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는 말 그대로 판타지일뿐 현실이 아니기에 재미나게 읽으면서도 사실감은 잘 느끼지 못한다. 그런데 잘 느끼지 못했던 사실성을 느끼게 해준 책이 바로 테메레르 시리즈다. 19세기 나폴레옹전쟁을 배경으로 용이 인간의 가축처럼 길들여지고 전쟁까지 나가게 된다는 이야기의 이 시리즈는 실제 역사를 배경으로 해서인지 장면 장면이 그럴싸한 느낌이 들게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주인공인 용 테메레르가 참 가깝게 느껴지고 한번 만나봤으면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건 지은이가 그만큼 캐릭터 묘사나 구축을 잘 했기 때문일것이다. 테메레르가 주인이라고 하면 주인일 로렌스에게 쏟는 애정은 인간보다도 더 짠한 느낌이 들게 하고 절대 배신하지 않을듯한 모습에 누구나 기분이 좋아지게 된다. 테메레르 특유의 귀엽고 정감가는 행동에 미소가 지어짐은 물론이다. 로렌스와 만나게 되는 1권이 나온지 얼마 안되는듯한데 벌써 5권이 나왔다. 그동안 부분적인 전투에 참여했던 테메레르가 드디어 전쟁에서 중요한 포인트가될수 있는 전투에 임하게 되는데 그 과정이 세밀하면서도 박진감있게 잘 묘사되었다. 반역죄로 헤어지게 된 테메레르와 로렌스. 자신이 순순히 있어야만 로렌스가 살수있다는 것에 무기력하게 지내던 테메레르는 프랑스군이 영국을 침략했다는 소식에 다른 용들을 설득해서 민병대를 조직하여 프랑스군을 공격한다. 그리고 죽은줄 알았던 로렌스를 극적으로 만나게 되는 테메레르. 다시 만난 로렌스와 테메레르는 이윽고 전쟁의 국면을 바꾸게 되는 큰 전투에 참전하게 된다. 그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이번 시리즈에서는 한층 성숙해진 테메레르를 만나게 된다. 어쩌면 '이성'을 가진 존재로써 테메레르의 각성은 시간이 갈수록 예정되어있었다고 할수도 있겠다. 그것이 로렌스라는 사려깊은 사람의 만남으로 좀더 빨라졌고 로렌스와의 이별로 인해 더 빨리 깨닫고 성숙해졌다고 볼수 있을것이다. 그 성숙을 바탕으로 테메레르는 두개의 전쟁을 치루게 된다. 하나는 이 책의 배경인 나폴레옹전쟁이다. 그런데 그전에 명령을 받아서 움직이던 거와는 달리 여기에선 직접 용들을 이끄는 지휘관의 역할로 더 많은 활약을 하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전쟁은 바로 용권신장을 위한 정부와의 전쟁이다. 전쟁이란 특수한 상황에서, 그리고 마침 용들이 필요한 그때에 테메레르는 가장 기본적인 용권에 대한 약속을 정부로부터 얻어내는 지혜를 발휘하게 된다. 단순히 말 잘 듣는 용에 머물러있는 다른 용들의 의식도 서서히 깨우게 되면서 앞으로의 용권 신장의 초석을 닦게 된다. 만일 전쟁이 끝난다면 테메레르의 전쟁은 어떤 방식으로 흘러가게 될지 자못 기대가 된다. 전쟁은 잠시 소강상태가 되고 로렌스와 테메레르의 처지고 애매해지지만 그들이 다시 만났다는 사실만으로 안도가 되고 마음이 흐뭇해졌다. 어디에 있던 둘이 있다면 어디서든 잘 살겠지라고 생각도 들었는데 이게 어째 두 남녀의 사랑이야기 같아서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뭐 이들의 사랑도 결코 보통 남녀의 사람 못지 않는것도 사실이긴 사실이니깐. 긴 분량의 시리즈가 이제 끝을 향해서 나아가고 있다. 다음권쯤이면 이 시리즈도 결말이 나지 않을까. 책을 덮자말자 테메레르와 로렌스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용들은 어떻게 될까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이 애탐을 억누르고 몇달을 또 기다려야 하나... 이 책의 가장 매력은 존재하지도 않는 용들을 참으로 잘 살려낸다는 점이다. 귀엽기도 하고 애교스러운 테메레르는 물론이고 다른 용들의 캐릭터도 하나하나 개성있고 생생하게 잘 묘사되어 있어서 이런용 나도 있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다른 비슷한 판타지소설에선 생각치도 않았던 일이다. 그만큼 사실적이고 신선하게 잘 표현한 덕분이다. 이번 시리즈에도 새롭게 등장한 '페르사이티아'라는 용의 묘사가 재미나게 잘 되어서 앞으로 테메레르와의 관계에 어떤 변수가 될지 즐거운 상상이 든다. 다만 전 시리즈에서 거의 보이지 않았던 오자나 탈자가 이번 책에선 좀 보였고 단락구분이 잘못된 부분도 나와서 좀 아쉬웠다. 빨리 내는건 좋겠지만 기존의 받았던 완성도 높은 소설이라는 좋은평에 누가 되지는 않길 바랄뿐이다. '이성있는 고귀한 존재'로써의 용들의 활약상이 잘 묘사된 테메레르 시리즈. 그 대미가 어떻게 진행될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