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세트 - 전10권
나관중 원작, 검궁인 지음 / 여러누리 / 2006년 1월
평점 :
절판


진수가 지은 정식역사서인 '삼국지'를 근간으로 한 소설 '삼국지연의'는 그것이 지어진 이후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왔고 가면 갈수록 더 크게 확대재생산되고 있는 작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500년대에 처음으로 들어왔다는데 현대에 이르러서는 많은 작가들이 자신만의
삼국지를 쓰고 싶어 할 정도다.
이미 만화,애니메이션,게임, 드라마, 영화 등으로 삼국지 콘텐츠의 응용이 넓혀져서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이라도 친숙하게 느낄것이다.
가히 삼국지 열풍이라고 할만하지만 최근에는 삼국지야말로 제대로된 독서를 방해하는 책이라고
주장하는 삼국지무용론도 등장하고 있다.
그만큼 삼국지의 대중적인 영향력이 커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할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해방이후에 여러 작가들의 삼국지가 나왔었고 최근에까지도 계속해서 새로운
삼국지가 나오고 있는데 어떻게 보면 내용상으로 크게 차이가 나는것이 아니다.
엄연히 원작이 있는 중국의 역사소설이기에 한국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표현의 차이일뿐 그 스타
일상으로 봐서 크게 다르다고 볼수있는것은 아닌것이다.
중국본을 직역이나 정역을 하거나 중국본을 일본어로 옮긴 것을 다시 한국어로 옮겼거나 하는
건데 기본적인 내용은 거의 같다고 할수있을것이다.
작가에 따라서 특정인물이나 사건을 키우기도, 줄이기도 하는 정도로 특색을 나타냈다고는 하나
삼국지라는 큰 타이틀로 본다면 소소하다고 할수도 있다.

그런데 이번에 나온 검궁인의 삼국지는 기존의 삼국지와는 다르게 '무협'소설을 표방하고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검궁인은 무협소설을 주로 써온 전문 무협소설가이다.
무협소설이라는 장르는 그 특성상 비현실적이거나 황당무계하고 지나친 우연, 정형화된 인물들
의 내용이 많이 나온다.
그러나 삼국지는 비록 소설이긴 하지만 정사를 바탕으로 쓰여진 것이기에 무협소설가와 삼국지
의 만남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일이었다.

일단 시도 자체는 괜찮은 편이라고 할만하다.
삼국지는 그 분량이 보통 책 10권에 해당하는 양이라서 읽기가 그리 쉬운건 아니다.
책이란것은 계속 읽어야 일관된 기분으로 느낄수있는데 삼국지는 너무 길어서 중간에 쉬다가
읽다가 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읽는 호흡이 끊겨서 앞에 내용을 기억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삼국지를 읽고싶어도 엄두를 못내는 사람이 많은데 일단 그 점에서 이 책은 쉽게 잘
읽힌다.

무협소설의 특징이 쉽고 재미있게 잘 읽히는 것인데 그 장점을 잘 이용해서 책읽기가 그리 어렵
지않게 잘 나아간다.
기존의 삼국지를 읽고 이것을 읽은게 아니라서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지만 내용상 군더더기는
뺀거 같고 내용 전개가 빠르다.
시가가 나온다던지 하는 감상부분은 빼고 전투나 사건 위주로 묘사를 하면서 기본의 삼국지보다
는 흥미롭게 이야기가 펼쳐진다.

한나라 황제를 무림의 황제라는 뜻의 무황으로 이름 짓는다던지 각 지역의 수장을 무림회의 지부장
이라고 칭한다던지 하는 것이 재미있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무협소설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남녀간의 사랑 장면같은것도 심심찮게 등장해서 기존의
삼국지를 읽은 사람들은 이것이 삼국지가 맞나 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그런 장면들이 필요한것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일단 무협이라는 장르 특성을
충실하게 차용한것으로 보인다.
무협소설을 즐겨읽은 사람이라면 쉽게 접근할수있는 것일수도 있을 것이다.

인물을 묘사하는 면에 있어서는 작가의 주관과 상상력이 좀더 녹아있다.
조조같은 경우에는 잔혹한면도 보여주지만 그의 성실함과 지혜로움을 잘 보여주기도 하고
유비는 기존의 삼국지에서는 어찌보면 어리석게 보일수도 있게 보이나 이 책은 초반부터
속이 깊고 참을성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인물 묘사방식에 있어서 말이나 행동에서 유추하는 기존 삼국지에 비해 좀더 직설적이고
쉽게 바로 묘사하는것이다.
그래서 읽은 사람은 빨리 내용을 파악하고 몰입할수 있게 되는 면이 있다.

