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션 일레븐 스토리콜렉터 45
에밀리 세인트존 맨델 지음, 한정아 옮김 / 북로드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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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바이러스때문에 전국이 난리가 났었고 저멀리 브라질에서는 지카 바이러스로 인해서 올림픽의 개최가 불투명할 정도로 사람에게 전파되는 바이러스란 참 무서운 존재다. 그래서 이것을 소재로 인류가 멸망한다는 설정의 영화나 소설이 많았다. 그중에 많은 수가 멸망 일보직전에 바이러스를 잡는 백신이나 다른 해결수단이 나와서 평화스럽게 해결되는 거였지만 그 과정이 충분히 스릴러적인 면이 많아서 재미있게 봤었었다. 그런데 여기 또 바이러스로 인한 인류멸망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이번에는 해결이 안된다. 그냥 푹 쓰러지듯이 수많은 사람들이 그냥 죽고 만다. 그야말로 인류멸망인것이다. 뭐 백신이 만들어지고 말고 할꺼도 없고 순식간에 바람불듯이 그냥 끝난다. 뭐이래 싱거워?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할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은 인류멸망의 과정을 다루는 내용이 아니라 그 이후를 다루는 이야기였다. 아주 색다른 느낌의 종말 소설.

 

한 유명배우의 '리어왕' 공연장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당대의 그 유명한 배우가 갑자기 쓰러진다. 손쓸 시간도 없이 그냥 사망하는데 그 시간에 소리없는 암살자들이 대량으로 퍼진다 바로 치명적인 독감 바이러스의 발현. 긴 설명과 묘사를 할꺼도 없이 대부분의 인류가 전멸하고 소수의 운좋은 사람들만, 그리고 인류가 그때까지 만들었던 그 찬란한 문명의 흔적들만 고스란히 남게 된다.

 

그로부터 20년 후. 살아남은 사람은 그들 나름의 무리를 이루어서 그야말로 원시 시대의 방식으로 살아간다. 문명의 이기가 그대로 남아있었지만 전력공급이 안되는 세상에서 그것들은 무용지물일뿐. 그리고 셰익스피어 공연을 하는 유랑극단이 있다. 그저 길을 따라서 떠돌지만 마을 마을에서 환영을 받으면서 점점이 생존 지도를 만들어가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인류가 멸망했는데 대체 셰익스피어가 왠말인가. 하지만 그것은 그대로의 희망이 아닐까 한다. 사람은 살아가는 희망이 없다면 그 자체로 삶의 의의가 없는 존재. 먹고 사는것이 아닌 다른것에 관심을 두는것은 인간만의 특권이 아니겠는가. 여기서 유랑극단이 보여주는것은 그런 희망을 이야기하는건 아닌가싶었다. 그들의 유랑은 그런 희망을 전파하는 수단이고.

 

묘한 느낌의 책이란 생각이 든건 인류 멸망의 전에 그 긴박하고 절실했던 것들이 그려지지 않았는데 멸망후의 모습도 별다른 사건이나 특이한 전개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원시 시대로 돌아갔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성은 끝나지 않았는지 전체적으로 평화스러운 이야기가 진행된다. 약간의 갈등 요인으로는 광신도를 거느린 미친 교주가 나오긴 해도 극의 흐름을 완전히 돌려놓을만한 변수가 되진 못했던거 같다.

 

이야기는 멸망전의 여러 사람들의 모습과 멸망후의 모습을 교차해서 보여주면서 비었던 서로의 액자를 채워가는 형식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변화하고 어떻게 살아가내는지를 볼수 있어서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별다른 자극적인 설정이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종말 이후의 이야기를 짜임새있게 잘 이끌어내어서 생각보다 몰입도가 좋았던 책이었다.

 

마지막 부분에서 발견한 불빛...횃불이 아니라 전기로 불을 밝히는것이 나온것은 역시 인류의 미래를 암시하는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손에 든것이 아무것도 없고 남은 사람들이 한줌밖에 없다고 해도 역시 인류는 인류인가하는. 수천년을 수많은 희생과 역경을 뚫고 살아온 인간의 저력을.

아름다운 종말 소설이라는 어느평이 딱 들어맞는 묘한 매력의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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