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고향 하늘 아래 노란 꽃
류진운 지음, 김재영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결국 외국의 식민지가 되었던 우리의 슬픈 역사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해도 중국이란 나라의 근현대사도 참 파란만장한거 같다.
마지막 왕조였던 청나라의 멸망과 함께 잠시 있었던 중화민국, 그리고 일본군의 점령시절, 국공 내전, 공산당의 승리, 문화혁명의 소용돌이까지 중국의 근대사도 편안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격동의 그 시절, 중국의 한 마을을 배경으로 두 가문의 대를 이은 복수와 함께 그 시절을 견뎌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것이 이 책의 주된 내용인데 어떻게보면 그 대립과 갈등속에서도 살아남은 자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결국 산자가 이기는 것이니깐 말이다.
이야기는 어느 마을의 촌장이 살해되는것으로 시작한다. 쑨씨집안이었던 촌장 쑨덴위엔을 살해한것은 대대로 그 마을에서 촌장을 하다가 쑨덴위엔에게 촌장을 빼앗긴 리씨집안이었다. 마을의 두 지주집안이었던 쑨씨집안과 리씨집안은 이로써 대를 걸친 원수지간이 되고 만다. 그리고 이어지는 피의 복수.
그것은 짧았던 중화민국이 끝나고 일본군이 점령했던 시절까지 연장되지만 그들의 갈등은 일본으로부터 해방되고 공산당의 시대가 되면서 끝이 난다. 지주 계급이라는 공통 분모로 인해 다같이 배척을 당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배척했던 사람들도 곧 권력쟁탈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고 서로 잡고 잡히는 일들이 대를 이어서 이어지게 된다. 그 끝은 과연 어떻게 될까?..
중국의 어지러운 현대사를 한 마을로 축소해서 보여주는 이 책은 언뜻 우리나라의 '토지'의 내용같은 느낌이 들게 했다. 하지만 결국 이 책은 '권력'의 이야기였다. 누가 권력을 갖고 또 어떻게 그 권력을 행사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희비가 갈릴수 있음을 책에서 보여준다. 비록 중국이라는 거대한 대륙에서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작은 마을의 조그마한 권력이지만 거기에 해당하는 사람에게는 바로 눈앞의 생사를 가를수 있는 큰 권력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차지하기 위해서 대립과 갈등을 하는 사람들...이런 모습들은 바로 중앙의 정치판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을것이다.
권력은 돌고 돈다는 것을 그들은 결국 깨닫지 못하는 것일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떻게보면 시대적인 배경이 좀 어두운데도 내용이 슬프거나 비관적인 느낌이 들진 않았다. 오히려 밝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고 이렇게 흘러가는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게 한것은 군데군데 이어지는 중국인 특유의 위트와 해학이 잘 녹아있기 때문이었다. 수천년의 역사속에서 살아남는 법을 터득한 그들의 모습이 그런 시대에도 역시 통하는 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은이인 류전원은 최근 중국에서 주목받고 있는 작가인데 그의 작품들에서는 주제와는 관련없이 전체적으로 밝고 미소를 짓게 하는 장면들이 많이 나온다. 분명 웃음이 나올 상황이 아닌데도 은근히 재미있는 장면들이 나오는데 이 작가 특유의 스타일인거 같다. 이 책은 그런 작가의 첫번째 장편소설인데 그 뒤에 나오는 그의 작품들에 보이는 해학과 위트어린 문체가 여기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좀 두꺼운 분량의 작품이고 시대적 배경도 그리 밝지 않았지만 읽는 내내 재미나게 읽은거 같다. 4개의 시대로 끊어서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는데 그전의 시대와도 잘 이어지면서 전체적인 역사의 흐름을 잘 표현하면서 끝까지 완성도를 잃지 않았다.사실 중국 현대 작가의 작품은 그리 많이 읽어보지 않았는데 류전원이란 작가, 앞으로 눈여겨볼만한 사람인거 같다.