그리고 전투 장면 같은 경우도 무협장르의 특성을 대입하여 좀더 박진감있고 리듬감있게 묘사
를 한다. 기존의 삼국지에서는 싸우기전의 묘사가 길었으나 이 책은 그런 면을 줄이고 실전중심
으로 묘사함으로써 좀더 흥미있게 책을 읽을수있게 한다.

지은이는 끝부분을 공명이 끝나는 부분으로 했다.
유비 삼형제와 손권, 조조 그리고 제갈공명을 삼국지의 가장 큰 주인공이라고 했을때 다른 사람
도 다 죽고 공명도 죽는 시점이 삼국지의 마지막이라고 한 설정은 나름의 논란이 있겠지만
잘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뒤에 삼국을 통일하게 되는 여러 이야기가 있긴해도 위의 6명의 캐릭터가 워낙 강력한 터라
그들이 다 죽고 난뒤의 이야기는 좀 흥미가 떨어졌었는데 작가도 그런 의미로 끝을 정했는거
같다.
그 뒤의 이야기는 어찌보면 드라마에서 말하듯 시즌1이 끝나고 새로 시작되는 시즌2같은 성격
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공명의 죽음으로 대미를 장식한것도 나쁘지 않게 보였다.

쉽고 빠르고 재미나게 접근하겠다는 지은이의 의도는 어느정도 적중했다고 볼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시도라서 그런지몰라도 그 시도에 걸맞지 않은 아쉬움도 보인다.

우선 이책은 '무협소설 작가 출신'의 책이지 '무협소설'이 아니다.
무협이라는 장르는 아주 단순하게 말하면 비현실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 역사소설은 현실성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를테면 내공,외공,무슨무슨 10장 뭐 이런식의 무협에서 나오는 무술이나 용어가 나오
지 않는다.
무협을 표방했지만 무협스럽지 않은 모습인것이다. 무협을 기대한 사람들에게는 그리 무협스럽
지 않게 느껴질것이다.

그리고 재미를 추구한다고 해도 삼국지라는 거대한 얼개에서 주는 감동과 교훈이란것이 있는데
그런면에서 이 책은 깊이가 좀 부족한듯이 보인다.
재미를 중점으로 두었기때문에 발생할수있는 사항이긴 하나 재미와 감동이 동급으로 느낄수있는
방법도 있을것이다.

또 하나는 내용 전개를 빠르게했다고는 하나 분량 자체는 그리 줄은거 같지 않다.
기존의 삼국지도 대게 10권정도 분량인데 이 책도 10권이라서 양 자체로는 읽기가 그리 수월한
것은 아니다. 기왕에 삭제할껀 삭제하고 빠른 전개를 목표로했으면 2-3권 분량은 더 줄여도
되지 않을까.
내용상 끝은 공명이 죽은때까지 인데 다른 삼국지는 그 뒷얘기까지 다 담고도 10권이니 양이 그리
줄은건 아닌 셈이다.
삼국지 원형을 훼손하지 않으려는 의도였는지는 몰라도 광고와는 다르게 느껴지는 분량이다.

10권이나 되는 방대한 양에다가 나오는 사람수도 상당히 많다.
주요인물이 아니라면 헷갈릴 수도 있다. 그래서 기존의 삼국지는 권말 부록이나 각 권마다의
해설을 통해서 인물들을 정리하거나 연표를 작성하거나 지도를 그려넣는 듯의 읽는이의 이해를
돕기위한 부록을 첨부하는데 이 책은 그런것이 하나도 없다.
설정자체가 무림이라고 해놓았으니 연표를 작성할순 없다고 해도 나오는 인물들을 모아서 해설하는
정도의 서비스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달랑 지은이 후기만 맨 마지막 권에 적는것은 성의부족으로밖에 안 보인다.
그리고 쉽게 썼다고는 해도 그래도 역시 삼국지에 나오는 무수한 사자성어나 용어들은 한글세대
에는 어렵게 느껴질수도 있다.
권말에 그것들을 설명한 것도 덧붙였으면 좋았을껄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저러한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무협적으로 접근한 삼국지의 등장은 환영할 만하다.
삼국지의 엄숙주의에 빠져서 언제까지고 어려운 삼국지를 읽을순 없는 노릇이다.
쉽고 빠르게 읽을 수 있는 내용으로 고전을 쉽게 접근하게 하는것도 의미가 있는거 아닌가?
기존의 정역,평역된 소설들도 물론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기지만 이런 식의 시도도
책과 독자와의 거리를 좁히는데 도움을 준다고 본다.
검궁인의 삼국지처럼 색다른 시각으로 접근한 소설들이 많아진다면 그만큼 우리의 독서생활도
더 풍요로워질것이다.

다음에는 '무협풍'이 가미된 것이 아닌 '완전무협삼국지'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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