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관의 피 - 상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1
사사키 조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09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랫만에 참 선굵은 추리소설이 나왔다. 선이 굵다는 표현은 요즘 보여지는 다른 추리소설들과는 다른 스타일이란 말이다. 빠른 전개와 깊은 몰입감, 때론 유혈이 낭자한 생생한 표현등 영상적으로 재미난 소설들에 비해서 이 책은 느린 속도로 천천히 나아가는 내용의 책이다.
하지만 은근히 책에서 손을 놓지 않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는 강한 책이다.

내용은 3대째 경찰의 길에 들어선, 3부자의 이야기이다.
단순히 3대의 역사라고 할수도 있지만 3대에 이은 죽음의 비밀과 그것을 밝혀가는 아들과 또 손자의 이야기가 그 단순함을 상쇄해버린다.

시작은 패망하고 어지럽던 종전후 일본의 어느 마을에서 시작한다. 경찰의 길에 들어선 안조 세이지. 이런저런 공적도 쌓고 열심히 노력한 끝에 원하던 주재소의 순사가 된다. 그런데 주재소에 부임하기 전후로 일어났던 두건의 의문스런 살인사건을 추적하다가 그 자신이 의문의 죽음을 맞고 만다. 아버지에 이어서 경찰에 투신한 2대 안조 다미오는 아버지의 죽음이 단순한 자살이 아니라 타살일 가능성을 생각하고 행적을 추적한다.
아버지가 일했던 주재소의 경찰로 똑같이 들어섰던 다미오는 지난 세월속에서 사건의 흔적을 찾아낸다.
거의 끝에 다다랐을때, 무엇인가 안 채로 관내 사건에 휘말려 죽고 만다.
이제 3대 안조 가즈야. 처음에는 다른 임무에 투입되지만 결국 할아버지, 아버지가 밝히고자했던 진실에 뛰어든다.
그런데 진실의 이면엔 또다른 진실이 있었고 그가 알고 있었던 사실들이 사실이 아님을 알게 된다.
과연 그는 수십년을 내려와 드디어 막바지에 이른 진실의 순간을 어떻게 맞이했을까...

어떻게 보면 처음에는 참 느릿하게 시작했다. 흔히 보는 빠른 전개가 아니라 어떤 일대기를 보듯이 천천히 이야기가 펼쳐졌다. 하지만 의문의 사건이 일어나고 그것을 추적해가는 과정이 비록 느리긴했어도 결코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은 사건에 임하는 주인공의 심리에 책을 읽는 사람이 몰입되었기 때문일것이다. 마치 내가 범인을 쫓는듯 그 상황에 녹아들어갔기에 그런 생각이 들었을것이다.

3대에 걸친 경관의 이야기라...마치 대하소설을 읽는듯 참으로 유장하고 힘있는 소설이었다. 배경으로 나오는 전후 일본의 모습도 잘 알수 있었고 우리나라와는 또 다른 일본의 경찰제도 역시 흥미롭게 읽었다. 700쪽이 넘은 긴 호흡의 이야기였지만 어느 한 부분도 끊김이 없이 이야기가 잘 이어지고 각 인물들의 묘사가 생생해서 실제로 있는 사람을 그린것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그만큼 글의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라 하겠다.
특히 유장하게 전개되던 내용이 끝 무렵에가서 또다른 진실이 밝혀지면서 새로운 반전이 펼쳐질땐 짜릿한 느낌도 들었다.

내용중에선 경찰의 입장에서 어떻게 하는게 더 나은 선택인가 하는 문제가 나온다. 그것이 과연 악일까 선일까 하는 문제. 아마 그건 현재 우리 사회에서도 많이 일어나는것이고 현실에서도 자주 접할수 있는 문제일런지도 모른다. 아마 현재 경찰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읽는다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내용일것이다. 이처럼 이 작품은 단순한 일대기나 추리소설의 경지를 벗어나 인생과 인간을 생각하게 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고 할만한 책이었다.

읽어도 후회되지 않을 참 작품성 높은, 큰 울림이 있는 좋은 소설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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