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홍수 - 에릭 드루커의 다른만화 시리즈 4
에릭 드루커 지음, 김한청 옮김 / 다른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솔직히 읽기 쉽지 않았다. 다 읽고 나서도 멍하게 무슨뜻일까를 고민했었다.
흔하디 흔한 그림책이 아니다. 대사 한마디 없는 그냥 그림의 '연속'일뿐이지만 그 속에는 수만 마디의 말이 숨겨져있다. 그림을 또렷히 보면서 음미한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말들이 보일것이다. 이 책은 분명, 즐거우라고 만든 책이 아니다.
괴로우라고, 좀 생각하라고 만든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현실..진실..그것이 그림에 오롯이 그려져있다. 우리가 아주 맛있는 것을 먹거나 아주 멋진 풍경을 볼때 말이 필요없다 말을 할수가 없다란 표현을 쓴다. 말 그대로 다른 수식어가 필요없을정도로 뜻이 통한다는 게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오히려 대사가 있는것이 사족일 정도였다. 어떻게 보면 그림을 수백 수천장 그려서 그것을 그대로 연결한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냥 명화 수백장을 보는것이다.

이 책의 그림은 판에 잉크를 바른뒤 면도칼로 긁어내는 방식으로 그려졌다고 한다.
알듯 모를듯한게 어릴때 학교 미술 수업 시간에 비슷한걸 해봤던 기억이 난다. 그때 그림을 그리고 파내는 과정이 그리 쉽지 않았는데 그 볼품없던 작업도 그리 힘들었는데 이 책의 그림을 보니 상상이 안간다. 아주 세밀하게 그린것은 아니지만 선들이 정확하고 참으로 사실주의적인 스타일로 그린것이 더욱 인상이 깊다.
그래서 그림 한컷 한컷이 하나의 예술작품인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림의 원본은 미국도서관협회에서 사들여서 전시를 한다고 한다. 후대를 위한 살아있는 교육이 될것이다.

내용은 3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있다.
첫번째인 '집'은 한 평범한 노동자가 직장을 잃고 방황하다가 결국 노숙자의 처지로 떨어지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뭐 내용이 깜짝 놀랄일도 아니다. 바로 우리의 이야기다. 사회안정망이 불안한 우리나라로서는 언제 짤릴지 모르는 비정규직이 늘어날수록 신분이 불안정하고 결국 집도 잃은채 노숙자가 될수도 있는것이다. 지은이는 이런 현실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고 있다.
 

두번째 작품인 'L'은 한 남자가 지하철 승강장에 들어서면 원시의 춤판으로 변하는 환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현대인들이 느끼는 예술적인 감정이 원시인들과 크게 다른건 아니란걸 표현한다고 하는데 사실 인간이 가진 가장 기본적인 욕망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표현 수단이 더 풍부해졌을뿐.
하지만 그 환상여행에서 깨서 현실로 돌아온 순간의 그 씁쓸함이란. 어쩌면 그런 환상을 꿈꾸기에 이 힘든 현실을 헤쳐나가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세번째 작품인 '대홍수'는 말그대로 대홍수가 나게 되는 장면을 그렸다. 지하철에서 나온 어떤 남자는 비를 피할 도리가 없는데 한 현자가 우산을 씌어준다. 그리고 이어지는 폭우,에스키모,물에 잠긴 뉴욕등의 모습에서 모든것이 끝났나 싶다가 마지막에 현장에게 고양이가 구출된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는 메시지가 아닐까.

뉴욕이라는 거대 도시의 소외되고 낮은 곳에 사는 사람들을 주된 주인공으로 삼은 이 그림들은 꼭 미국만이 아니라 현대의 어느나라 도시민에게도 다 해당되지싶다.
나같이 그림 한번보고 멍해진 사람들을 위해서 끝에 길다란 '글'로 해설과 추천글, 지은이와의 인터뷰를 실은것이 좋다. 작품에 좀더 가깝게 다가갈수 있었다.

말랑말랑하고 쉽고 재미난 그림도 좋지만 가끔은 이렇게 딱딱하고 멍해지지만 뭔가 탁 머리를 깨게 해주는 그림책을 보는것도 좋을꺼 같다. 맛난것만 먹고 편식하면 제대로 크지 못하듯이 이런 책도 읽어줘야 좀 덜 바보가 될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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