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계절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
도나 타트 지음, 이윤기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대단하다. 대단하다는 표현밖에 쓸수없는 책이었다.
왜냐? 정말 별 일도 아닌 이야기를 거의 천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으로 써내려간 지은이가 대단하기도 하지만 그 별것도 아닌 이야기를 가지고 천페이지 내내 흡입력을 읽지 않게 만들어서 결국 시나브로 다 읽게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이게 추리소설인지 심리소설인지 잘 모르겠다. 딱히 장르를 규정지을만한 인상적인 것이 있지는 않다. 하지만 추리소설 못지 않은 비밀과 긴장감이 있었고 심리소설 못지 않은 눈에 보일듯한 심리묘사가 있었다.

시점은 나 '리처드'의 입장에서 서술되는 1인칭이다. 미국서부쪽 지역에 살던 리처드는 입학한 대학에 정을 못 붙이고 있던중 옛날에 받았던 대학요람을 우연히 발견하고 무엇엔가에 이끌린듯 동부의 한 대학에 입학한다. 그곳은 묘한 인문주의적 분위기가 나는 대학이었는데 단 다섯명만 가르친다는 고전학과에 우여곡절끝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시작된 그 다섯명과의 인연. 그러나 그 속에는 그의 운명을 뒤흔들 큰 사건이 깃들어있었는데...

사실 줄거리상으로 보면 몇줄의 글로 요약할수 있을정도로 단출하다. 많은 사람이 등장하는것도 아니고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살인사건이 일어나는것도 아니며 희대의 악당이 등장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런 것이 없어도 은근하게 계속 읽게 만드는게 이 책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

첫장부터 다섯명중의 한명인 버디의 죽음이 나온다. 그리고 그것이 자연사가 아닌 타살이라는 분위기를 뿜어내면서 무엇인가 사건이 연달아 일어날꺼 같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다. 2권에서 또 다른 한명의 죽음이 일어나긴 하지만 이 책에서 그런것은 중요한것이 아니다. 고전학과라는 어떻게 보면 요즘 시점에선 뜬구름잡는듯한 학문을 하는 이들이 보통사람과는 좀 다른것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대그리스어를 공부하고 라틴어를 공부하는 이들의 욕망은 무엇이었을까.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학문을 한다는 지적인 허영심이었을까. 하지만 그들의 학문은 그들만의 리그였던것 같다.
인간을 위한 학문이 아니었던 것이다. 살인을 하게 되는 과정도 사실 좀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그것을 은폐하기 위한 그들의 행동은 그 살인에 고의가 없다는걸 안다고 해도 그들의 지식이 아까울 정도였다.

비밀은 비밀을 낳고 또다른 문제를 불러온다. 이들으니 자신들이 만든 비밀에 자신들이 발목이 잡히고 결국 그 비밀에 의해서 또다른 먹구름을 불러오게 한다. 하지만 이들의 마음이 이해안가는것도 아니다. 내가 만일 이런 상황에 쳐했다면 어떻게 했을까. 비밀이 탄로날까봐 전전긍긍하는 이들의 모습이 또한 내 모습이 아니었을까.

두툼한 페이지의 많은 분량에 비해서 아주 복잡한 줄거리는 아니었고 아주 재미난 이야기도 사실 아니다. 하지만 조금만 조금만 그러면서 끝까지 책을 읽게 만드는 신비한 마력이 있는 책이었다. 큰 이야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책의 완성도가 떨어지지 않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마지막 장을 덮고나서 묘한 여운이 남기도 했던 책이기도 하다.

다만 초반의 그리스어부분과 고전학과 교수 줄리언의 이런저런 철학적인 수사들은 솔직히 지루하다. 전체적으로 탄탄하게 이야기를 잘 이어가고 있지만 너무 늘어지는 면도 없지 않아 있다. 좀더 속도감있게 썼으면 하는 바램도 있지만 이 책이 지은이의 처녀작이라는 점에서 그런 허물도 살짝 용서가 되긴 한다.

거의 국내 유일의 책AS 번역가인 이윤기씨의 깔끔한 번역도 이 책의 가치를 높여준다. 몇군데 보이는 오자는 옥의 티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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