지말고 그냥 읽어보라.
어느새 영화화 된것이 없나 찾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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