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드 그래닛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8
스튜어트 맥브라이드 지음, 박산호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어떤 문학작품이던 그 나라의 스타일을 반영하기 마련이다. 각 나라의 자연과 문화의 기운을 담았다고나 할까. 추리물에서도 그런 느낌은 잘 드러나는데 이번에 국내에서 잘 없었던 영국 추리물이 나왔으니 바로 이 '콜드 그래닛'이다.

제목부터 뭔가 추운느낌이 드는데 영국이라는 나라의 문화에서 느꼈던 감정이 이 책에서도 느껴졌다. 비가 자주오는 기후의 특성상 춥고 지루한 느낌속에서 뭔가 유모나 위트, 그리고 알수없는 여유같은것 말이다. 사건은 여러개 터져서 정신이 없을법한데도 할꺼는 다 하는 뭐 그런.

중간중간에 나오는 영국식 유머는 심각한 상황임에도 피식 웃게 했다.

 

책의 무대는 영국의 동북부 스코틀랜드 도시인 애버딘이다. 솔직히 그런곳도 있었나 하고 검색해서 알아봤는데 나름 큰 도시고 상업, 교통의 중심지라고 한다. 이런곳이니 뭐 범죄도 많을것이다. 그곳의 그램피언 경찰서가 중심 무대다. 당연히 여기의 경찰이 주인공이다.

그 이름 '로건 맥레이'.

 

그는 그전의 사건에서 범인은 잡았지만 큰 부상을 당해서 오랫동안 치료와 휴식을 취하고 복귀하자말자 희대의 연쇄살인사건과 맞닥뜨리게 된다. 그것도 어린이를 상대로 한. 최초의 사건에 대해서 실마리를 찾기도 전에 또 한 아이가 실종되게 되고 연이어서 또 다른 어린이의 시체가 발견된다. 거기에 무릎이 도려진 시체의 발견까지. 사건이 정신없이 일어나게 된다. 그 얽히고 설킨 사건들에서 증거를 찾아서 사건을 해결하게 된다는것이 중심 이야기다.

 

여러 수사물이나 경찰물의 추리소설을 많이 봤지만 아동을 중심으로 한 연쇄 살인이나 실종에 관한 이야기는 그리 많이 보지 못했는데 여기에서는 그것이 주된 사건이다. 보통의 살인사건이라고 해도 주목을 끌것인데 아동을 상대로, 특히나 잔인하게 살해되고 성적인 문제까지 결부된 연쇄살인사건이라고 하니 얼마나 대단했을까. 한 사건이 마무리되기도 전에 또 터지고 또 터지고 한마디로 정신이 쏙 뺄 정도로 사건이 연달아 일어나는데 그 사건들이 어떤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지는 않게 보이면서도 결국엔 어떤 지향성을 갖게 되는점에서 흡입력있게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흥미로운것은 주인공인 캐릭터다. 소설속에서 대단한 사건을 잘 해결한 영웅처럼 나오지만 사실은 소심하면서도 실수도 있고 상관에 쩔쩔매는 면도 보이는 것으로 나오는게 뭔가 더 사실적이고 친근감이 있게 느껴졌다. 셜록홈즈나 콜롬보형사같이 모든 사건을 꿰뚤어보고 능수능란하게 사건을 해결하는 사람은 현실에선 찾아보기 힘든 법이다. 책 읽을때는 시원하게 읽지만 뭔가 덜 사실적인것이다. 그런데 이 책의 맥레이 형사는 그런 점에서 보통 사람보다 '조금' 나은 정도의 실력가지고 사건을 해결하는듯 보여서 더 가깝게 느껴졌다. 이 소설이 시리즈로 나오고 있는데 뒤로 갈수록 더 친근감있는 캐릭터가 될듯하다.

 

소설의 색깔을 느끼게 하는 또 다른 장치는 소설 내내 묘사되는 날씨다. 우리가 영국은 비가 자주 내린다고 알고 있는데 이 책에서도 그것이 수없이 묘사된다. 계절상으로는 겨울인데 거기에 시도때도없이 비나 눈이 내리니 안그래도 잔인한 살인사건인데 더 오싹한 느낌이 들게 하는 장치였다. 역시 영국이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저런데서 어찌 사는가 하는 생각도 함께. 하지만 이 비는 감춰졌던 사실을 드러나게 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기도 하고 또 중요한 사실을 감춰버리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점에서 이야기 전개상 중요한 장치인것이다.

 

하지만 마냥 차가운것만은 아니다. 그 찬 기운을 녹여줄 소재로 차가 등장한다. 티타임이라는 일상적인 시간이 있을 정도로 차를 많이 소비하는 나라지만 이 책에서도 어떤 경우던 차를 마시는 장면이 나와서 새삼 이 나라의 문화적인 면을 알게된것도 있었다. 차가운 날씨의 비와 따뜻한 차가 대비되는. 

 

사실적인 캐릭터인 주인공 이외에도 여러명의 조연들이 맛깔나게 책을 장식한다. 맥레이의 상관으로 능력있는 형사지만 상당히 사나운 인치와 더불어 맥레이와 함께 사건속으로 뛰어들게되는 매력적인 여순경 왓슨등이 마치 콤비같이 재미나게 등장한다. 앞으로의 시리즈에서 이 조연들의 비중도 커지지 않을까 싶다. 특히 왓슨과의 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궁금해진다.

 

미국이나 일본, 그리고 요즘 새롭게 각광받는 북유럽 추리물들에 비해서 잘 접하지 않았던 영국추리물이었는데 상당히 깔끔하고 재미나게 잘 읽었다. 사건이 많은데 해결은 안하고 엉뚱한 시간을 허비하는게 아닌가 할 정도로 진도가 안 가는듯했지만 그 작은것들이 모여서 결국 사건을 해결하는 모습이 참 재미있었다. 책 페이지수가 600쪽이나 될만큼 두껍지만 술술 잘 읽힌다. 내용 중간중간 영국 특유의 위트와 여유가 나와서 그런지 읽는내내 편하게 잘 읽었다.

 

책 제본도 튼튼하게 잘 되었고 번역도 특별히 어색한 부분이 없이 잘 된거 같다. 다만 주인공인 맥레이의 우리말 공식직위는 '경사' 이고 상사인 인치의 직위는 '경위'인데 그 호칭이 문맥상 몇군데 틀린곳이 있다. 경사님 해야하는데 경위님 하는 식으로. 그거외에는 특별한 오역은 없이 매끄럽게 책이 잘 만들어졌다.

 

경찰물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꼭 읽어볼만한 책. 다른 경찰물에서 느끼지 못하는 편한 느낌을 느낄수 있을것이다. 얼른 후속작이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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