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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코미디 - 유병재 농담집
유병재 지음 / 비채 / 2017년 11월
평점 :
스마트폰이 보편화되고 폰을 통해서 세상을 들여다보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글을 남에게 보이는 방식도 조금 바뀌었는데 그것은 짧게 핵심을 쓰는 것이다. 사실 폰으로 긴글을 쓰고 긴글을 읽기는 조금 힘들다. 그래서 글을 올리는 도구도 일반적인 블로그에서 폰에 적합한, 짧은 글을 올릴수 있는 여러 SNS가 생겨났다. 그런데 사람들의 호응을 얻고 그 의미를 짧은 단문에 잘 전달한다는것이 그리 쉬운건 아니다. 최대한 내용을 잘 파악해서 가장 중요한 지점을 잘 꾸며서 글을 써야하는데 평소때 '줄거리요약' 훈련이 되어있지 않으면 쉽지 않다.
고사성어로 '촌철살인'이라는 말이 있다. 아주 짧은 경구나 핵심을 찌르는 말로 남을 당황하게 하거나 감동시키는 것을 말하는데 오늘날의 SNS단문과 비슷하다고 하겠는데 이 촌철살인이란 말을 아무에게나 갖다붙이지는 않는건 그만큼 대단하다면 대단하다고 할수있다.
유병재는 텔레비전 예능프로그램에서 처음 봤는데 방송작가라고 하는거 같았다. 그 뒤로 여러 예능에 나오면서 얼굴을 알게 되었는데 약간 맹한 말투와 겁먹은듯한 흔들리는 눈동자를 보면서 웃음 지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 사람 그런 외적인것보다 더 깊은 내공이 있는 사람이다. 가끔씩 인터넷상에 올라오는 글을 보면서 아 저렇게 글을 쓸수도 있구나 저렇게 내용을 요약할수도 있구나 하면서 감탄했던적이 있다. 핵심을 잘 찌를뿐만 아니라 모나지 않게 비판하거나 조롱하는것도 솜씨가 좋았다. 이정도면 촌철살인이라는 말을 해줘도 되지 않을까.
그가 쓴 수많은 글들 중에서 나름의 의미가 있고 잘 된 글들만 모은 책이 나왔다. 제목이 농담집인데 짧은 농담을 모아놓은 책은 오래전에 김영삼대통령과 관련된 웃기는 이야기를 모은 책을 본 이래로 첨보는거 같다. 근데 그때는 그냥 가볍게 웃으라고 한것이라서 그냥 보고 넘기는 수준이었다면 이번에 이 작가의 책은 의미있는 글들을 모으는 작업의 결과물이라서 곁이 다르다.
몇개의 소제목으로 나누긴 했어도 전체적으로 다들 글들이 독립된것인데 그때 그때 시대적인 상황을 잘 반영하기도 하고 현실 생활의 이야기를 잘 꼬집기도 한다. 스스로를 비하하기도 하지만 자학이라기보다는 자신을 낮춤으로써 주위에 웃음을 주는 형국이다. 사실 그의 행동이 꼭 그만의 행동이라고 볼수는 없을터.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블랙코미디라고 했다. 웃기는데 마냥 웃을수는 없는. 웃픈? 쓸쓸하게 웃기는 것이 블랙코미디 같은데 전체적으로 글에 유머를 배경으로 깔면서도 하고자 하는 말을 재치있게 잘 풀어낸 책 같다.
처음볼땐 넘어갔다가도 다시 읽으면 웃음이 나고 세번 보면 마음이 슬퍼지는 것도 있었고.
방송에서 나온 모습과 좀 과하게 웃기는 글들만 봤던것이 다 였는데 이번에 이 작품집을 보면서 지은이를 다시 보게 되었다. 글쓰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고 단단한 느낌이 들어서다. 그만큼 연습도 많이 했겠고 많은것을 생각했을것이다. 개나 소나 내는 책을 냈다고 스스로를 낮췄지만 이정도 글 쓰는 사람도 많지가 않다는점에서 겸손이란 생각이 든다. 글속에 웃음을 잘 스며들게 하는건 유병재 특유의 스타일이 아닐까.
책은 재미있게 잘 읽힌다. 글이 또 짧으니깐 휙휙 지나가고. 어느 부분을 펼쳐서 아무 글이나 읽어도 부담도 없다. 그의 글을 읽고 공감이 가면 고개를 끄덕이면 될것이고.
오랫만에 마음 편하게 읽을수 있던 책이었고 글쟁이로써의 지은이를 다시 보게 한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